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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이피는섬 Oct 08. 2021

굳이 고맙다고 말하지 않지만

진정한 서른여덟 살

몇년 전에 예전 직장 선배의 결혼식에 초대를 받았다. 

결혼하는 선배를 진심으로 축하했지만 결혼식에 가려고 하니 마음에 걸리는 사람이 있었다.


내 첫 직장의 사수이자 지독하게도 나를 괴롭혔던 팀장님. 

아니 괴롭혔다는 건 내편에서의 기억이고 실상은 그저 성격이 맞지 않는 사람이었다. 

보수적이고 위계질서를 중요시하는 팀장님은 객기가 충만했던 20대 중반의 나에게 참 많이도 미움을 받았다. 

그때 나는 더 재미있고 새로운 방법들이 있는데 항상 안전한 길, 자기가 해봤던 예전의 방식만을 고집하는 팀장님의 모습이 답답하고 무능력해 보이기까지 했다. 


지금 생각하면 갓 들어온 신입 주제에 나는 왜 그렇게 내 의견이 많았을까. 

게다가 팀장님은 내가 자기에 대해 느끼는 감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자꾸 나를 챙겼다. 

하지만 사수가 업무 외적인 부분에서 챙겨주는 걸 누가 바랄까? 

퇴근할 때는 같이 저녁을 먹자고 하고, 옷 사는 데 좀 따라가 달라고 하고, 

내가 이사해야 할 때쯤에는 본인 동네의 부동산을 소개해주셨다. 


마음속에서는 ‘대체 왜 저러는 거야.’ 하면서도 거절하지 못하는 성격 때문에 결국 저녁도 먹고, 쇼핑도 따라가고 결국엔 이사도 팀장님 친정집 근처로 가게 되었다. 그렇다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 정이 들어 친해진 것도 아니다.


결국 그 팀장님 아래서 2년도 채 안 돼서 회사를 그만두었다. 이유는 보수적인 조직이었던 그 회사를 견디지 못했던 것이었고, 막 신입 딱지를 떼고 내가 무엇이나 된 것 같이 느껴져서였다. 


그럼에도 나는 그 모든 것이 그 팀장님 때문이라는 듯 퇴사 이유를 묻는 팀장님에게 벼르고 있던 날카로운 말로 칼을 꽂았다. ‘이 회사에 있으면 내 미래는 당신이다. 나는 당신처럼 되기 싫다.’라고.


물론 정말 이렇게 말한 건 아니다. 마음속에 분노는 많지만 잘 표현 못 하는 성격이라 그 뉘앙스를 담아서 에둘러 말했던 것 같다.


퇴사하고 얼마 뒤, 같은 업계의 다른 회사에 갔음에도 팀장님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누군가를 통해서 알게 될 텐데, 그렇게 알게 되면 분명히 서운해할 사람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렇게 꽤 오랜 시간이 지나서 그 회사에서 친했던 선배의 결혼식이 있었던 것이다.

만나고 싶지 않았지만 역시나 팀장님도 결혼식에 참석했고 어색하게 인사를 했다. 

참 이상하게도 그렇게 싫었던 사람인데 오랜만에 보니 그저 평범하게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사람 마음이라는 게 그래서 복잡한 것인가 보다. 그렇다고 그날 극적으로 응어리가 풀어진다거나 했던 건 아니었다. 

그냥 마음이라는 게 나도 이해 못 할 것인가 보다, 

시간이라는 게 그렇게 만드는 건가 보다, 그렇게 생각하고 끝이었다.

그것도 벌써 몇 년 전 이야기이다.



이제 그때의 팀장님보다 더 나이를 먹은 요즘의 내가 느끼는 것은 팀장님도 방법은 서툴렀지만 애쓰고 있었다는 것. 



처음 팀장이 되었을 때, 나는 참 엉망진창이었다.

윗사람보다 오히려 내 팀의 부하 직원을 대하는 게 힘들었고 그들에게 미움을 받고 싶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그랬다. 미움받을 용기가 없어서였을까? 

윗사람에게는 딱히 그런 용기가 없어도(항상 부족한 사람 취급을 받으니) 오히려 신경 쓰이지 않은 것도 같다.



후배에게 어쩔 수 없이 한마디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 마음이 움츠러들었다. 

일에 대한 지적이어도 분명히 기분 상해한다는 걸 알기 때문에. 

그래서 고민했다. 할까? 말까? 

'그냥 저 친구에게는 앞으로 이만큼만 기대하면 되지 않을까? 

나머지는 내가 하면 되지 않을까?'



상사가 되고 그런 고민을 반복하면서 생각했다. 

'부족함을 지적해 주고, 네 생각과 경험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 참 불편하고 마음을 무겁게 하는구나.'


내가 너무나 소심한 사람이라, 지레 상대방의 감정과 마음까지 감당하려고 했던 것 같다. 

그래서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조심스러웠다.  



그 미운 팀장님은 그런 것들을 감수하고 나에게 지적하고 말해주었던 거였다.

지금 와서 나에게 했던 행동들을 생각하면 그 사람은 나를 자신의 방식으로 가르치고 싶어했다. 아마 나와 오래 함께 일하고 싶어했던 것 같다.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고마웠다. 

마음과 별개로 그 사람의 방식은 너무나 싫지만.




굳이 이제와서 고맙다고 말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천하에 없을 이상한 싸이코로 기억하지는 말아야지 생각했다. 




혼자서 씩씩하게 걸어왔다고 생각했던 길을 되돌아보면 이상하게도 고마운 사람뿐이다. 

그냥 곁에 있어 줘서, 힘들 때 손 내밀어줘서, 또 나를 힘들게 해줘서…. 

열심히 살아온 지금의 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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