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저물어가던 어느 날, 그날은 유달리 운이 좋은 날이었다. 날씨도 좋았고, 크고 좋은 사냥감을 잡아 가족들이 모두 배불리 먹었다. 해가 저물어가자 여우는 아이를 데리고 아내를 처음 만난 언덕으로 갔다. 그 언덕이 이 근처에서 가장 높기에 바다가 잘 내려다보았기 때문이다. 여우는 행복했던 오늘을 기억에 남기고 싶었다. 해가 수평선을 넘어가면서 바다가 붉게 물들고 있었다. 그때 뒤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뒤를 돌아본 여우는 그만 몸이 굳어 버렸다. 사냥꾼이 총을 들고 자신을 겨누고 있었다. 얼른 아이를 데리고 도망가야 하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움직여! 아이를 어서 안전한 곳으로 데려가야 해!’
여우는 마음속으로 외쳤지만 굳은 몸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때 어디선가 나타난 아내가 자신을 밀치는 게 느껴졌다.
“탕”
봄 햇볕이 따뜻했던 그날, 엄마가 사냥을 나가며 작은 여우에게 절대 혼자서 굴 밖으로 나가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작은 여우는 엄마의 말을 어길 생각이 없었다. 혼자는 무서웠기 때문이다. 작은 여우는 엄마를 기다리고 기다렸다. 그러다 잠깐 잠이 들었던 것 같다. 코끝이 근질근질해 눈을 떴다. 하얀 나비가 여우 코끝에 앉았다 날아가 버렸다.
“나비야, 같이 놀자!”
작은 여우는 정신없이 나비를 쫓아갔다. 나비를 잡으려 쫓아다니다 보니 엄마가 절대 가지 말라고 했던 들판 한가운데 자신이 서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어떡하지 엄마한테 혼자겠어. 얼른 다시 집으로 가야지.’
하고 생각하는 순간 여우는 봤다. 사냥꾼의 총구가 자신을 겨냥하고 있었다.
“탕”
그 순간 엄마가 작은 여우를 밀쳤다. 다음 작은 여우가 기억하는 건 엄마 입에 물려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는 것이다. 작은 여우는 느낄 수 있었다. 엄마가 거친 숨을 내뱉으며, 있는 힘을 다해 뛰고 있다는 것을. 엄마는 한참을 그렇게 뛰었다. 그러다 커다란 상수리나무 밑에 도착해서야 작은 여우를 입에서 내려놓았다. 작은 여우는 엄마에게 혼이 날까 너무 무서웠다. 하지만 엄마는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서 잠깐만 쉬었다 가자, 아가야”
엄마는 가는 숨을 쉬며 그 자리에 털썩 누웠다. 작은 여우도 엄마 옆에 붙어 누웠다. 작은 여우는 엄마의 숨소리가 점점 거칠어지는 것을 느꼈다.
‘뭔가 잘못됐어.’
작은 여우는 몸을 일으켜 엄마를 다시 봤다. 그리고 그제야 깨달았다. 엄마가 자기를 대신해 총에 맞은 것을. 엄마는 자신을 안전한 곳으로 옮기기 위해 자신의 마지막 힘을 썼다는 걸 말이다.
“엄마! 엄마! 일어나 봐요. 엄마! 내가 잘못했어요.”
작은 여우는 목 놓아 울었다. 하지만 작은 여우가 우는 동안 엄마의 생명은 조금씩 꺼져 갔다. 마침내 여우가 울음을 그쳤을 땐 엄마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작은 여우는 결심했다. 엄마 곁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작은 여우는 엄마 옆에 누웠다. 그리고 두 눈을 꼭 감았다. 그렇게 작은 여우에게 끝을 찾을 수 없는 어둠이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