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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수아이 Mar 11. 2021

나의 창밖에는 눈

[120~122일차]


아주 오래 전, 터키라는 나라를 생각했을 때 떠올랐던 것은 뜨거운 사막과 아랍 복장의 사람들, 터번과 낙타, 그런 것들이었다. 따뜻한 모래와 겨울에도 영하로 떨어지지 않는 온난한 지중해성 기후. 그 따뜻함이 가져다주는 여유로운 분위기.


황토색 흙벽으로 가득한 마을에 들어서면 평상에 앉아 물담배를 피는 사람들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겠지. 그러면 나는 항공사의 광고가 잔뜩 그려진 부채를 팔랑거리며 열기가 올라오는 흙길 위를 걸어 그들을 지나칠 거고. 뜨끈한 바람을 타고 날아온 주변 가게의 향신료 냄새가 코에 들어오면 서서히 배가 고파질 것이다. 그러면 무거운 배낭을 내려놓고 먹음직스러운 케밥을 먹을 식당을 천천히 물색한다. 문과 창문을 활짝 열어놓은 식당에서는 고기에서 떨어진 기름이 불에 닿으며 만들어진, 매캐하면서도 군침도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 나와 사람 가득한 길거리를 뿌옇게 메우겠지.


떠올리기만 해도 몸이 따뜻해지는 그런 풍경으로 나는 터키를 상상했다.



..그랬던 내가, 터키에 와서 일생껏 본 적 없던 눈보라를 경험할 줄이야.


간밤의 퇴근시간에 밤하늘에는 먼지인지 뭔지 모를 것 같은 하얀 가루가 조금씩 날렸다. 겨우 눈이라는 걸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의 가느다란 눈가루를 보고 오늘의 이 모습을 상상하기는 어려웠다.


잠에서 깨어 출근버스를 타러 나오자 나를 맞이한 건 '간밤에 눈이 왔구나' 정도로 넘길 수 있는 감상적인 하얀 세계가 아니었다. 그냥 <투모로우>급의 재난이 실시간으로 벌어지고 있는 가혹한 세계. 함박눈은 아니었지만 시야를 가릴 정도로 촘촘하게 내리는 가루눈이 거센 바람을 타고 거의 수평으로 날리고 있고, 땅에 찍힌 누군가의 발자국은 그 끝이 안보일 정도로 깊게 파여 있다.


언젠가 이렇게 눈으로 고립된 세계를 상상하며 소설로 적은 적이 있지만, 눈앞에 펼쳐진 현실은 내 얕은 상상력을 뛰어넘는다. 그런데 이게 오늘의 내 출근길이라니. 호텔 마당을 지나 정문의 버스까지 가는 길조차 거대한 모험이다. 원래 30분이면 현장에 도착하던 버스는 눈길 위를 조심해서 달리고 안전한 곳으로 돌아가느라 한시간이 넘게 지체된다. 출근길이 길어지긴 해도 별 걱정은 없다. 이 날씨에 작업 따위를 할 리가 없으니까.


도착한 현장은 엄청나게 쌓인(그리고 실시간으로 쌓이고 있는) 눈으로 완전히 마비 상태다. 버스에서 내려 사무실에 가려니 맞바람을 타고 얼굴로 날아드는 눈 때문에 눈을 뜰 수가 없다. 잠깐 눈을 떴다가 눈에 눈을 얻어맞은 뒤로(엄청 아프다) 나는 뒤로 걷기 시작한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눈보라를 등지며 백스텝을 밟으며 걷고 있으려니 지나가던 터키인이 깜짝 놀란듯이 한국어로 말한다.


"왜 그렇게 걸어요??"


나는 그녀에게 눈보라 때문이라고 답한다. 그렇게 놀랄 일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갑자기 귀신은 사람의 행동을 거꾸로 한다는 말이 생각이 난다. 터키에도 그런 미신이 있을까. 어쨌든 사람들이 놀라건 말건 차마 앞을 볼 수가 없기 때문에 계속 뒤로 걷는다. 뭐 어딘가에 걸려 넘어지더라도 푹신한 눈 위에 기분 좋게 쓰러지기 밖에 더 하겠어. 꿋꿋이 앞으로 걷는 사람들이 오히려 신기할 뿐이다.


잠깐 걷는 것 만으로도 거의 눈사람이 되다시피 한 사람들은 그나마 따뜻한 공간이 있는 식당으로 모인다. 김서린 안경과 창문. 녹아서 옷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 물. 모두들 갑작스런 폭설에 대해 이야기하며 혀를 내두른다. 떠들썩한 분위기에서 다들 은근히 즐거워하는 느낌이 든다. 말도 안 되는 폭설의 광경에 어이가 없다는 듯 너털웃음을 뱉는 사람들. 당연히 작업은 못 하는 거고, 이제 마냥 사무실에서 대기를 할 것인가, 조기퇴근을 할 것인가를 정하는 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우여곡절 끝에 결국 모두 퇴근을 하는 것으로 결정이 났지만 호텔로 돌아가는 것도 일이다. 버스기사들이 폭설에 운전하기를 거부해서(올 때는 어떻게 왔지) 배차를 받느라 또 시간을 보낸다. 그러는 동안 나는 눈으로 덮인 현장의 진귀한 풍경을 이리저리 구경하기로 한다.


