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가까웠기 때문에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다가
옆 테이블에서 들려오는 말에 나도 모르게 귀를 슬쩍 기울였다.
사춘기 자녀를 둔 듯한 엄마들이
한창 분통을 터트리고 있었다.
“집에만 오면 방문을 닫아걸고 나오질 않아.
보고 있자니 속이 터져.”
그러다 이런 말도 들렸다.
“다 큰 자녀와 거실에 나란히 앉아 TV를 보는 집?
그건 전생에 나라를 구했거나
아이 어릴 때부터 공을 많이 들였을 때 가능한
거의 기적 같은 일이래.”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났다.
어디선가 들어본 말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그 시기를 무사히 건너온 묘한 안도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듣다 보니 아이들이 성인이 된 지금,
그 말이 꽤 현실적으로 와닿았다.
관계는 어느 날 갑자기 점프하지 않는다.
그저 우리가 함께 보낸 꾸준한 시간들이
차곡차곡 쌓여 만들어낸 결과일 뿐이다.
아이가 방문을 닫기 전
거실에서 함께 보낸 사소한 시간들은
일종의 정서적 적금이다.
그 시간이 차곡차곡 쌓여야,
훗날 어른 대 어른으로 마주 앉았을 때
밤새 꺼내 쓸 대화의 밑천도 두둑해진다.
어린 시절의 나에게 ‘아버지’는 계셨지만, ‘아빠’는 없었다.
내가 자란 고향 마을은 유교적인 법도를 중시하는 분위기였고,
그중에서도 아버지의 생활방식은 더 완고하셨다.
그런 아버지에게 ‘아빠’라는 다정한 호칭은
마치 양복 위에 갓을 씌운 것처럼 어딘가 어색하게 느껴졌다.
‘아빠’라는 말을 입으로 내뱉기에는 왠지 쑥스럽고 낯간지러워
우리 형제들은 그 단어를 아예 잊고 지냈다.
우리 집만 그런 건 아니었다. 마을 아이들도 대체로 비슷했다.
도시로 전학 갔을 때,
친구들이 “아빠” 하고 스스럼없이 부르는 소리가
처음엔 다른 세계의 말 같았다.
한 번도 소리 내어 불러본 적 없는 그 경쾌한 음절을
속으로 따라 해 보며,
그런 친구들이 몹시 부러웠다.
그때 막연히 생각했다.
호칭이 관계를 증명하는 건 아니지만,
나중에 내 아이에게는
‘어려운 부모’가 아니라
그냥 ‘만만한 친구 같은 부모’가 되고 싶다고.
남편의 양육 방식은 대체로 ‘Yes’ 쪽이었다.
일단 들어주고, 믿고, 뭉근하게 기다리는 편이었다.
그럴 때마다 내 안에 남아 있던
아버지식의 단단한 기준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어
남편과 충돌하곤 했다.
어떨 땐 사소한 생활 습관이나 말 한마디에
말끝이 날카로워져 거실에 쌩한 냉기가 돌 때도 있다.
한 번은 아이의 무심한 태도에 내가 버럭 화를 내고
안방으로 들어간 적이 있었다.
닫힌 문 너머로 들리는 남편의 낮은 목소리와
아이들의 웅얼거림,
그리고 이내 터져 나오는 웃음소리.
그 순간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지금 내가 지키려는 건
부모로서의 ‘원칙’일까, 아니면 내 ‘체면’일까.
결국 나도 슬쩍 거실로 나와
못 이기는 척 과일 접시를 내민다.
싸워도 다시 거실로 모여드는
그 뻔뻔하고도 정겨운 탄력이
어쩌면 우리 집을 지탱하는 힘인지 모른다.
우리 집은 넷이 모여 수다를 떨다 보면
어느새 새벽이 되는 날이 종종 있다.
이번에도 잠시 귀국한 딸 덕분에 오랜만에 네 식구가 한자리에 모였다.
“어?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어?”
시계가 세 시를 가리키고,
그제야 못 이기는 척 각자 방으로 흩어진다.
다 큰 자식들과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으냐고 묻는다면,
사실 대단한 이야기가 오가는 건 아니다.
뉴스에 나온 자잘한 사건부터
요즘 애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밈 이야기,
카드놀이나 루미큐브 같은 게임을 하기도 한다.
그러다 출출해지면
야식을 걸고 고스톱 한 판이 벌어지기도 한다.
아이들은 우리를 익숙한 세계 밖으로 슬쩍 끌어낸다.
아들은 7080 노래만 고집하던 우리에게
최신 가요와 자신이 좋아하는 인디 가수의 곡을 들려준다.
처음엔 솔직히 귀만 따갑고 정신없었다.
그런데 자꾸 듣다 보니 멜로디가 귀에 익고
가사가 마음에 와닿았다.
요즘 애들이 이런 고민을 하며 사는구나 싶어
아이와의 거리가 훌쩍 가까워진 느낌이었다.
딸은 딸대로 취향이 담긴 책이나 영화를 슬쩍 권하곤 한다.
주말이면 시리즈 하나를 통째로 정주행 하며
함께 킥킥거리다가 밤을 꼴딱 지새우기도 한다.
시시콜콜한 농담에서 시작해
세상 이야기로 번지고
다시 일상의 실없는 웃음으로 돌아온다.
아이들이 건네는 취향을 기꺼이 받아들이다 보면
우리도 어느새 그들의 세계로 조금씩 스며든다.
생각해 보면, 우리 가족이 특별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거창한 교육법이나 철학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저 함께 밥을 먹고, 같이 웃고,
때론 다투면서도 다시 한자리에 앉을 뿐이다.
미련하고 정직하게 쌓아온 시간들이
오늘도 우리 네 식구의 밤을 이토록 복작거리게 만든다.
가까이 가기엔 너무 멀었던 아버지의 뒷모습 대신
우리는 이제 아이들과 최신 곡을 함께 흥얼거린다.
권위라는 딱딱한 옷을 벗고,
기꺼이 ‘만만한 부모’가 되어준 시간들 덕분이다.
어쩌면 관계는 나중에 가까워지는 것이 아니라
이미 가까웠기에 멀어지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오래전, 그 어린 소녀가 그토록 바랐던
‘다정한 아빠가 있는 풍경’ 속에 우리는 오늘도 함께 머물고 있다.
성인이 된 아이들과 나란히 앉아,
소소하게 쌓아온 시간들이 만들어낸 순간은,
누군가 말했던 것처럼 어쩌면
전생에 나라를 구했거나
아이 어릴 때부터 공을 들여야 가능한
거의 기적에 가까운 순간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