듀오 헤븐 (6)
나는 티티가 새로운 술을 주문하려는 것을 막기 위해 재빨리 다른 화제를 꺼냈다. 그냥 아무것이라도 상관없었다. 급하게 질문을 던졌다. 종… 종교가 무엇입니까? 내가 생각해도 좀 황당했다. 특정 종교의 신자도 아닌 내가 종교를 묻다니. 티티는 의아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면서도 오른손을 머리 뒤로 올리곤 가볍게 흔들었다. 종업원 켄을 부르는 신호였는데, 종업원 켄은 기다렸다는 듯이 곧바로 우리 테이블로 미끄러져 왔다. 상체를 약간 앞으로 굽히고 스르륵 다가왔다. 마치 공중부양한 채로 먹잇감을 향해 날아오는 뱀파이어 같았다. 티티가 물었다. 종교요? 저요? 아님 해선이? 나는 얼떨결에, 두 분 다요, 하고 대답했다. 티티가 싱긋 웃었다. 저한테도 관심 있나 봐요, 그런 의미의 미소를 지었다. 종교, 흐으음, 그런 주제를 논하려면 테킬라가 필요하겠죠. 아네호는 너무 비싸니까, 평범한 불랑코로 하죠. 티티는 메뉴판에서 어느 커다란 테킬라 한 병을 선택했다. 온더락으로 희석하게 얼음과 전용 잔, 그리고 소금도 잊지 말라고 당부했다. 종업원 켄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담스 패밀리 가의 집사 러치처럼 무심하고 무덤덤한 표정이었다. 하긴, 웃거나 표정을 지으면 얼굴 찢어질 테니. 끙. 나는 벌떡 일어났다. 하지만, 술 주문이 이미 끝난 상황임을 깨달았다. 저,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오겠습니다. 티티는 밝게 웃었다. 나는 화장실 거울 앞에서 잠시 사색에 잠겼다. 어느 유튜버가 올린 동영상 제목이 떠올랐다. 좋은 사람 되려다가 호구되지 말자. 집에 돌아가면 반드시 그 영상을 시청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티티가 이야기를 시작하면 나도 모르게 빠져드는 게 문제였다. 정신차려야 했다. 호흡을 가다듬고, 이마를 씻고, 손을 씻고, 다시 자리에 돌아와 앉았다. 티티가 테킬라 한 잔을 내밀었다. 다시 입을 열었다. 해선이는 종교가 없어요. 저는 무신론자는 아니고요, 그렇다고 특정 종교를 믿진 않지만, 아무튼 절대 신비로운 존재가 있을 거라고 자주 생각해요. 영혼도 있고 유령도 있다고 믿어요. 그쪽은 어때요? 종교가 있나요? 아, 없다고요. 아, 그래요. 물론, 말씀처럼 마르크스가 종교를 아편이라고 하긴 했죠. 하지만 제 생각은 달라요. 오늘날에는 종교가 아니라 이념과 혁명이 대중의 아편이죠. 왜냐고요? 혁명이 약속하는 세상은 치유제나 다름없잖아요. 민주화 혁명, 그런 단어는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여전히 진통제 역할을 하잖아요. 제 생각이 특이하다고요? 아녀요. 사실 제 생각이 아니라, 연극 무대의 대사로 알게 된 거예요. 시몬 베유라는 외국 작가가 한 말이라고 해요. 연극에서는 이런저런 배역을 맡게 되면 작가가 써 준 대본을 외워야 하거든요. 연극 무대에 매일 서게 되면, 그 대사가 점점 내면화돼요. 제 것이 된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이 덜떨어진 머릿속에 콕, 박혀버려요. 제가 그 시몬 베유라는 작가를 연기하다가 그 사람이 되어버린 기분이죠. 이해된다니, 다행입니다. 나도 시몬 베유에 대해서 들어 본 기억이 났다. 화려하고 장엄하고 혁신적이면서도 종교적이고 신비한… 아무튼 여러 면에서 독보적인 돌연변이라고 들었다. 그러고 보니, 듀오 헤븐이라는 장소도 마치 돌연변이 같았다. 티티도 여러 면에서 괴팍한 돌연변이 같았다. 종업원 켄은 두 말할 필요 없는 돌연변이였다. 나는 다시 정신을 차리고 물었다. 그런데 왜 두 사람은 같이 살다가 갑자기 떨어지게 되었나요? 티티는 슬픈 표정으로 테킬라 잔을 채우곤 소금을 살짝 손등에 찍었다. 서둘지 않고 부드럽게 원샷으로 마셨다. 그러곤 소금. 흠 그건 사실, 저 때문이어요. 연극 무대에서 함께 연극을 하던 남자를 만나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코로나 팬더믹 때문에 연극 무대에 서는 것도 아예 끊기고 모델 일도 나이 탓인지 점점 줄어들었어요. 