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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arMe Mar 28. 2022

나도 누군가에게 고마운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봄날의 기억

 5년 전쯤의 일이다. 그날도 지금처럼 약간 쌀쌀한 봄의 초입이었다. 두꺼운 스웨터를 입었었던 기억이 난다. 이 계절이 돌아왔기 때문인지 오늘 그분 생각이 났다.


 아이가 태어난 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축복이었지만, 말 못 하는 아이와 둘이 텅 빈 집에 하루 종일 갇혀있는 것은 감옥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그래서 아이가 18개월쯤 되었을 때 문화센터를 열심히 다녔었었다. 어린아이에게 뭘 가르치려는 것이 아니라 다른 엄마들을 만나 얘기도 하고, 그저 집 밖에 나간다는 것 자체가 즐거웠다. 집에 올 때 맥도널드 드라이브 스루에서 커피 한잔 사 마시면 그게 행복이었다.


 그날도 아이를 데리고 문화센터를 갔다 오는 길이었다. 그날따라 짐이 너무 많았는데, 아이를 안고 낑낑대며 짐을 차에 먼저 실었다.  그다음 아이를 카시트에 앉히려는데, 차 문이 열리지 않았다. 차에 먼저실은 짐 안에 차키가 있었는데, 아이를 은 채로 차문을 닫을 때 뭔가 잘못 눌렸는지 차 문이 자동으로 잠긴 것이다. 물론 핸드폰도 가방에 있었는데 말이다.


 나는 아이를 고 차 앞에 황망하게 서 있었다. 핸드폰이 없으니 뭘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여기는 사람도 별로 다니지 않는 길이었다. 너무 당황해서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그래도 아이를 안고 있으니 난 울 수가 없었다. 그나마 아이가 차 안에 있는 상태에서 문이 잠기지 않아 다행이라 스스로를 위안하며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려고 얘 쓰고 있었다.


  그때 아주머니 한분이 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나는 평소 엄청나게 소심한 성격이지만,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큰 용기를 내어 아주머니에게 도움을 청했다. 지금 상황을 설명하고 핸드폰을 빌려달라 부탁드렸다. 그분은 나에게 흔쾌히 핸드폰을 빌려주셨고, 나는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지금 위치를 설명하고 긴급출동 서비스를 불러달라 얘기했다. 너무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핸드폰을 돌려드렸는데, 그분은 긴급출동이 올 때까지 기다리 주시겠다고 하셨다. 아이와 나의 놀란 마음을 달래며 본인 얘기를 해주셨다. 자기도 아이가 어렸을 땐 정신없는 실수를 많이 했었노라고 말이다. 그럴 수 있다며 자책하는 나를 달래주셨다. 그분에게 아들이 두 명 있는데, 군대에 간 아들에게 우체국에서 편지를 붙이고 집까지 걸어가던 참이었다고 한다. 날씨가 따뜻해져 봄이 오는 것 같아 갑자기 걷고 싶었다며, 우리가 만날 운명이었다며 환하게 웃으시던 얼굴이 생각난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긴급출동 서비스가 와서 차문을 열어주었고, 그분에게 감사인사를 하고 우리는 헤어졌다. 큰 실수를 저질렸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그날 기분이 좋았다. 좋은 사람을 만나 즐거운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차 문이 잠긴걸 안 그 순간 내 마음엔 여유라곤 찾아볼 수 없었는데, 그분의 미소 덕분에 큰 실수가 아무 일도 아닌 것이 된 것이다.


 나는 집에 와서 남편에게 그분 전화번호를 물어봤고, 작은 선물을 보내 드렸다. 그리고, 내 핸드폰에 그분 이름을 '고마운 분'이라고 저장해두었다. 오 년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난 그분의 연락처를 지우지 못했다. 한 번씩 핸드폰 연락처에서 '고마운 분'을 볼 때마다 그때가 생각난다. 나에게 너무나 고마운 분.


 나이가 조금씩 들어갈수록 생각한다. 난 다른 사람과 여유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인가? 나도 누군가에게 고마운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지금은 아니라도 언젠가 단 한 명에게라도 그런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누군가의 하루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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