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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anXpaper Oct 21. 2024

여름의 눈 (4)

단편소설

여름의 눈  (4) 



  그날은 이진이 피곤한 듯 잠에 빠져 있었다. 이진의 얼굴은 창백했다. 나는 잠든 이진을 잠시 내려다보았다. 손가락으로 이진의 입술을 벌려 이를 살폈다. 날카로운 송곳니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이진의 왼손 팔목을 잡아끌었다. 인터넷에서 구매한 수갑을 꺼내어 손목에 채웠다. 수갑의 다른 쪽은 침대의 철봉에다 채웠다. 이진의 두 다리는 밧줄로 묶었다. 이진은 화들짝 놀라며 눈을 떴다. 이진은 발버둥 쳤으나 몸을 움직일 수는 없었다. 이진이 비명을 지르기 전에 재빨리 입에 재갈을 물렸다. 이진은 눈물을 흘리며 온몸을 꿈틀거렸다. 나는 재갈이 물린 이진의 입술 위에 검지를 세워 가져다 댔다. 조용히 해. 네가 어디론가 멀리 가버릴 것만 같아서 이러는 거야. 너는 영원히 내 곁에 있어야 해. 알지, 내가 널 얼마나 사랑하는지. 


  이진의 눈은 슬픔에 잠겼다. 제 상황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럭저럭 이진의 손발을 묶었지만 내 속은 여전히 답답했다. 그래도 한편으로는 안심되었다. 이제 내 곁을 절대 떠날 수 없어! 나는 가방에서 주사기와 주삿바늘을 꺼냈다. 갈증이 나기 시작했기에 이진의 팔목을 잡고 핏줄을 세웠다. 그리고 바늘을 찔렀다. 이진의 몸이 잠시 꿈쩍거렸다. 이진의 피가 주사기 안으로 천천히 밀려 들어왔다. 희석되지 않은 순수한 이진의 피. 아름다운 붉은 색조. 이진의 창백한 얼굴도 황홀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이진의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검푸른 눈물도 아름다웠다. 


  이진은 날로 여위어 갔다. 하루는 집에 갔더니 죽어가는 화초에 말을 건네고 있었다. 화초 이름은 우란이었다. 오래전 나와 이진이 붙여 준 이름이었다. 이진은 나를 외면한 채 우란을 달래고 있었다. 우란아, 왜 이렇게 힘들어 보이니. 죽으면 안 돼. 이 집 정말 별로야. 들리는 소리라곤 컴퓨터 자판 소리와 마우스 클릭 소리 정도밖에 없는 공간이지. 화분에 흙도 말랐는데 너에게 물도 못 주고, 정말 미안해. 널 신경 쓸 틈이 없었어. 정말 미안해. 그래도 이렇게 죽어서는 안 되는 거잖아. 앞으로는 다정할게. 


  나는 이진의 정신이 약간 이상해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개의치 않았다. 나는 이진의 피를 병에 옮겨 담았다. 조금 마시기도 했다. 머리가 맑아지고 온몸의 근육이 새롭게 충전되는 느낌이 들었다. 눈이 밝아지고 귀도 예민해졌다. 하지만 이진의 얼굴은 전날보다 훨씬 더 창백했다. 조만간 병원이나 혈액센터 뭐 그런 곳에 가서 신선한 혈액을 훔쳐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진이 건강해야만 나 역시 행복한 순간을 오래 유지할 수 있을 테니까. 이진에게는 신선한 인간의 피가 필요했고, 나는 이진의 강력한 피가 필요했다. 


  이진의 피를 병째로 들고 다닐 수는 없었다. 번거로웠다. 남들이 보면 수상하게 여길 수도 있었다. 그래서 궁리 끝에 초콜릿을 만들기로 했다. 시중에서 파는 초콜릿을 잘게 자른 뒤 중탕해 녹였다. 그리고 템퍼링 tempring을 했다. 초콜릿을 스테인리스 볼에 담았다. 따뜻한 물에 넣고 저어 녹였다. 온도는 48도를 넘지 않도록 했다. 온도를 제대로 맞추는 게 포인트였다. 수증기가 들어가면 푸석해질 수 있었다. 그리고 찬물에 다시 중탕해 냉각시키고 다시 따뜻한 물에 중탕해 템퍼링을 완성했다. 템퍼링을 한 초콜릿을 몰드에 절반 정도 채우고 이진의 피를 한 방울씩 떨구었다. 그리고 그 위를 다시 초콜릿으로 채웠다. 아몬드나 호두를 곁들이기도 했다. 채운 틀을 바닥에 쳐서 기포를 뺀 뒤 냉장고에 넣어 굳히고 뒤집어 꺼냈다. 데커레이션 차례. 내가 좋아하는 하얀 송곳니 모양으로 만들었다. 


  아이보리 송곳니 초콜릿의 인기는 깜짝 놀랄 정도였다. 클럽에서 만난 여자에게 초콜릿을 먹였더니 최음제처럼 작용했다. 여자는 모텔에 들어서자마자 무섭게 달려들었다. 목에 매달려 키스를 퍼붓고 불처럼 나를 끌어당겼다. 



(계속) 내일 다음 편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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