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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anXpaper Nov 02. 2024

듀오 헤븐 (7)

단편소설

듀오 헤븐 (7)



  그 방은 이상했어요. 이사 첫날, 그 방에서 매트릭스를 깔고 해선이와 함께 나란히 누웠어요. 해선이에게 너무 미안했기에 첫날만큼은 같이 밤을 지내주고 싶었어요. 처음에 그 방은 추웠어요. 그래서 난방과 전기난로를 켰죠. 너무 오랫동안 방에서 사람 온기가 빠져 있던 탓에 썰렁할 수 있겠다고 여겼어요. 차츰 밤이 깊어가자, 다행히 온기가 조금씩 돌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뭐라고 형언할 수 없는 이상한 기운이 함께 커지는 느낌도 들었어요. 처음에는 우리가 삭막한 사막에 버려진 느낌이랄까. 모든 걸 잃어버리고 세상에서 소외된 사람들이 머무는 장소에 온 것 같았는데, 차츰 세상과 완벽하게 격리된 따스한 공간에 스며들었다는 느낌도 들었어요. 흐음, 딱히 정확한 비유는 아니지만, 삶과 죽음이 공존한다는 슈뢰딩거의 상자 속에 우리가 갇힌 것 같았어요. 뭐랄까 기이하고 비현실적인 느낌인데 동시에 차갑고 현실적인 느낌. 네? 슈뢰딩거의 상자요? 당연히 알죠. 물리학의 양자이론을 논할 때 자주 등장하는 상자인데, 그 안에 고양이가 한 마리 있죠. 그 고양이는 살아있는 동시에 죽어 있다는 거잖아요. 삶과 죽음이 중첩된 상황이라고 하고요. 물론 그 방에서 우리는 고양이가 아니었어요. 물론 우리는 죽은 이도 아니었죠. 명백히 살아있는 존재였죠. 그런데 삶과 죽음 대신 다른 것들이 중첩된 느낌이 들었어요. 우리의 과거와 미래와 현재가 모두 희미하게 그곳에서 겹쳐져 있는 것 같았어요. 시공간이 혼재된 느낌이랄까. 물론 해선이와 내가 그때 테킬라를 대박 마신 탓일지도 몰라요. 그때에도 지금처럼 테킬라를 마셨던 거죠. 멕시코 술이잖아요. 멕시코는 죽은 자와 산 자가 축젯날 어울리는 그런 이상한 나라이기도하고요. 아, 맞아요. 슈뢰딩거 상자는 공부 잘했던 해선이가 오래전에 제게 말해준 것인데, 저는 처음 듣는 순간에 그게 무슨 의미인지 바로 알 수 있었어요. 저만의 해석이지만, 그것은 육체와 심리가 한데 섞이고 서로를 간섭하는 공간이죠. 우리가 우리 자신을 스스로 애써 하나의 정체성으로 관찰하는 순간, 서로의 간섭 현상은 홀연히 사라지고 특정한 상태 하나만 드러나기 마련이죠. 사랑과 증오가 혼재하다가, 현실에서 바보 같은 말을 하나 들으면, 한순간 증오가 폭발하는 것이랑 뭐가 달라요. 바보 같은 말을 하나 들으면 한순간 사랑으로 벅차오르는 것이랑 뭐가 달라요. 네, 알아요. 그런 표정 짓지 마세요. 제 해석이 들입다 엉터리라는 걸 잘 아니까요. 하지만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예요. 인간은 늘 뭔가 상반된 두 가지가 중첩된 존재라는 것입니다. 어둠과 밝음, 행복과 불행, 환희와 우울… 의식과 무의식… 이성과 감정… 남성과 여성… 합리와 불합리… 정의와 불의… 사랑과 증오… 조화와 부조화… 세상 누구든 각자의 마음속에는 항상 이런 대립적인 것이 뒤섞여 있잖아요. 그런 상태가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인데, 오늘날 드러난 우리 사회는 너무 한쪽으로 치우쳤어요. 밝고 깨끗하고 긍정적인 측면만 무조건 강조하죠. 그게 부자연스럽고 부조리하다는 걸 사람들은 몰라요. 