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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롤 May 01. 2019

추워도 제주도는 가야겠어

다시 찾은 1월의 제주, 겨울을 걷다.

꼭 1년 만이다. 1년 전 오늘, 나는 제주살이를 시작하게 될 1월 3일을 위해 작은 살림을 꾸려 배낭을 챙겼다. 작은 지도를 그리기도 하고 제주의 동쪽이 어떤 곳인지 알아보기도 하면서. 그렇게 제주에서 보낸 날들이 희미해진 새해 겨울, 나는 다시 멋진 섬 여행을 시작한다.

2번 게이트, 부산에서 온 친구를 만나 호들갑을 떨며 인사를 나누고 옆에 앉는다. 잠깐 떠들었을 뿐인데 목이 아픈 이유는 왜일까. 얼마 후 뒤늦게 나온 친구들이 반갑게 소리친다. 네 명의 여자가 모인 제주 공항, 늘어진 야자수가 여행의 설렘을 더해준다. 셔틀버스를 타고 렌터카 회사로 가는 길, 기사님의 말씀에 박장대소하는 우리.


“우측에 있는 야자수가 보이십니까? 이것은 1년 내내 같은 모습입니다. 또, 공항 근처에 방지턱이 많은 이유는, 사람들이 하늘에 뜬 비행기를 보고 질주할 까 봐 위험을 예방한 것입니다.”
“갑자기 가이드를 하시는데? 근데 포인트가 진지함이야.”




​흐린 구름 아래로 눈발이 흩날리던 오후 세시, 샤이니숲에 도착했다는 기쁨이 추위를 잊게 만든다. 눈길 위로 펼쳐진 나무의 행렬과 까마귀의 울음 아래, 개미 한 마리도 없는 숲길에서 한산한 오후를 마음껏 향유한다. 비록 바람에 섞인 눈이 몸을 오들오들 떨게 하지만, 그런 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제주다!!!!”




숲길과 목장, 오름을 구경하느라 체력을 몽땅 써버린 여행자들에게 닥친 위기. 갑작스레 몰려온 허기에 더 이상 꼼짝도 할 수 없게 된 것. 원래 가려고 했던 달잠 키친은 휴무였고 맛집을 찾아가는 건 무리였다. 결국 가까이에 있는 옆동네로 목적지를 변경한다. 창밖으로 흐르는 구름과 진홍빛으로 물드는 세상에 소리치며 도착한 평대리. 배가 고팠지만, 눈 앞에 보이는 고요한 바다를 저버리지 못하고 길 건너로 달려간다. 셔터 소리가 몇 번 나는 동안 온몸을 강타하는 칼바람에 녹초가 된다.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후퇴. 불 켜진 가게에 들어가 음식을 주문하고 언 몸을 녹인다. 행복한 만찬이 시작되는 저녁, 테이블을 가득 채운 음식을 차례로 입에 넣은 후 맛을 평가한다. 오늘의 베스트는 뿔소라 톳 덮밥.





식사를 마친 뒤에는 세화 해변에 있는 카페로 향한다. 작은 조명의 아늑한 불빛 아래, 은은한 커피 향에 이끌려 문을 연다. 당근케이크와 캐모마일, 블랙퍼스트, 바닐라라테를 주문하고 밤바다가 보이는 창가 자리에 앉는다. 모두가 황홀한 표정으로 행복을 말하고, 흐르는 음악이 어두운 밤을 달콤하게 휘젓는다.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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