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미연 씨가 문자를 보내다니! 솔직히 놀랐다. 문자 내용도 급한 용무가 아니었다. “쿨해 보인다는 그 여자, 잘 만나고 있나요? 아무튼, 파이팅!” 문자를 확인하고 약간 반갑고 약간 당황스러웠다. 언제나 내게 마음을 써주는 직장 동료에게 응원받는다는 건 반가운 일이었다. 한편, 직장에서 일할 때가 아닌 주말 시간에 미연 씨의 문자를 받은 것은 처음 있는 일이어서 당황스러웠다. 미연 씨와 나는 같은 직장 같은 팀에서 일한 지가 삼 년째였다. 나이는 내가 많고 직급도 내가 높았지만 서로 편하게 대하는 사이였다. 미연 씨는 무엇보다 일을 아주 잘했다. 어려운 일이 있으면 서로 도와주곤 했다. 한 가지 과제를 함께 맡아 협업할 때도 많았다. 딱히 연애 감정을 품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문자를 받고 보니 기분이 묘했다. 어쩌면 미연 씨가… 혹시… 나를 좋아하는 것일까?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런 가능성을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다는 것도 조금 놀라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런 가능성을 가늠하는 것도 어쩐지 어색하게 느껴졌다. 내가 결혼정보회사에 등록하고 조해선이란 약간 특이한 여자를 만나기로 했다고 말했을 때, 미연 씨 표정은 평소와 크게 달라 보이진 않았다. 눈만 연신 껌뻑였다. 그런데 나는 왜 그런 것을 미연 씨에게 말한 것일까? 어쩐지 말해야만 할 것 같았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나 자신도 쉽게 이해가 되진 않았다. 친한 친구나 동료에게 못 할 말을 한 것은 아닌 것 같기도 했다. 오히려 아무 말하지 않았다면, 나중에 알고 서운해 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미연 씨에게 답신을 보냈다. 얼굴 보고 대화할 때는 말을 편하게 했지만, 문자 메시지를 보낼 때는 나도 모르게 존댓말을 섞어 쓰곤 했다. “아직 못 만났어요. 약속 장소에 너무 일찍 왔는데… 여기 장소가 너무 칙칙함. 그 여자가 고른 장소인데.” 그러자 미연 씨가 답신 문자로 약속 장소의 이름을 물었다. 나는 “듀오 헤븐 Duo Heaven”이라고 회신했다. 문득 회사에서 거래처에 갈 때, 몇 가지 정보를 미연 씨에게 알아달라고 하던 때와 기분이 비슷했다. 미연 씨는 자신이 검색해 보겠다고 하더니 잠시 뒤에 다시 문자를 보냈다. “이상하네요. 그런 이름을 가진 장소가 검색되질 않아요. 거의 모든 카페나 레스토랑은 포털 사이트와 구글 지도 검색으로 다 잡히는데 거긴 좀 이상하네요.”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미연 씨는 검색과 정보 수집에 탁월한 노하우가 있었다. 별명이 검색의 여왕이었다. 탐정이라고도 했다. 그런 그녀가 이상하다고 하니, 괜히 불안해졌다. 어쩌면 생긴 지가 얼마 안 되는 곳일지도 몰라요, 하고 답신했다. 그러자 한동안 별다른 대답이 없었다. 이윽고 얼마 뒤에, 여하튼 좋은 시간 가지길 바란다는 문자가 다시 왔다. 내가 뭐라고 답변을 보낼지 하고 망설일 때, 어떤 여자가 카페 문을 열고 성큼 걸어오더니 나를 바라보곤 곧장 내 자리에 왔다. 앞자리에 털썩 앉았다. 조해선 씨를 만나러 오셨죠? 하고 물었다. 사진으로 본 얼굴과 아주 달랐다. 아니 전혀 달랐다. 각이 진 턱과 단발머리가 아니었다. 의아한 표정을 짓는 나를 보더니, 여자가 차분한 목소리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자신은 조해선 씨의 친구인데, 급히 대신 나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프로필과 소개 사진들을 통해 살펴본 순진하고 단정해 보이는 외모를 지닌 조해선 씨와는 확연히 달라 보였다. 과연 두 사람이 친구일까? 의구심이 일었다. 새로 등장한 여자는 160센티미터라는 조해선 씨의 키보다 커 보였다. 족히 170센티미터는 되어 보였다. 게다가 굽이 높은 부츠를 신어서인지 굉장히 길어 보였다. 긴 생머리와 재규어 같은 몸매에 청바지와 롱부츠, 가죽 코트 안에는 연한 색 니트를 입었고 그 안에는 더 멋진 게 있는 것 같았다. 아마도 80B? 아니 어쩌면 85C 컵? 고혹적인 분위기의 여자였다. 조해선 씨와 친구라면, 한두 군데라도 비슷한 구석이 있어야 할 것인데, 두 사람은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나는 어색한 시선을 거두고 콜라를 한잔 마셨다. 그러고 나서 궁금한 것을 질문했다. “조해선 씨에게 무슨 일이 있나요?” 여자는 빙긋 웃더니, 코트를 벗어 옆자리에 다소곳이 놓았다. 우선 맥주나 한잔 사달라고 했다. 그리고 자신도 급히 연락받고 나왔다고 덧붙였다. 핑크 플로이드의 다음 곡이 흘러 나오고 있었다. 무척 좋아하던, 통속적으로 침울한 노래 <Dogs>였다. 어느새 종업원 켄이 옆에 와 묵묵하게 서 있었다. 나는 깜짝 놀라 얼떨결에 맥주 두 병과 간단한 마른안주를 주문했다. 왜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곳을 벗어나지 않았는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나이만 먹었지, 여전히 우유부단하고, 단호하지 못했다. 어른스럽지 못한 나 자신에 대한 짜증스러운 감정이 다시 느껴졌다. 조해선 씨의 친구라는 여자는 자신을 티티라고 불러 달라며 활짝 웃었다. 티티? 티티라고? 장난하는 건지, 끙. 겉으로는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티티는 조해선 씨가 나오지 못하는 사정을 길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우선, 자신과 조해선은 여고시절 단짝 친구인데 얼마 전까지 한집에서 같이 살았다고. 조해선은 대기업 연구소에 다니지만, 자신은 모델 겸 배우 지망생이라고. 소개인지 배경 설명인지 그런 맥락 없는 스토리가 잠시 멈췄다. 맥주 두 병이 순식간에 비워져 있었다. 종업원 켄이 어느새 옆에 와 서 있었다. 전설적인 그림자 자객 닌자처럼 조용히 움직이는 종업원 같았다. 티티라는 여자가 내게 예쁜 손가락 두 개를 보이며 거절하기 어려운 눈썹 언어로 말했다. 두 병 더? 그 눈길에 그만,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 내일 다음 편이 이어집니다.
대문 출처 : 움베르토 보초니, <거리의 힘들>과 <동시적 시각들>에 대한 연필 습작. 191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