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아무 일정도 없는 토요일은 늦게까지 자고 점심쯤 일어나 밥을 챙겨 먹고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거나 청소를 하면서 별일 없이 여유롭게 지내는데 말이다.
언제,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회사일이 2월에 다 몰려서 지지난 주와 지난주는 주말까지 일을 했다. 물론 평일에도 야근을 계속하고.
20대 때나 30대 초반까지만 해도 이런 일정쯤 아무렇지 않았는데 확실히 이제는 체력이 달린다. 눈도 아프고 허리도 아프고, 집중력도 떨어져서 야근을 한다고 해서 극적으로 업무 진행이 빠르게 되는 것도 아니지만 그걸 알면서도 야근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지지난주에는 토요일에는 회사로 출근하고 일요일은 재택근무(?)를 했다. 지난주에는 몸이 너무 지쳐서 토요일은 그냥 쭉 자버렸다. 토요일 하루 출근한다고 해결될 업무도 아니고 연달아 주말에 쉬지 못하면 주중에 일하다가 화가 폭발하거나 허리가 나가거나 둘 중 하나일 것 같아서 그냥 쉬기로 했다.
하루 종일 침대에서 뒹굴거리며 누워 있다가 밀린 빨래를 세탁하고 밀린 설거지를 하고 다시 뻗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마음이 편치는 못했다. 계속 오후에라도 회사에 나갈까, 아님 혹시 몰라서 나에게 보낸 메일에 그 원고를 열어서 수정을 할까 그렇게 고민하면서 하루가 갔다. 몸은 누워있었지만 마음이 괴로웠으니 쉬어도 쉰 게 아니다.
그러다 주일엔 집에서 가까운 교보문고로 시장 조사를 나갔다. 바쁜 와중에 풀리지 않는 표지 디자인 때문에 주중에 계속 콘셉트 회의를 했는데 결국 답을 찾지 못해서였다. 매일매일 인터넷 서점에서 시장조사를 하지만 실물로 보는 것도 중요하다. 화면에서 보던 것과 실물로 보면 느낌이 완전히 다른 것들도 많다. 디자인 시장조사는오래전부터 계획하고 있었는데 급한 원고들이 쌓여 있어서 주중에는 서점에 갈 시간도 없었다. 샘플도 찾고 인터넷으로 조사할 것들은 조사했지만 그럼에도 표지 디자인 방향에 대한 결론이 나지 않았다. 결국 금요일 오후에 '편집팀, 디자인팀, 마케팅팀, 제작팀 담당자들 모두 주말에 시장 조사해서 월요일에 다시 얘기합시다.'라는 결론으로 한 주가 지나고 말았다. 그래도 어쨌거나 소중한 주말 하루와 그동안 회의한 내용들을 아울러 주중에 드디어 표지가 해결되었다. 다행히도.
평화로운 보통의 내 주말이 너무나도 그리운 2주간, 아니 3주간이었다.
나의 보통의 주말은 별일은 없지만 그래도 나에게는 정말 소중한 시간이다.
일을 할수록 잘 쉬어야 더 잘 일할 수 있다는 말이 맞다는 걸 느낀다. 경주마처럼 달린다고 되는 일도 아니고
어떤 일은 한 발짝 멀어져서 바라보는 여유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더 좋은 결정을 내릴 수 있다. 너무 일에 매몰되고 정신적으로 지쳐버리면 내 일에 대해 누군가 조언을 해주거나 지적을 해도 객관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했는데. 뭐! 왜! 너희들이 뭘 알아?' 그런 분노가 올라오는 것이다.
한동안 내가 정말 그렇게 일을 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존중하지 않고 나 혼자 잘난 것처럼 독불장군이었던 것이다. 늘 화가 나 있었다.
지금은 의식적으로 모두에게 의견을 들으려고 한다. 확신은 가지고 있어야 하지만 고집은 내려놓을 수 있도록. 또 내가 하는 일이 혼자서 하는 일이 아니라는 걸 기억하기 위해서.
그런 정신적 여유와 한 발짝 멀리서 바라보는 자세를 가지기 위해서는 주말에 쉬어야 한다. 무조건!!
철칙처럼 지키려고 하는데 아무튼 이번 달에는 2주 동안이나 일을 하고 만 것이다!
보통의 주말은 제철 재료로 나를 위한 제대로 된 음식을 만들려고 하는 편이다. 재료 구입부터 손질하고 만들고, 정리하는 것까지 들어가는 노력에 비하면 그 노력이 무색하게 맛이 없을 때도 있지만 어떻게든 수습하다 보면 그래도 아주 실패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혼자 있지만 나를 위한 것들에 인색해지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어느샌가 혼자 있으니까 대충 먹고 대충 입고, 뭐든 대충일 때가 많아졌다. 나만 타협하면 되기 때문에 좀 더 게을러도 되고 누구에게 피해 끼치는 것도 아니니 편리하다면 편리한 선택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시간이 오래되다 보니 언젠가부터 나마저도 나를 소홀히 대하는 것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분수에 넘치는 소비를 하는 것도 아닌데 자꾸만 내가 원하는 것을 내가 제한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생각했다. 내가 소중한 사람에게 해주고 싶고 해 줄 수 있는 것을 똑같이 나에게 해주자고.
나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은 지금의 나니까. 나에게 투자하는 시간과 비용을 아까워하거나 귀찮아하지 말자고 생각했다.
그런 이유로 주말엔 제대로 된 요리를 하나쯤 해서 나에게 대접한다. 물론 그냥 평소에 자주 못 먹는 비싸고 맛있는 음식을 사 먹는 걸로 대신할 때도 있다.
또 다른 보통의 주말 루틴 중 하나는 주말이나 그 주에 읽은 책을 인스타그램에 남기는 것이다. 긴 서평을 쓰지는 않는다. 기본은 그냥 일주일 동안 읽은 책들을 모아서 '읽었다'라고 올리는 게 전부다. 아주아주 인상 깊고 좋았던 책에 대해서는 두세 줄 정도의 코멘트를 남긴다. 장황하게 늘어놓는 이야기보다 그게 좋다. 서평에 대한 부담을 느끼면서 책을 읽고 싶지도 않고 또 책에 대한 느낌과 생각은 언제든 바뀔 수 있으니까. 그래도 어딘가에 내가 읽은 책들을 기록해 두고 싶어서 몇 달 전부터 인스타그램을 이용하고 있다.
하다 보니 모르는 사람이 와서 좋아요를 누르는 것도 재미있고 지인들이 자기도 내가 읽은 책을 읽었다며 반응하는 것도 재미있다. 어쨌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누군가와 함께 이야기한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어떤 주말엔 주객이 전도된 것처럼 내 북스타 그램을 챙기기 위해 책을 읽을 때도 있다. 어찌 됐든 차곡차곡 쌓여가는 기록이 좋다.
생각해보니 보통의 주말에 하는 일은 이것뿐이다.
그때그때 친구들을 만나기도 하고 쇼핑을 하기도 하고 서점을 가거나 산책을 하기도 하고 드라마를 정주행 하기도 하고. 아주 단순한 루틴 안에 커다란 빈칸을 넣어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