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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nnotyoon Aug 20. 2023

#7 내겐 너무 빠른 경의중앙선

사라진 버스를 찾아서

  우리집은 경의중앙선과 가까이 있다. 내가 경기도에 살게 된 후 가장 처음 탄 지하철도 경의중앙선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경의중앙선은 잦은 연착과 긴 배차간격으로 대표적인 비호감 지하철 노선 중 하나이다.


  하지만 내가 처음 느낀 경의중앙선의 이미지는 편리하고 빠른 최고의 대중교통 수단이었다. 15-20분만 기다리면 정해진 시간에 오고, 조금 늦게 오더라도 지하철 앱을 보면 얼마나 늦는지 확인 할 수 있고, 돌아가는 일 없이 정해진 길로만 가는.


  서울이나 경기도에 오래 산 사람들은 이 말을 들으면 기겁한다. 2호선은 2-3분 만에 한 대씩 오고, 지하철은 원래 연착되는 게 아니며, 지하철이 돌아가면 그건 큰 사고라면서… 하지만 내 이야기를 들으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전 글에서 몇 번 언급했던 것처럼 나는 중학생 때부터 학교를 다른 도시로 다녔다. 중학교 입학과 함께 아빠의 직장이 옮겨지면서 아빠 출근길에 차를 얻어타고 등교를 할 수 있었다. 하나 안 좋은 점이 있다면 등교 시간이 8시 20분이었던 그 시절, 경비아저씨와 함께 7시 20분에 등교해 교실에 혼자 우두커니 앉아있어야 했다는 거다.


  어쨌든 학교를 마치면 다시 아빠의 퇴근을 기다렸다가 함께 집으로 갔다. 학원에 다니지 않았던 나는 기다릴 곳이 마땅히 없었는데, 그런 내 사정을 안 선생님들이 도서관이나 진로진학실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배려해 주셨다. 책을 읽거나 과제를 하거나, 친구랑 떡볶이,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시간을 때우다 보면 아빠가 나를 데리러 왔다. (학교 앞 파리바게뜨를 너무 많이 가서 적립된 포인트만으로도 며칠동안 간식을 먹을 수 있었다.)


  문제는 가끔 아빠의 퇴근이 늦어지는 날이다. 분명 곧 퇴근한다는 연락을 받고 나가서 기다렸는데, 30분이 지나도 40분이 지나도 아빠가 오지 않는 거다. 그러다가 아빠를 만나서 집에 가면 다행이지만, 그렇게 한참을 기다리다가 아빠가 급한 일이 생겨 데리러 올 수 없다고 하면 그때부터 문제가 생긴다.


  학교에서 집에 가려면 버스를 두 번 타고 가야 한다. 학교에서 우리 동네의 종점까지 가는 버스 한 번, 종점에서 우리 집까지 가는 버스 한 번. 차를 타면 20분이면 가는 거리를, 버스를 타면 40분에서 1시간 반까지 걸렸다. 종점까지 가는 버스는 배차 간격이 길어서 운이 좋으면 15분이면 탈 수 있지만 버스가 중간에 사라지거나, 무기한으로 출발하지 않는 경우에는 1시간 반이 넘도록 버스를 기다려야 했다.


  멀쩡히 버스 앱에서 노선을 따라오던 버스가 왜 사라지는지 그때는 몰랐다. 내가 착각했거나 앱의 오류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얼마 전, 나와 같은 루트로 학교에 다니던 오빠와 이야기하다가 사라진 버스의 진실을 알게 됐다.


실제로 이렇게 낭만적인 길은 아니다!


  버스 노선을 잘 따라오던 버스가 사라지는 건 대부분 가스를 충전하러 가서라고 했다.(ㅋㅋㅋ) 버스 기사 아저씨가 가다가 손님들에게

“저 버스 가스 좀 충전하고 갈게유~ 좀 걸릴 것 같은데 어떻게 여기서 내리실 분 계신가유?”

하면 내릴 사람들은 내리고,

“아이 뭐~ 가시죠~ "

하는 사람들은 내리지 않고 충전소까지 버스를 타고 간다는 것이다. 시내버스는 천연가스 버스라서 어딘가 깊은 곳까지 들어가서 충전하고 다시 원래 노선으로 들어가 운행을 시작한다고 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충전하러 간 버스를 타고 종점에 오면, 다시 버스를 기다린다. 종점에서 집까지 가는 버스에는 세 종류가 있었는데 하나는 직통버스, 두 개는 사이에 다른 마을을 들리는 버스였다. 집으로 바로 가는 버스는 10분이면 되었는데, 나머지 두 개는 40분이 넘게 걸렸다. 운이 안 좋아서 충전소 들리는 버스와 마을을 들리는 버스를 연속해서 타면 학교에서 집까지 가는 데에 약 2시간 반 정도가 걸리게 된다. 이 시간이면 우리집에서 강원도를 갈 수 있는 시간인데... 허허…


  재미있는 점은 이 이야기를 듣던 다른 시골 출신 친구가 아무렇지 않게 이 이야기에 공감을 표한 것이다.


“맞아요. 시골은 다 한 번씩 산골에 있는 마을까지 버스가 가줘야 하니까. 바로 가면 금방인 길을 그렇게 돌아서 가죠. 근데 웃긴 건 사람들 다 그런가 보다 하고 조급해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거예요.”


  어떤 압박이나 계획 없이 달리는 버스는 시골의 상징이었던 것. 10분이면 가는 거리를 외진 곳에 사는 사람들을 위해 40분씩 돌아가는 것도 시골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오랜 시간 한 자리에서 기약 없는 버스를 기다리던 나는 버스 정류장에 혼자 앉아 건물의 간판을 읽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고, 쓸데없는 상상을 하고 가끔은 반듯하게 앉아서 졸기도 했다. 그 인고의(?) 역사는 경의중앙선의 규칙적인 운행(!)에 감탄하는 나를 만들어 냈다. 그래서 여전히 대중교통을 기다리는 건 그렇게 힘든 일이 아니다. 남은 시간과 잔여석을 알려주는 대중교통 앱에 감사할 따름이다.


  만석 광역버스와 2호선을 타고 사람들 틈에 끼여 출퇴근하는 요즘은 아무도 재촉하지 않고, 아무도 조급하지 않던 그 버스가 낫다는 생각이 든다. 2-3분마다 지하철이 오지 않으면 안 되는, 1분 1초도 늦어서는 안 되는 여기보다는 사람이 없어도 한 번씩은 꼭 찾아가 주던 흙먼지 나는 그곳에서 잠이 더 잘 왔던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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