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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anXpaper Nov 04. 2024

듀오 헤븐 (9)

단편소설

듀오 헤븐 (9)



  미연 씨는 미소를 지으며 내 옆자리에 앉았다. 싱글벙글 웃었다. 놀라지 마세요. 일단 티티 씨가 하신 말씀이 모두 거짓은 아니란 걸 잘 알아요. 아, 정말 놀라지 마세요. 저는 여기 계신 이 분의 직장 동료랍니다. 아까 티티 씨 몰래 저에게 몇 가지 조사를 해달라고 연락하셨어요. 그때 제가 전화를 켜두라고 했어요. 스피커폰으로 두 분 대화를 들을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뒤집어 두었던 휴대전화를 들고 전화 기능을 껐다. 티티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미연 씨가 계속 말했다. 두 분 대화를 티티 씨 몰래 엿들은 건 죄송합니다. 아무튼, 티티 씨가 말씀하신 내용을 여기까지 오면서 확인했어요. 저는 조사 전문가입니다. 부업으로 탐정 활동도 가끔 해요. 사설탐정 자격증도 있고요. 휴대전화도 여러 개 사용하고 있고요. 뭐 대단한 수준은 아니지만 해킹 노하우도 가지고 있어요. 우선 조해선 씨의 집주인 할머니와 어렵게 통화했습니다. 조해선 씨가 얼마 전 오 층에 입주한 것도 확인했어요. 그렇다면 논리적으로 티티 씨가 하신 말씀이 전부 거짓말은 아니란 뜻이 되는 거죠. 그런데 여기 카페 듀오 헤븐에 도착해 보니, 이상한 게 하나둘이 아니었어요. 우선 오늘이 토요일 밤인데, 이 멋진 카페에 손님이 전혀 없네요. 두 분 외에 카페에 다른 손님이 전혀 없다는 게 말도 안 되는 거잖아요. 왜 그런 걸까요? 아마 티티 씨와 저기 계신 종업원으로 변장하신 티티 씨 남자친구가 이 카페를 오늘 통째로 대여한 게 틀림없다고 생각해요. 입구에 <행사로 오늘 일반 고객을 받지 않습니다>라고 적혀 있는 게 그 증거죠. 티티 씨가 여기 들어오기 직전에 문 앞에 붙인 게 틀림없겠지요. 저는 카페 간판을 살펴보았어요. 카페 이름 <듀오 헤븐>은 검색해도 전혀 잡히지 않아서 이상했는데, 알고 보니 이 카페는 듀오 헤븐이 아니라 아직도 여전히 <터프 이너프>라는 카페인 거죠. 오늘 하룻밤만 간판을 살짝 바꿔 다신 거네요. 듀오 헤븐이라는 위장 간판 뒤에 원래의 카페 이름이 있는 걸 확인했어요. 이 모든 건, 오늘 밤 장난도 아니면서 장난스러운 이 수상한 모임을 위한 것이겠죠. 듀오 헤븐은 아마 저기 서 계시는 종업원, 정확히는 티티 씨 남자 친구께서 하시던 사업이 아니었을까요? 종업원 역할을 아주 잘하시는 건 같던데, 저분이 하시다가 망했다는 그 사업이 바로 카페 사업이었던 거네요. 그때 사용하신 간판을 여기 가져와서 위장 카페 만드신 거고요. 그리고 오 층 문제는 저도 아직 확신이 안 드네요. 어쨌든 오 층은 올라가시면 안 될 것 같아요. 오 층에 있는 방에 가셨으면, 아마, 모르긴 해도, 한마디로 주거침입죄나 그런 거로 고소하겠다고 협박할 계획이었겠죠. 게다가 그 사이에 여기 테이블 위에 빈 양주병을 서너 개 더 올려놓고 술값을 대폭 올리려는 계획이었겠죠. 바가지 씌우겠다는 작전 아니었나요? 티티는 고개를 숙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었다. 미연 씨는 밝게 미소 지었다. 안 그런가요, 티티 씨? 그러자 티티는 고개를 들고 입술을 깨물더니 수긍한다는  건지 못하겠다는 건지 묘한 표정을 지었다. 미연 씨가 다시 입을 열었다. 물론 진짜로 고소하거나 진짜로 술값을 독박 씌우려고 한 건 아니었을 것 같아요. 두 분 성품도 좀 알아봤는데 그럴 분들은 아닌 것 같더라고요. 그냥 조해선 씨를 몇 달 집에 받아 달라는 조건으로 그 모든 걸 협상 카드로 사용하려고 했던 거잖아요. 그러자 티티가 눈을 크게 뜨면서 말했다. 맞아요. 뭐, 사기 치려는 건 아니었어요. 그냥 장난을 좀 한 것이고, 사실, 해선이를 내 집에 계속 둘 수도 없잖아요. 해선이는 절대로 이곳 오 층으로 돌아오지 않겠다고 고집하고, 이미 일 년 기간으로 월세 계약을 해버린 데다가, 계약서를 읽어보니 만료 이전에 계약 해지하려면 위약금도 장난이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오늘… 그냥… 이분에게 해선 씨를 좀 데려가 집에서 같이 살게 해달라고 하려고… 마음 약하고 착한 분 같아서… 그리 하려고 한 것입니다. 이 분이랑 해선이랑 한 집에서 함께 지내다 보면, 뭐 남녀가 정들 수도 있고요. 결혼할 수도 있고요. 해선이를 위해서 꾸민 겁니다. 하지만 제가 이분에게 한 말은 모두 진실이어요. 