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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르스IRS Oct 03. 2022

문해력의 차이는 곧 나를 향한 사랑의 차이

스스로를 꽁꽁 싸매는 건 나를 사랑하는 게 아니다

이 글은 매일경제의 노원명 기자의 '한국인은 왜 문해력이 떨어질까?'(https://m.mk.co.kr/opinion/columnists/view/2022/09/840289/)라는 제목의 글을 읽고 쓰게 되었다. 내 개인적인 분석과 생각이 들어가 있으니 하나의 의견으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다.


위 글에서 노원명 기자는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문해력 부족의 원인으로 이해하는 능력의 부재를 꼽았다. '사흘', '심심한 사과' 등 낯선 표현을 만난 사람들이 그 의미를 알아보려고 하는 게 아니라 왜 어려운 말을 사용하냐며 화를 내는 상황이 점점 자주 일어나고 있다. 그 원인에 대해 내가 모르는 점이 생기거나 나와 다른 점을 발견했을 때 그 근본 원인을 알려고 하기보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아니거나 그것과 다르면 틀렸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문해력 부족이 생겼다는 것이다.


나도 이 주장이 맞다고 생각한다. 모르는 것이 생기거나 알고 있는 것과 다른 것이 생기면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통해 자신을 발전시킬 수 있는데 그렇게 하는 것보다 자신을 방어하기에 급급한 것 같다.


나는 여기서 더 나아가 이런 이해력의 부족의 원인이 '사랑의 부재'라고 말하고 싶다. 특히 그 누구도 아닌 자신에 대한 사랑.


사실 내가 모르는 것을 만났을 때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존심 상해하거나 위축된다. 이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상대방을 비난할 때 쓰는 말 중에 하나가 '못 배운 사람'이라는 점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단언컨대 모르는 건 잘못이 아니다. 잘못이 되려면 다른 사람한테 피해가 가거나 본인의 삶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쳐야 한다. 회사나 단체에서 본인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을 모르는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치지만 그건 다른 부분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 외에는 사실 그 누구에게도 피해를 끼친 게 없는데 왜 그렇게 비난하는지.


애초에 사람은 배우거나 경험하기 전에는 모든 것이 처음이고 모든 것이 모르는 것이다. 게다가 사람의 기억력은 한계가 있으니 더더욱 완벽할 수 없다. 그러니 모른다면 누군가의 도움으로 배우면 되고 기억하면 된다. 내 생각에 핵심적인 문제는 모르는 것을 죄악시하는 우리 사회로 인한 처참한 결과라는 것이다.


우리나라 산업의 성장 기간 동안엔 모르는 것은 잘못이라는 통념이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생각이 상처를 내는 것을 막을 순 없었고 어느 순간 이를 비롯한 여러 자극에 대해 예민한 세대가 점점 늘어났다. 그래서 자신이 받은 상처를 자녀들이 아예 받지 않게 하려고 과보호하는 부모들이 생겨났다. 이런 부모들 밑에서 자란 자녀들은 자신에게 부정적인 기분이 들게 하는 것은 그 무엇이든 틀린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었고 그래서 나온 결과 중 하나가 이해력의 부족, 문해력의 부족으로 나오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단정적인 말투로 적었더라도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 이해해주셨으면 한다.


이게 사랑과 무슨 관련이 있을까. 자식에 대한 과보호, 자신에 대한 과보호는 사랑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존감, 즉 자아존중감이 높은 사람들은 0세부터 2세까지 성장하면서 부모를 통해 세상이 안전한 곳임을 배운다. 일어서기 위해서 도전을 하다가 엉덩방아를 찧거나 걷다가 금방 넘어졌을 때처럼 무언가에 실패해도 괜찮다는 피드백을 부모로부터 계속해서 받으면 실패나 부족이 부정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게 세상은 안전한 곳이고, 나는 나 자체로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을 배운다.


그런데 어떤 자극이든지 부모가 위험하다는 피드백을 보내면 아이들에게 세상은 위험한 곳으로 변하고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를 꽁꽁 싸매기 시작한다. 그러면 이 아이는 새로운 무언가를 만났을 때 당연스럽게 느끼는 긴장과 같은 자극도 위험하다고 인지해서 피하게 된다. 결국 그 자리에 멈추어 움직이지 않게 되는 것이다. 어느 누구도 그 존재 자체로 소중하다는 점은 확실하지만 자신을 계속해서 발전시켜 스스로의 가치를 높여야만 한다는 것을 생각해볼 때 그냥 발전 없이 이대로 완벽하니까 멈춰도 된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얘기가 된다.


모순적이게도 자기 자신을 보호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은 본인 스스로를 올바르게 사랑하지 못하고 있다. 스스로의 발전, 가정의 발전, 국가의 발전, 세상의 발전을 위해 스스로를 가두고 있던 껍질을 부수고 한걸음 내딛는 사람들이 더더욱 많아지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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