차우차우는 오늘 같은 날에도 사무실 앞으로 출근을 했다. 거의 흰둥이가 될 것처럼 눈을 뒤집어 쓰고 있다. 눈 위에 배를 깔고 앉아 있는 걸 보니 별로 추워보이지는 않는다. 털가죽이 복실복실해서 그런가.


사람만 보면 반사적으로 배를 뒤집고 누워서 '뒤집개'라고 이름 붙여준 이 녀석은 불쌍하게도 버스 정류장 탁자 밑에 젖은 채로 웅크리고 벌벌 떨며 자고 있다. 잠에 빠져 비몽사몽이라 오늘만큼은 사람들이 와도 배를 뒤집을 여유는 없는 것 같다.


푹신하게 깔린 눈을 보고 차마 참을 수가 없어서 눈 위에 대자로 누워버린다. 아까 그 터키인이 이 광경을 봤으면 또 '왜 그렇게 누워있어요??" 했겠지. 눈만 보면 신나는 게 어쩔 수 없는 남부인인 것 같다.


서울 사람 바다 보듯, 부산 사람 눈 보듯.


공사현장에서 신나게 사진 찍고 다니며 놀다가 간신히 버스가 마련되어 탈출한다. 눈보라는 여전히 현재진행중이고, 예기치 않게 얻은 꿀맛 같은 휴식시간을 즐긴다.


초등학교부터 친구인 JB가 어느새 터키에 도착해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한 상태다. 근무지도 서로 다르고 야간 주간도 서로 달라서 이렇게 쉬는 날이 아니면 마주치기가 쉽지 않다. 방에 놀러 갔더니 온지 얼마 안 돼서 방이 아직 깨끗하다. 곧 너도 나처럼 되겠지. 이런 곳에서 함께 있게 될 줄은 몰랐는데. 묘한 기분이다.


눈보라 때문에 밥을 먹으러 로비로 가는 것조차 보통 일이 아니다.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10미터 정도 걸었을 뿐인데 몸은 온통 눈투성이고, 머리는 젖고, 몸엔 아드레날린이 한가득 솟아오른다. 기가 막힌 날씨와, 어쩐지 흥겨운 기분.


눈보라가 몰아친 다음 날, 세상은 어느정도 정돈되어 있다. 공기는 무척 맑고 시야는 투명하다.


평범한 일상의 어느 순간, 창밖을 보며 문득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지금 이 창밖에 유럽의 한적한 마을의 풍경이 펼쳐져 있다면 좋으련만. 늘상 보는 전봇대와 적갈색 벽돌 건물과 비둘기색 빌딩들, 형형색색의 난잡한 간판들이 아니라, 낯선 산과 하늘, 보기 좋게 깔맞춤한 서양기와 지붕, 그런 것들이 펼쳐져 있다면. 보름 정도 마음에 드는 숙소를 하나 잡고 낯설지만 아담한 그 집의 생활에서 나만의 루틴을 하나씩 만들어가면서, 언제든 기분이 울적할 때(물론 여행 중에 그럴 일은 없겠지만) 창문만 열면 그런 풍경을 언제나 감상할 수 있다면.


지금 당신의 창밖 풍경은 어떠한가?


비록 유럽인지 아시아인지 헷갈리는 이곳이지만, 어쨌든 지금 내 창문 밖의 풍경은 낯설고 즐거운 상태다. 창문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숨을 크게 들이마쉬면 뒷골까지 깨끗하고 차가운 바람이 날카롭게 들어와 울린다. 맡아본 적 없지만 맑고 좋은 냄새다.


낯설다는 것이 내겐 중요하다. 눈은 세상을 쉽게 낯설게 만든다. 눈이 내린 터키 마을의 풍경은 낯설고 낯설다. 그러므로 나는 두 배나 즐거운 상태다.


빨리 치워지는 눈은 나를 아쉽게 만든다.


낯설고 산뜻했던 풍경이 점점 질척이고 남루해지기 때문에 그렇고,


정상적인 작업으로 복귀할 시간이 점점 다가오는 것 때문에도 그렇다.


그래도 여전히 눈이 남은 공간은 어디엔가 있다.


하늘을 메운 하얀 구름과, 발자국 조차 없는 하얀 눈 덮인 길은 도화지 같아서, 주변의 색을 쉽게 빨아들인다.


가로등 불빛을 먹은 눈 덕분에 세상은 은은한 주황빛으로 물들었다. 그런 무드의 공간에 있으면 꼭 어떤 이야기책 한 가운데로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해리포터의 움직이는 삽화처럼 나는 내 추억의 몽환적인 페이지 어느 한 장에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열심히 꼼지락 꼼지락 움직이고 있는 중일지도 모른다.



다만 아직도 봉쇄가 풀리지 않아서, 이렇게 좋은 기회에 숙소 근처의 풍경만 볼 수 있다는 것이 아쉬울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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