경찰을 부를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 그냥 거절하셨다면 우리도 어쩔 수 없이 물러설 계획이었어요. 술값도 원래 금액도 아닌 원가만 받으려고 했어요. 그것도 절반은 제가 부담하려고 했어요. 제가 절반 마셨으니까요. 하지만, 해선이는 어떡하죠. 제발 좀 우리 해선이를 몇 달만이라도 데려가실 순 없을까요? 제발요. 탁! 미연 씨가 테킬라를 한잔 마시다가 단호하게 잔을 테이블 위에 탁, 하고 내려놓았다. 그건 절대 안 되죠! 절대로! 미연 씨가 커다란 눈을 껌뻑였다. 남녀가 단둘이 한 집에 있을 순 없어요! 절대로! 제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절대 안 됩니다! 티티가 놀란 것보다 내가 더 크게 놀랐다. 나는 눈을 크게 뜨고 (아마 입도 크게 벌린 채) 미연 씨를 바라보았다. 그것은, 그러니까 정녕 미연 씨가 나를 향해  외치는 고백이었다. 그 순간, 내가 원하던 어떤 세상이 나를 향해 한 발짝 성큼 다가오는 느낌을 받았다. 까닭은 알 수 없었다. 어떤 확신 같은 게 내 가슴에 밀려왔다. 무엇인가 안도의 감정과 따뜻한 애정 같은 것이,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어떤 통찰이, 한 줄기 빛처럼 내 가슴속에 홀연히 솟아올랐다. 미연 씨가 조용히 말했다. 조해선 씨는 당분간 저랑 지내도록 하지요. 뭐, 저도 매일 저녁 혼자 밥 먹고, 친구도 없고 해서 적적한 참이었어요. 조해선 씨만 좋다면 저의 집에서 저랑 함께 지내도 될 것 같아요. 단, 한 가지 조건이 있어요. 미연 씨가 나를 바라보았다. 한 가지 조건은, 그러니까, 음… 우리… 점심 말고 가끔 저녁도 같이 먹어요. 그 조건이어요. 나는 음악을 듣는 척했다. 티티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연극 대사까지 읊었다. 오, 노래하라, 여신이여! 뮤즈여! 이 분은 여신이네요, 여신! 종업원 켄은 주문도 하지 않은 맥주와 테킬라를 가져왔다. 미연 씨는 큰 눈을 다시 껌뻑이며 말했다. 그런데 지금 흘러나오는 이 기괴한 음악, 제목이 뭐죠? 마음에 드네요.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이다. 그 뒤로 조해선 씨와 티티 씨와 종업원 켄과 미연 씨와 나는 모두 친구 비스름한 사이가 되었다. 미연 씨와 나는 가끔 둘이서 저녁도 먹는다. 모두에게 해피한 결말이다. 하지만 나는 궁금한 게 하나 더 남아있었다. 도대체 그 건물 오 층의 방은 무어란 말인가? 진짜 유령이라도 사는 곳일까? 궁금했다. 미연 씨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건 뭐, 사람이 외로우면 방도 외로워서 생기는 현상이 아닐까요, 했다. 그 방에서 조해선 씨와 티티 씨가 둘이서 함께 보낸 첫날은 그런 이상한 현상이 별로 없었잖아요. 온기도 돌고 그랬다고 하잖아요. 다음 날 조해선 씨가 혼자 남게 되어 극심하게 외로워지는 바람에 생긴 현상이 아닐까요?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얼른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이었다. 여자든 남자든 자기 마음속에 자리 잡은 어둠을 극복하지 못하면, 소외와 고독 혹은 미움과 질투 같은 게 심해져서 유령이 나타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정도로 극심하게 이상한 현상이라니. 어쩌면 진짜 귀신이 사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사실 그런 생각을 하게된 이유가 있었다. 그날 우리는, 종업원 켄과 티티 씨와 미연 씨와 나, 모두 네 사람이 함께 오 층 방으로 올라갔다. 거기에서 조해선 씨의 짐을 챙긴 뒤에 문을 닫고 나왔다. 마지막으로 그 방의 문을 닫은 사람은 바로 나였다. 문을 닫기 직전 방을 둘러보았다. 불을 끄고 문을 막 닫으려는 순간, 방안 어둠 속에서 무언가 슬그머니 움직이는 것 같았다. 멈칫, 알 수 없는 꿈을 꾸며 슬픈 눈물을 지닌 어느 미지의 존재가. 




(끝) 


감사합니다.

다음 회에 [소설 쓰면서 깨달은 것들]이란 제목으로 후기를 간략히 올리겠습니다(모레 11월 6일 발행 예정).


대문 출처 : 움베르토 보초니, <거리의 힘들>과 <동시적 시각들>에 대한 연필 습작. 19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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