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백소유

소유의 드라마

by 바비


소유 엄마는 밥보다 드라마를 먼저 삼켰다. 밥솥은 칙칙 김을 뿜고, 국은 펄펄 끓었지만 엄마의 눈은 TV 화면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야, 너네 엄마는 아침 드라마 안 봐?”

4학년이 된 소유는 나보다 키가 크고 말라서 언니 같았다. 나는 빵 부스러기를 손끝으로 모으며 대답했다.

“봐. 근데 우리 엄마는 애가 셋이라 줄거리 반은 놓쳐. 우리 집이 더 막장이야.”

소유는 킥킥 웃더니 말했다.

“우리 엄마는 내 말도 안 들어. 드라마 보느라고. 내가 생리대 떨어졌다고 세 번이나 말했는데도, 안 사다 놨어! 너무 오래 차고 있어서 조금만 움직여도 피가 흐르는 걸 하고 사러 나갔어.”

“에이, 깜빡하신 거지. 우리 엄마도 국자 들고 국자 찾을 때 많아. 은희 불러서 막내 은희가 가면 ‘아니 너 말고 언니 은숙이 오라 그래' 이래. 이름도 맨날 헷갈려.”


소유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맞아, 우리도 그래, 너희는 셋이니 더 심하겠다.”


“어쩔 땐 나 부르려다가 은숙이, 은희, 은정이—셋 다 부르고. 누구더라 하셔. 이해할 순 없지만 내 엄마잖아. 어쩌겠어?


우리는 서로의 엄마 중 누구의 엄마가 더 최악인지 겨루다, 결국 엄마들은 다 비슷한 부류라는 데에 안도했다. 엄마들이란 원래 허술한 존재구나.



그날도 소유 엄마는 드라마 속 악녀에게 욕을 퍼부었다.


“죽일 년, 천벌을 받아야지!”


텔레비전 속에서는 친자식을 버리고 부잣집에 시집간 여자가 자기 자식인 줄도 모르고 자식을 죽이려고 한다.


소유는 숟가락을 내려놓고 조그맣게 말했다고 했다.

“엄마, 나 물 좀 줘.”

소유엄마는 화면에서 눈도 떼지 않고 말했다.

“그래, 그래, 그래야지.”

소유의 엄마는 소유의 밥 위에 콩나물을 얹어주었다.

"물 달라고!" 소유는 빽 소리치고 숟가락을 던졌다.

"아침부터 왜 성질이야? 생리해? " 엄마는 알 수 없다는 듯 다시 드라마를 봤다.

소유는 엄마랑은 한마디도 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사흘동안 한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소유 엄마는 딸이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조차 몰랐다고 했다. 소유는 우는지 웃는지 알 수 없는 표정이었다. 웃프다. 이런 게 그런 거지?

날씨는 우중충했고 엄마와 아빠는 돈 때문에 자주 싸웠지만 우린 매일 웃음을 터트렸다.

너도 그래? 우리 집도!


며칠 뒤, 소유는 드라마 속 악녀가 양녀에게 입히던 벨벳 원피스를 입고 학교에 왔다. 목을 꽉 조이는 단추 달린 그 옷은 한 겨울에도 하얀 스타킹을 신어야 하는 거북스러운 옷이었다. 소유는 배와 목이 죄여 눈썹에 힘을 주고 걸었다.



쉬는 시간, 지온이가 흰 우유와 카스텔라를 먹다 입을 히죽거리며 놀렸다.

“야, 누구한테 잘 보이려고 치마 입었냐?”

소유는 대꾸하지 않았다. 지온이가 우유를 마시려 팔을 들었을 때, 소유는 우유통을 지온이의 얼굴에 짓눌렀다. 코로 우유가 들어간 지온이는 캑캑거리며 울상을 지었다. 그때 은우가 나타나 소유의 치마를 들췄다. "아스 께끼" 혀를 날름거리며 은우는 재빠르게 도망쳤다.

소유는 끝까지 쫓아가, 드라마 주인공처럼 번쩍 팔을 올리더니 짜릿한 따귀를 날렸다.

교실은 숨죽였고, 내 심장은 쿵쿵거렸다.

선생님이 달려왔을 때, 은우가 울먹이며 “저, 저 아니에요. 내가 맞았어요.”라고 말했다.

벨벳 원피스를 입고 다소곳이 쓰러진 소유를 본 선생님은 소유의 목 단추를 풀어주며, 은우의 등짝을 가차 없이 후려갈겼다.

그 뒤로 은우는 여자애들 치마를 다시는 들추지 않았다.


나는 소유의 그 멋진 따귀를 마음속에서 몇 번이고 재생했다. 나에게 소유는 아침 드라마보다 더 빛나는 주인공이었다.




keyword
이전 09화9.한가위 약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