우리는 균형이 필요해요. 바로 이런 곳, 듀오 헤븐 같은 컨셉을 수용할 필요가 있어요. 이곳을 둘러보세요. 세상 사람들이 어둡게 평가하는 것들이 여기 모두 즐겁게 모여 있네요. 세상에서 억압된 것들이 모두 이곳을 제집으로 여기고 귀환한 것 같지 않나요. 저기 뱀파이어, 프랑켄슈타인, 자객 닌자… 이들은 모두 이웃에게 환영받지 못하죠. 세상이 손가락질하고 혐오하는 대상들이죠. 저기, 저기 제가 좋아하는 아담스 패밀리도 있네요. 저 영화 포스터를 보세요. 전 아담스 패밀리 연극에 출연한 적이 있어요. 대본 작가가 어디선가 잔뜩 베낀 듯한 대사를 아직도 빠짐없이 기억해요. 오, 우리가 싫어하는 것들,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들, 우리의 내면에 억압된 것들, 하지만 끊임없이 표면으로 떠오르는 것들… 바로 공포이죠. 공포이면서 동시에 코미디라는 게 저 영화가 지닌 위대함이죠. 아담스 가의 안주인 모티샤는 바로 과거에 화형의 대상으로 인식된 마녀의 차림새이잖아요. 웬즈데이는 귀여운 괴물인데 호러 코미디에 딱 어울리죠. 하하. 네, 이야기가 엉뚱한 곳으로 자꾸 흘러갔군요. 티티는 약간 취한 것 같았다. 문제는 나 역시 점점 이성적인 판단이 흐려지고 있다는 거였다. 티티와 켄과 해선은 모두 한통속이고 나 같은 호구를 잡아 술값 바가지를 씌우려는 일당이 틀림없다고 여겼다. 하지만, 티티의 연극 독백과 같은 대사를 듣다가 보니, 자꾸만 나의 판단이 흐려졌다. 내 의심이 의심스럽기 짝이 없었다. 언젠가 어디선가 읽었던 문장도 떠올랐다. 호러는 우리가 모르는 뭔가 진실을 알고 있는 게 분명해. 그런 문장이었다. 내가 읽은 스토리에서는 사춘기 소녀가 주인공이었다. 소녀는 생각했다. 엄마와 오빠는 내가 자기들과 같이 저녁을 먹고 미션 임파서블을 보는 줄 알았겠지만, 진짜 나는 밤거리로 뛰쳐나갔다. 상상 속에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무덤 파는 인간들을 먹어치우기도 했지만, 그건 언데드가 돼서 받는 보너스 같은 거다. 내가 죽음보다 세다는 걸 이렇게 가끔 보여줘야 한다. 그러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서는… 잠든 엄마 곁에 서서 속으로 맹세했다. 내가 꼭 괴물을 찾아서 먼저 물리고, 우리 집으로 데려와서 엄마랑 오빠도 물게 할게. 그럼 우린 다 같이 영원히 살 수 있어. 맹세할게. 내 믿음이 남들한테는 바보 같아 보일지 몰라도, 어리석고, 어리석고, 어리석고, 어리석은 이 세상에서 내가 정말로 간절히 원하는 건 그것뿐이다. 나의 공책아 – 단도직입적으로 말할 게 – 호러 표지 중에서 내가 최고로 치는 건, 여자가 괴물에게 습격받아도 젖가슴이 앞으로 쏟아지지 않는 것들이야. 그런 표지는 단순한 소름 이상의 공포를 주거든. 내가 볼 때 젖가슴 표지는 가슴이 달린 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독자들에게 은밀히 말해주고 있어. 우리 엄마의 병을 생각해 보면, 잡지는 우리가 모르는 진실을 알고 있는 게 분명해… 내 기억에는 소녀의 대사가 대충 그랬다. 1) 나는 갑자기 짜증이 났다. 이게 무슨 난장이란 말인가. 티티를 바라보았다. 티티는 테킬라를 다시 한잔 마셨다. 테킬라 병을 들더니 흔들었다. 가만히 바라보았다. 윽, 벌써 한 병을 다 비운 것 같았다. 나는 입을 열었다. 