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피부가 탄 게 아니었다니
* 시골에서 자란 모든 사람의 피부가 까무잡잡한 건 아니다. 내 피부가 까무잡잡한 게 ‘시골에서 자랐기 때문’이라는 나의 우스운 착각에서 비롯된 에피소드일 뿐이다.
나는 피부가 까무잡잡한 편이다. 잘 구워진 쿠키보다는 잘 끓인 된장국 색에 가까운, 약간 노랗고 어두운색. 그래서 그런지 하늘색, 연보라색처럼 밝은 옷을 입으면 정말 이상한 사람처럼 보인다. ㅋㅋㅋ 애석하게도 친한 친구들은 다 피부가 하얗다. 그래서 사진을 찍으면 나만 조명을 안 받은 사람처럼 어둡게 나온다. 피부가 하얀 친구들은 내가 건강해 보이고 기미가 잘 안 생긴다고 부러워했지만, 나는 하얀 피부가 더 깨끗하고 밝아 보여서 부러웠다.
그래서 나는 내 피부가 사실은 하얀 편이라는 증거를 찾기 위해 꽤 자주 애썼다. 어느 날 나는 내 피부가 밖에서 너무 많이 뛰어놀아서 탄 거라고 확신했다. 6학년 때 반바지를 입었던 내 다리가 꽤 하앴다는 사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팔을 돌려 안쪽을 보면 피부가 꽤! 하얗지 않은가. (지금 생각하니 꽤 어처구니없는 이유다)나는 들뜬 마음으로 즉시 엄마에게 달려갔다. 우리 엄마는… 자기만의 세계가 확실한 사람이라서, 우리 남매에게 특별히 조언하거나 우리 이야기를 듣고 반박한 적이 없다. 진지하거나 무겁기보다는 즐거움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엄마가 내 말을 잘 듣고 공감해줄 거로 생각했다.
“엄마, 엄마. 내 피부가 원래는 하얀 편이었는데 시골 살면서 일하고 밖에서 놀면서 많이 타서, 그래서 지금 이렇게 까만 것 같아. 원래 여름에 타도 겨울에 햇빛 안 보면 금방 하얗게 되는데, 나는 피부가 다시 하얗게 될 새가 없었던 거지!!”
“…”
평소 엄마였다면 “그래?”라고 한마디는 할 법 한데, 엄마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나는 굴하지 않고 계속 설명했다.
“나 6학년 때 있잖아. 그전까지는 반바지를 안 입다가 그때 처음 입었는데 내 다리가 꽤 하앴단 말이지? 그러고 보면 다른 데는 다 탔는데 다리는 안 탔으니까 하앴던거지! 나 지금 팔 안쪽도 꽤 하얗다구!”
“…”
“아니 엄마, 진짜라니깐...? 엄마도 어릴 때 하얀 편이었다며. 나도 사실은 엄마를 닮았는데 그냥 햇빛에 너무 많이 탄 거라는 거지!!”
엄마는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내 말을 듣고 있다가, 갑자기 내 얼굴을 한참 동안 쳐다봤다.
“왜?? 아닌 것 같아? 나 태어났을 때 생각해봐. 태열이 있어서 잘 몰랐겠지만, 지금처럼 까맣지는 않았지??”
엄마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무심하게 한마디를 뱉었다.
너… 배도 하얘?
세상에. 나는 엄마의 짧은 한마디에 쓰러지고 말았다. 내 구구절절한 설명을 엄마는 다섯 글자로 무너뜨린 것이다. 내 배는 하얗지 않다…. 전혀… 그러고 보면 한 번도 햇빛에 노출될 일 없었던 등도, 허리도, 옆구리도 전혀 하얗지 않다…
내가 무슨 말을 하든 “그래?” “그랬구나” 하는 엄마가 “너... 배도 하얘?”라고 진지하게 물어볼 정도라니. 얼마나 내가 하는 말이 어이가 없었으면 그랬을까. 엄마는 태어나서부터 20년 넘게 본 딸의 피부가 한 번도 하얗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 이후로 나는 내 피부가 하얗다는 말도 안 되는 가정을 다시는 꺼내지 못했다.
엄마 덕분에 나는 빠르게 내 피부색을 인정하고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하긴. 토종 한국인인 엄마와 아빠 사이에서 나왔으니, 내 피부가 적당히 노란 건 당연한 일인데. 왜 그렇게 피부가 하얀 사람이 되고 싶어 했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