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위를 많이 타던 내가 어느새 남편보다 더 더워한다.
뼈도 시큰한 게 예전 같지 않고, 기분도 들쑥날쑥.
이에 불안과 우울감, 신경과민, 건망증, 자신감 상실까지 생겼다면 '띵동' 영락없이 갱년기 판정을 스스로에 내렸다.
갱년기의 사전적 의미는
[인체가 성숙기에서 노년기로 접어드는 시기]라고 한다.
정의부터 벌써 마음에 안 든다.
'백세시대에 무슨 오십 대에 노년 기래~' 시대에 맞게 그 의미가 좀 변화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며 갱년기에 관해 찾아보니 많은 이들이 갱년기를 극복하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이게 뭘 또 극복까지 해야 하는 건가.. 그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 되는 건 줄 알았는데 어렵다 어려워.
극복에 좋은 생활습관에는
내 몸의 변화 관찰하기 / 규칙적인 식사와 운동 / 금주 금연 및 충분한 수면 / 폐경을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마음 / 우울감에 대한 대화 / 전문 의료진 상담
정도가 있다고 나와있었다.
누가 적었는지는 몰라도 '너네가 이 나이 되어봐라~' 하는 말이 절로 나왔다.
저걸 만든 사람은 갱년기라고 갑자기 수험생 마냥 모두가 이제 너는 너한테만 집중해!라고 말해주는 줄 알았던 게 분명하다.
세명이나 되는 나의 언니들이 그랬듯이 갱년기는 셀프다.
셀프로 넘겨야 한다.
가족들이 눈치채고 배려야 당연히 해주겠지만, 수험생 마냥 내 유일한 의무가 갱년기 극복이 되는 건 아니라는 말이다.
나도 돌이켜보면 셀프로 지나왔던 것 같다. 다만 비교적 수월하게.
그맘때쯤 나는 우연하게도 아이패드를 선물 받았고, 또 동시에 미술치료를 공부했었다.
두 개의 우연이 만났던 것인데, 이제와 돌이켜보니 내가 했던 게 갱년기 미술치료였음을 알게 되었다.
그 덕분에 나의 갱년기가 비교적 수월했다는 것도.
미술치료란 미술 활동을 통해 내면세계를 표현함으로써 정서적 갈등과 심리적인 증상을 완화시키고 자기 이해와 자기 성장을 촉진시키는 심리치료의 한 유형이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을 표현하게끔 도와주며, 미처 깨닫지 못했던 깊은 내면의 감정들을 탐색하게 해주는 장점이 있는 치료 방법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기에 언어로서 의사 표현이 힘든 아동이나 이주 가정 사람들이 미술치료의 대상이 되는데,
지금 와 생각해보면 말하기 애매한 지점이 많은 갱년기에 오히려 무척 효과적인 방법이겠구나 생각되었다.
미술치료의 효과도 물론 있지만, 굳이 갱년기 '치료'라고 이름하기보다는,
'아이패드 드로잉'이라는 있어 보이는 젊은 친구들의 취미를 배운다는 것으로 생각했었다.
혹 반백 살인 내 또래 친구가 같은 방법을 시도해보고 싶다면, 꼭 거창하게 치료라는 이름을 붙이기보다는,
그냥 하나의 취미를 더 늘리는 것이며, 이 과정이 나의 갱년기를 조금 더 행복하게 만들어준다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나 역시 드로잉을 하면서 이토록 내가 취미에 흠뻑 빠질 수 있다는 것을,
잠자는 시간이 아깝고, 내일이 기다려지는 일이 반백살에도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 또래 이들이 더 행복한 노년기로 나아갔으면 좋겠다.
갱년기를 극복하는 걸 넘어, 확 이겨버리길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