그런데 이 모든 대화가, 조해선 씨가 오늘 못 나온 사연과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거죠? 티티가 고개를 옆으로 까닥 제킨 채 나를 잠시 응시했다. 술기운이 올라 두 뺨이 불그스레했다. 아, 맞아요. 그러네요. 해선이가 못 나온 이유가 있어요. 아무튼 첫날 이후, 해선이는 그 방에 적응하려고 무척 노력했어요. 그런데 자꾸 신경이 날카로워져서 전혀 쉴 수가 없었어요. 잠을 잘 수 없다며 오밤중에 제게 전화하기 시작했어요. 그 방에서 뭔가 이상한 소리가 난다고 했어요. 해선이는 휴일에도 그 방에 있으면 몸이 무거워지고 아무런 짓도 하기 싫어진다고 했어요. 해선이는 회사에서 퇴근하면 집으로 돌아가는 게 두렵기 시작했어요. 문득 어서 결혼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되었죠. 오직 그 방법만이 자신의 피폐한 생활과 불안한 마음에서 탈출할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하게 된 거죠. 그래서 오늘 이 자리를 크게 기대하고 있었어요. 티티는 자신이 하는 모든 이야기가 조금도 거짓이 없으며, 자신은 지금 너무 솔직하게 모든 걸 털어놓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고 나선 느닷없이 내 손을 덥석 잡았다. 우리 해선이를 도와주세요! 제발!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티티가 말했다. 바로 어젯밤에 조해선 씨가 더는 그 방에서 지낼 수 없다며 옷도 제대로 못 챙긴 채 자기가 사는 월세 방으로 무조건 돌아왔다는 거였다. 다시는 그 방으로 귀환하고 싶지 않다고 선언했다고. 그 방은 호러라고 했다. 그 방에는 따스함이나 밝음이 없고 사악하고 우울한 기운만 가득하기에, 자신이 살아있는 죽은 존재, 좀비처럼 느껴진다며 흐느꼈다. 유령이 있는 게 분명하다고 선언했다. 조해선은 그동안 신경 쇠약에 걸려 잠을 너무 못 잔 탓에 오늘은 온종일 잠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는 거였다. 티티는 자신의 멍청한 남자친구를 하룻밤 내쫓고 해선이가 푹 잘 수 있도록 배려했다는 거였다. 티티는 내 손을 꼬옥 간절히 부여잡고 간청했다. 저, 당분간이라도 우리 해선이와 같이 지내시면 어떨까요? 꼭 결혼해 달라는 건 아니고, 해선의 자금 형편이 나아질 때까지만이라도 우리 해선이를 데리고 살아주시면, 아니 그냥 룸메로 곁에 두시면 정말 고맙겠습니다. 나는 화들짝 놀라 손을 뺐다. 얼떨결에 종업원 켄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켄이 부드럽게 다가왔다. 나는 더듬거렸다. 여기, 여기…  테킬라… 테킬라 한 병 더… 으으, 내가 주문하다니! 




(계속) 내일 다음 편이 이어집니다.. (어쩌면 모레...?)


 대문 출처 : 움베르토 보초니, <거리의 힘들>과 <동시적 시각들>에 대한 연필 습작. 1911년

1) 대사 속 소녀의 독백은, 에밀 페리스의 그래픽 노블 『몬스터홀릭 -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몬스터 My Favorite Thing Is Monsters 』에 나온 대사를 인용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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