그래서 남자친구는 개인 사업을 하겠다고 나선 거예요. 그러다가 지난달에 갑자기 우리 집으로 들어온 거예요. 사업이 망했다고, 갈 곳도 없다고 하면서, 그 멍청이가 그냥 막무가내로 들어선 거죠. 해선이와 나와 함께 기거하는 그 공간에서 세 명이 살게 된 거죠. 해선이가 할 수 없이 집을 나가기로 했어요. 말렸지만, 해선이가 견디기 어려워했어요. 너무 불편하니까요. 그래서 급하게 집을 찾았는데, 마침 이 주 전에 월세가 싼 방을 얻었어요. 방도 깨끗하고 조용한데 이상하게 도심인데도 월세가 저렴한 방이어요. 집주인인 노파의 마음이 언제 바뀔지 몰라 서둘러 계약했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건 해선이의 실수였어요. 내게 묻지도 않고 계약을 하다니! 티티는 내게 묻지도 않고 피쉬앤칩스와 아이스 과일 치즈를 안주로 추가 주문하면서 말을 이어갔다. 그 방은 들어가서 살면 안 되는 곳이었어요. 그 방의 역사를 몰랐던 거죠. 그걸 알았다면 누구도 결코 그 방에서 살지 않았을 거예요. 해선이가 얻은 그 방은 저쪽 강남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오 층짜리 빌딩의 꼭대기 층에 있었어요. 공원과 주택가가 멀지 않은 곳이었지만 유흥가가 근처에 있는 것도 좀 꺼림칙했었죠. 그 빌딩의 일 층은 카페이고 이 층은 오락실과 미용실이 하나 있고 삼 층부터는 월세로 나온 방들이 있어요. 해선이가 얻은 오 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좁고 가파르고 어두웠어요. 이삿날 저도 갔는데 뭔가 오싹하더라고요. 방 자체는 나름대로 깔끔했지만, 전기난로를 펴도 추웠어요. 나는 황당했다. 도대체 이야기가 어디로 흘러가는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그때였다. 문자 메시지 수신 벨이 울렸다. 나는 티티에게 잠깐 실례한다고 하고 문자 메시지를 읽었다. 미연 씨가 보낸 거였다. 화장실에 갔을 때 내가 미연 씨에 남긴 문자에 대한 답신이었다. “좀 전 부탁하신 검색 결과, 보내주신 주소 등록지는 듀오 헤븐 아님. 터프 이너프라는 카페임. 최근에 상호 변경된 듯. 그곳 파출소에 이상한 사건이 자주 신고된 곳임. 빨리 벗어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좀 더 검색한 뒤 다시 연락할게요.” 티티가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나는 별일 아니라고 말했다, 나는 테킬라 잔을 내려놓고, 이야기를 이어가려는 티티를 향해 손을 들고 질문이 하나 있다고 말했다. 티티가 머릿결을 우아하게 뒤로 넘기며 미소 지었다. 조해선 씨는 취미가 포커라고 하던데, 사실입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티티가 웃었다. 아, 포커는 제가 가르쳐 주었어요. 저희는 주말 내내 둘이서 포커 게임을 하곤 했어요. 그 대답을 듣고 나자 환상이 깨진 것 같았다. 포커가 취미인 여자는 바로 눈앞에 앉아 있는 티티구나, 하고 속으로 생각했다. 나는 테킬라를 한 잔 마셨다. 기분이 묘하게도 편해졌다. 상대방 카드 패가 짐작되면 마음이 안정되는 법이다. 검색의 여왕 미연 씨가 추가로 뭔가 추적하고 있었다. 결과를 기다려 보기로 했다. 이윽고 티티가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계속) 다음 편은 내일은 쉬고 모레 이어집니다.
대문 출처 : 움베르토 보초니, <거리의 힘들>과 <동시적 시각들>에 대한 연필 습작. 1911년
주) 소설 속 대사 내용 중 시몬 베유와 관련된 것은 20세기 서구의 탁월한 여성 작가들을 고찰한 데보라 넬슨의 《터프 이너프》의 내용을 일부 참조했습니다. 카페 듀오 헤븐의 과거 카페명 '터프 이너프' 역시 이 책의 제목에서 따온 것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