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는 그녀와 같은 공간에 있는 것이 너무도 자연스러웠다. 원래 그렇게 되기로 정해졌던 운명처럼 말이다. 그녀와 같이 하는 여우의 삶은 이렇게 지내도 될까 싶을 정도로 평화로웠다. 여우는 어릴 적부터 혼자 지냈기에 그녀에게서 여우로써 살아가는 법에 대한 많은 것들을 배웠다. 둘이 사냥하는 법, 숨을 수 있는 안전한 장소를 찾는 법도 배웠다. 먹을 수 있는 식물과 곤충을 찾는 방법도 그녀는 많이 알고 있었다. 그들은 이른 아침이면 같이 바닷가에 앉아서 해가 바다에서 떠오르는 바다를 바라봤다. 해가 수평선에서 떠오르며 여러 가지 색깔로 바다를 물들였다. 매일 똑같은 것 같았으면서도 날마다 다른 색으로 물들어가는 바다는 아름다웠다. 그들은 같이 사냥해 나눠 먹고 같이 잠을 잤다. 시간이 흐를수록 여우는 지금의 삶이 자신의 모든 것이라 생각했다. 마음속 깊이 묻어둔 그 일들은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서쪽은 어떤지 얘기해 줘.”
가끔 그녀가 물었다. 아내는 알고 있었다. 여우가 행복하다고 말은 하지만, 마음속 어딘가 응어리진 뭔가가 있다는 걸 말이다. 여우가 바다를 받아 볼 때면 표정이 어두워진다는 것도….
“바다 대신 넓은 들판이 있어. 산도 있고, 나무도 많고.”
“그런 것 말고 형제들과 친구들 얘기도 해줘.”
아내는 그 슬픔을 자신에게 얘기해주지 않는 여우에게 섭섭해했다. 하지만 여우는 다시 그 슬픈 기억을 끄집어내고 싶지 않았다.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난 혼자였어.”
여우는 굳은 얼굴로 입을 닫아 버렸다. 아내는 이제 안다. 그가 입을 닫아 버리면 한동안 다시 열지 않는 것을 말이다.
여우가 바다에 도착했을 땐 마지막 겨울이 맹위를 떨치고 있었다. 지금은 햇살이 따스하다 못해 뜨거워지고 있었다. 그렇게 햇볕이 뜨겁게 내리쬐던 어느 늦봄, 아기 여우가 태어났다. 아이는 큰 눈과 귀, 보드라운 털을 가지고 있었다. 여우가 아이를 처음 보는 순간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여우의 심장은 그 순간을 영원히 기억하려는 듯 잠깐 멈춘 것 같았다. 세상에 이보다 소중하고 값진 것은 없는 것 같이 느껴졌다. 여우는 아이에게 모든 것을 해주고 싶었다. 마치 자신이 받지 못한 사랑을 대신하려는 듯했다. 아이가 걸어 다니는 길의 돌멩이는 모두 치워주고 싶고, 배가 고플까, 춥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했다. 그럴 때마다 아내는 다그쳤다.
“그렇게 일일이 챙겨주기만 하면 아무것도 못 하는 아이로 자랄 거예요.”
여우는 아내의 말이 맞는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여우는 자기가 할 수 있을 때까지 아이를 챙겨주고 싶었다. 세상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