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 너무나 많이 사랑한 죄
아이는 부모에게 어떤 모양의 사랑을 건네고 있을까.
아이의 사랑은 너무나 커서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그 깊이를 알아차리기 어렵다.
때로 그 사랑은 위로가 되기도 하고,
부모의 마음을 다 녹여버리는 작은 기적이 되기도 한다.
어느 날 저녁, 샤워 후 아이의 긴 머리를 말려주고 있었다.
내 손을 덥석 잡은 아이가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엄마, 나... 엄마한테 죽을죄를 지었어.”
“뭐?? 무슨 죄를 지었는데?”
“... 너무나 많이 사랑한 죄~ 널 너무나 많이 사랑한 죄~”
<FT아일랜드의 ‘사랑앓이’란 노래입니다.>
순간 당황했지만, 결국 함박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내 표정이 놀람에서 행복으로 바뀌자
아이도 따라 배시시 웃었다.
장난기 어린 아이의 얼굴을 보며 생각했다.
사랑에 모양이 있다면
아마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아이의 사랑은 언제나 조건 없이 다가온다.
내가 식탁밑으로 고개를 숙일 때면,
‘엄마 부딪힐까 봐..’하며 살포시 내 머리 위로 손을 얹는다.
걷다 보면 어느새 내 손을 꼭 잡아오고,
잔소리를 해도 다음 순간 ‘엄마, 사랑해’ 하고 속삭인다.
다투고 서로 기분 상해 있다가도 먼저 다가와 안아준다.
‘작은 아이의 몸 어디에 이처럼 과분한 사랑이 들어있는 걸까.’
가끔 진심으로 궁금해진다.
그 사랑은 작고 조용한 행동 속에 숨어 있다.
아이의 손끝, 눈빛, 그리고 내 곁에 머무는 그 모든 순간에.
하지만 나는, 과연 그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는 어른일까.
자꾸만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다.
지난 주말, 낮잠을 자고 있었다.
아이는 내 옆으로 다가와 머리를 가만히 쓸었다.
심심하니 일어나라는 뜻이었겠지만,
나는 벌컥 짜증을 내고 말았다.
워킹맘으로 사는 나에게,
어쩌다 한 번 허락되는 낮잠은 꿀처럼 달콤하다.
깨고 싶지 않은 달콤함을 방해받으니,
왜 그러냐는 날 선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생각해 보면 아이가 한 행동은,
내가 아이를 깨울 때 하던 그것이었다.
옆에 누워 손을 만지고, 머리를 쓸어 넘기고,
얼굴에 귀찮도록 뽀뽀를 해댔다.
팔베개를 해주려 목 뒤로 팔을 넣으면,
아이는 눈도 뜨지 못한 채 미소를 지으며 안겨왔다.
그런 아이에게 나는 짜증을 냈다.
나도 엄마가 처음이고, 때론 지치고 힘들다.
아이에게 그런 감정을 보이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그날은 잠결이었다고, 내심 스스로에게 변명을 해본다.
잠에서 깬 나는 곧장 사과를 건넸다.
아이는 마음에 담아두지 않은 듯 용서했다.
아이들은 부모를 쉽게 용서한다.
화를 내도, 실망시켜도,
조금만 다정하게 대해주면 또 웃어준다.
그게 너무나 고마우면서도 미안하다.
내가 더 나은 어른이지 못함에 부끄럽다.
아이의 사랑은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살게 하는 힘이 있다.
그래서 나 자신을 다듬고, 돌아보고, 다시 마음먹게 만든다.
‘아이가 나를 사랑하는 만큼 나도 아이를 그렇게 사랑할 수 있을까.’
아이의 가장 큰 마음을 받은 나는,
이 사랑을 어떻게든 더 좋은 사람으로서 돌려주고 싶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좋은 어른이 되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