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을 확인하는 열쇠는 ‘불안’에 있다.
다른 글에서도 적었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겠다는 목표가 생기면 힘내야 한다, 더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생각했을 때 목표를 달성하는 방법은 무언가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응원할 때도 ‘잘할 수 있을 거야’ 대신에 ‘힘내’라고 하는 것만 봐도 잘되려면 힘을 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무언가를 하기 전에 목표를 세우는 목적을 보면 대부분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인 것 같다. 시간을 더 잘 쓰지 않으면, 더 많은 것을 공부하지 않으면, 더 많은 스펙을 쌓지 않으면 뒤처지고 도태될 거라는 두려움과 불안이 강하게 느껴진다.
인지심리학자인 김경일 교수님의 강연에서도 ‘사람이 제일 싫어하는 것은 불안이다’라는 내용이 나온다(https://youtu.be/AQiVdRGH6aM?t=32). 사람은 실제로 불안한 상태에서 만나는 두려움, 슬픔, 분노 등 여러 가지 부정적인 경험에서 더 큰 아픔을 느낀다고 한다. 이렇게 싫어하는 것을 맞닥뜨리지 않기 위해서 발버둥을 치고자 목표를 세우고 실행에 옮기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하지만 불안이 정말 나쁘기만 한 걸까. 위에서 언급했던 김경일 교수님은 불안에도 긍정적인 기능이 있다고 말한다(https://youtu.be/BNEOKti4BkE). 링크를 걸어놓은 영상 초반부에서 ‘불안이 합리적인 행동을 가능하게 한다’고 말한다. 실제로 우리가 시험기간이 다가올수록 마음은 더 불안해지고 시험공부를 제외한 다른 일을 할 때 불안함이 커지면서 결국 공부를 하게 만든다. 불안이 없는 사람은 오히려 무언가를 준비하고 대비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불안을 잘 사용하고 다루면 자기 자신을 합리적이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끌고 갈 수 있다.
성경적으로 봤을 때도 삶을 살아가고 목표를 이루는 데 있어서도 불안한 게 당연하다. 기독교뿐만 아니라 유대교, 이슬람교 등에서도 믿음의 조상으로 불리는 아브라함은 종교인이 아니더라도 다들 한 번씩은 들어본 유명한 인물이다. 실제로는 실수도 많이 하고 부족한 점도 있었지만 그 삶 자체는 하나님께 믿음의 조상으로 인정받은 인물이다.
부족했던 아브라함의 신앙 여정은 자신의 가족, 친척, 친구들이 있었던 고향을 떠나면서부터 시작되는데 이때 아브라함을 떠나게 만드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눈여겨 보아야 한다.
창세기 12: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여기 나오는 ‘아브람’은 ‘아브라함’으로 개명하기 전 이름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나오라고 명령하시면서 주신 목적지는 ‘지시한 땅’이 아니라 “지시할 땅”이었다. 처음부터 목적지를 정해주면 일자로 쭉 갈 수 있어서 편할 텐데 왜 “지시할 땅”일까. 그것은 그때마다 하나님이 알려주시는 방향대로 걷게 하셔서 의지하게 만드시기 위함이다. 하나님은 아예 목적지 없이 그냥 걸으라고 하시지 않으셨다. 성경에는 구체적으로 언제 어디로 가라고 말씀하셨다는 기록은 없지만 다른 구절들을 통해 충분히 생각해볼 수 있다.
예레미야 10:23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인생의 길이 자기에게 있지 아니하니 걸음을 지도함이 걷는 자에게 있지 아니하니이다”
하나님은 중간 목적지를 한 곳 알려주시고 그곳에 도착하면 다음 목적지를 알려주셨다. 우리 삶에서도 큰 선택을 해야 할 때가 있다. A 회사를 가야 할지, B회사를 가야 할지. 또는 취업을 할지 더 공부를 할지. 이런 선택지마다 우리에게 알려주시는 방향이 있고 우리는 그것을 듣고 결정을 해야 한다. 그렇게 결정하고 보면 다음 목적지가 어디인지 알게 되고 거기까지 열심을 낼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최종 목적지가 정확히 어디인지는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가는 길에 불안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타락하기 전이었다면 불안하지 않았겠지만 죄인이 되어버린 사람인지라 온전히 믿지 못하기 때문에 불안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다.
그러니 불안할 때는 불안 자체에 휘둘려 흔들리지 않고 잠시 멈춰서서 향하고 있는 중간 목적지가 있는지 확인한다. 이 중간 목적지는 개인적으로는 작으면 작을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중간 목적지에 자주 도달하게 되고 그때마다 새로운 선택을 자주 하게 되면서 유동적인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큰 목적지만 두고 그대로 걷기만 한다면 만약 그 목적지를 포기해야 할 때가 왔을 때 무너지기 쉬울 것이다.
중간 목적지를 찾거나 정했다면 잘될 것이라고 믿고 걷기만 하면 된다. 조금 무적논리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잘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것만 믿고 가면 잘되게 되어 있다. 그리고 불안한 것이 당연한 것임을 생각하면서 스스로를 잘 토닥이면 된다.
만약 불안이 내 통제를 벗어나 이성적으로 다스릴 수 없다면 편한 장소에 가거나 심리상담사의 도움을 받아 나 자신과의 대화가 필요하다. 내가 어떤 생각 때문에 이렇게 불안하고 힘든지, 어쩌다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됐는지를 알아보고 나 자신과 화해해야 한다. 사실 마음이 아프고 힘든 사람들에게 나 자신과 대화하는 것은 굉장히 어렵다. 아픔과 슬픔을 다시 마주하게 될 텐데 그것은 너무나도 힘들고 큰 충격을 받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심리상담을 강력하게 추천한다.
불안하고 힘들고 어려운 것이 이상한 것은 아니다.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단지 내가 처한 상황, 내가 하게 되는 생각 같은 것들이 견디기에 힘들 뿐이다. 이 힘듦의 정도는 같은 조건이어도 사람마다 다르게 느끼므로 다른 사람이라면 어떨지 생각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내가 힘들면 힘든 것이고 내가 아프면 아픈 것이니 내 스스로에게 연약하다고 비난하지 말고 따뜻하게 안아주자. 나 스스로와 화해한 사람이 가지는 힘은 상상을 초월할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