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ING OUT 나는 나쁜 년이다.
루보 부부의 집안에 있는 한 지점만은 여전히 고통스럽고 불안한 곳으로 남아 있었는데, 바로 식당 마루의 한 곳이었다. 우연히 눈길이 그곳에 가 닿기만 해도 그들 부부는 어김없이 어떤 불안감에 심란해졌다. 그들은 그랑모랭의 시신에서 탈취한 것들 중에서 지갑 안에 들어 있던 300프랑가량 되는 금화는 빼고 회중시계와 지폐 만 프랑을 창문 왼쪽 아래 벽과 마루가 만나는 지점의 나무 마루 쪽매널 하나를 들어내 숨긴 다음 원래 상태로 덮어놓았던 것이다. 루보가 그 시계와 돈을 그랑모랭의 호주머니에서 챙겨 온 것은 오로지 단순 강도 사건으로 위장하기 위해서였다. <중략>
맨 처음에는 구석 어디라도 충분히 안전하지는 못하다고 판단해 일단 그 돈을 자기 베개 밑에 쑤셔 넣었다. 다음날부터는 안전한 은닉 장소를 찾느라 골머리를 썩였다. 경찰의 가택수색이 두려운 나머지 조그만 소리에도 화들짝 놀라며 매일 아침마다 은닉 장소를 바꾸었다. 살아오면서 그가 그처럼 맹렬하게 상상력을 발휘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러다가 더는 마땅한 곳이 떠오르지도 않고 두려움에 떠는 것도 지쳐버린 어느 날, 그전날 마루 한 곳 쪽매널 밑에 숨겨놓았던 돈과 회중시계를 다시 꺼내는 일이 문득 귀찮아졌다. <중략>
그는 걸어가다가도 마룻바닥의 그 쪽매널은 발로 밟지 않으려고 피했다. 그곳을 지나면 기분이 불쾌해지고 다리에 가벼운 충격이 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세브린은 오후가 되어 창가에 의자를 놓고 앉으려 할 때마다 마치 자기들이 마룻바닥 밑 그 자리에 시체를 묻어두기라도 한 양 그곳만은 피하려고 의자를 뒤로 무르곤 했다. P.245/문학동네
그는 정말 살인을 할 만한 가치가 있었던 일이었나 하고 자문하기에 이르렀다. 그렇다고 무슨 후회 같은 것은 아니었고 기껏해야 환멸 같은 것, 그러니까 사람들이 절대 고백할 수 없는 일들을 저질러놓고는 나중에, 그런다고 더 행복해지는 것이 아닌데도 그렇게 하면 행복해지지 않을까 기대하며, 그때 과연 어떻게 했어야 했을까 종종 궁리하게 되는 그런 생각이었다. 그렇게도 떠벌이었던 그가 긴 침묵과 막연한 숙고에 빠지는 일이 잦아졌고, 그때마다 더 침울한 모습으로 깨어났다. p 250 /문학동네
나도 그런 일이 있다. 살인까진 아니지만, 남들에겐 절대 고백할 수 없는 일들을 저질러 놓고 들었던 생각이 그랬다.
그런 일을 저질러 놓고, 나는 더 행복해졌는가?
그 죄를 덮기 위해, 더 행복한 척, 착한 척, 더 순결한 척.... 죄와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인 양, 교회를 다니며 선량한 사람처럼 굴었다. 그러나 한 번의 不正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 不正을 덮기 위해 수많은 거짓말을 해야 했다.
결국 그 일은 나를 행복한 사람이긴커녕, 가식적인 사람으로 변모시켰다.
애초에 不正한 일을 하지 않았으면, 좋았겠지만...
어쩌면 인간사에서 일어난 모든 사건과 비극들은 <인간이기 이전에 짐승> 이기에 일어난다.
그 비극을 안고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내가 지은 죄를 은폐하면서 누군가 알아차릴까 두려워하면서 살아갈까? 아슬아슬한 현실의 평온을 유지하면서 불안하게 살아갈까? 모든 걸 고백하고 현실을 파탄내고 마음의 평온을 얻는 게 옳은 일인가?
키 KEY는 잃어버린 곳에서 찾아야 한다.
에니어 그램 7번의 가장 큰 두려움은 고통이다. 나는 그 고통을 통과하는 게 여전히 두렵다.
나는 늘 고통을 회피하기 위해 즐거운 곳만을 정신없이 찾아 다녔다. 바쁜게 죄라고 했던가.
그래, 나는 정신없이 바쁘게 나를 만들었다. 직장을 다니면서 아침 저녁으로 수영과 필라테스를 하고 기타를 치고 오케스트라에 들어 첼로켜고, 여행을 다니고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맛집을 찾아다니고 ...
매일 누군가를 만났다.
왜?
세브린느처럼 오후가 되어 창가에 의자를 놓고 앉으려 할 때마다 나의 죄가 마룻바닥에 밑 그 자리에 누워 발 디딜 때마다 신발 밑바닥에서 시체가 달려들거 같았으니까...
나의 고통을 대면하기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그 어두운 고통 속으로 들어가야만 할때가 왔다.
나는 나쁜 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