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에서 생선 배 터지게 먹는 법
얼마 전 자주 가던 순댓국 집에 신메뉴가 등장했다.
‘민물새우탕’
다른 손님들도 그걸 시키는 것 같았다. ‘추울 때 민물새우탕은 국룰이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같이 간 친구가 말했다. “와 어르신들이 진짜 좋아할 것 같은 메뉴야. 사진 봐. 완전 시래기랑 자잘한 새우밖에 없음.”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직원분이 와서 주문을 받을 때 나는 조용히 말했다.
“민물새우탕 하나 주세요…”
내가 민물새우탕을 좋아하게 된 데는 그럴만한 사연이 있다.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생각나는 풍경이 있다. 우리 마을의 중요한 행사 중 하나는 저수지(우리는 저수지를 '방죽'이라고 불렀다.)에 있는 민물고기들을 마을 사람들이 나누어 먹는 것이었다. 이 행사는 2년에 한 번씩 있었는데, 붕어, 메기, 잉어, 쏘가리 등등… 꽤 많은 양과 종류의 생선들이 마을 곳곳에 배달되었다.
‘그날’이 되면 이른 아침부터 가족들이 분주해진다. 엄마는 생선과 함께 요리할 채소들을 준비하고, 할아버지는 생선을 어떻게 배분할지 마을 어르신들과 의논한다. 그러면 나와 오빠는 아빠와 함께 저수지로 향한다. 사실 내 주목적은 생선보다는 저수지에 갈 때 타는 리어카였다. 집이 마을 꼭대기에 있어서 저수지까지는 줄곧 내리막으로 가야 했는데, 리어카를 타고 가면 꼭 놀이기구를 타는 것 같았다. 오빠와 내가 몸집이 작을 때는 둘 다 리어카를 타고 갔지만 둘 다 좀 크고부터는 나만 리어카에 실려(ㅋㅋㅋ) 저수지까지 갈 수 있었다. 그날만큼은 돌과 흙덩이가 굴러다니는 길도 좋았다. ‘좀 더 빨리~!’를 아무리 외쳐도 아빠는 절대 속도를 올려주지 않았지만, 리어카에서 내리라고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생각했다.
생선 나눔의 현장에 도착하면 길가에는 빨간 고무 대야(할아버지 말로는 고무 다라이!)들이 줄지어 놓여 있었다. 훤히 밑바닥을 드러낸 저수지는 왠지 후련해 보였고 거기서 두 해를 보낸 생선들은 각 집의 대야 안에서 파닥거렸다. 우리가 갈 때쯤에는 항상 이전 작업이 다 끝나고 있었기 때문에 저수지의 물을 빼는 과정은 정확히 모른다. 저수지 수문을 열고 펌프를 이용해서 옆에 있는 보조(?) 저수지를 통해 빼낸다고 들었다. 그렇게 하는 건 저수지 물을 순환시켜 농사가 더 잘 되게 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물을 천천히 빼고 나면 바닥에는 꽤 많은 생선이 남게 된다. 그러면 마을의 남자 어른들이 작업복을 입고 들어가 뜰채로 생선들을 건져 올려 밖으로 가지고 나온다.
생선을 나누는 것에도 기준이 있다. 나름 특급 생선에 속했던 쏘가리나 가물치는 마을에서 제일 나이가 많은 어르신 댁으로 갔고, 잉어는 그다음 나이가 많은 어르신 댁으로, 붕어나 메기는 여러 집으로 골고루 보내졌다. 그 순서대로라면 할아버지가 계신 우리 집에는 잉어가 오는 게 맞았다. 하지만 우리 집에는 잉어 두 마리 대신 붕어 네 마리가 몫으로 정해졌다.
잉어를 마다하게 된 데에는 꽤 흥미로운 이야기가 깔려있다. 내 성씨는 ‘윤’인데, 파평 윤씨들은 대대로 잉어를 먹지 않는다. 할아버지 말에 의하면 파평 윤씨 5대손인 윤관 장군이 여진족을 정벌하는 과정에서 잉어의 도움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전쟁 중 적군에 쫓겨 후퇴하다가 강을 만났는데, 잉어들이 다리를 놓아줘 무사히 강을 건널 수 있었다고. 이 이야기는 ‘윤도현은 잉어를 먹을 수 없다.’는 내용으로 스펀지에도 나온 적이 있다...!! 내가 7살 때부터 “너는 파평윤씨 무슨 파의 몇 대손이란다.” 하고 수 십 번도 넘게 교육할 만큼, ‘윤’씨에 대한 자부심과 소속감이 강했던 할아버지는 그 전설에 따라 잉어는 쳐다도 보지 않으셨던 거다.
어쨌든, 그렇게 붕어와 메기 열 댓 마리를 싣고 오면 그날부터 일주일간은 저녁 내내 민물고기 요리만 먹어야 했다. 마을에서도 은근한 비린내가 나는 것 같았다. 그렇게 먹고도 남은 생선은 얼려졌다가 갑작스럽게 식탁에 오르곤 했다. 사실 민물고기는 가시가 많아서 살을 먹기는 힘들다. 가시를 바르는 것 보다 안 먹는 게 더 편한 일이었다. 붕어 지짐이나 메기매운탕은 생선 그 자체보다는 같이 넣고 지진 배추나 시래기, 생선에서 우러난 국물을 먹기 위한 요리라고 하는 게 맞았다.
그래도 나는 민물고기 요리를 특별히 미워하지는 않았다. 민물고기 요리를 먹으려면 저수지 물을 빼고 마을 사람들에게 생선을 나누어야 하고, 그러려면 아빠가 리어카를 끌고 가야하고, 나는 거기에 탈 수 있었으니까! 늘 조용하던 마을이 오랜만에 활기 있는 광경을 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지금도 마을에 그 문화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지금 가면 리어카에 실려 구경하러 가지는 못하고 리어카에 생선들을 싣고 내가 마을을 직접 뛰어다녀야겠지만. 그래도 한 번쯤은 다시 그 광경을 보고 싶다. 찬 바람에 발을 동동 구르면서도 생선들을 구경하고 비린내에 코를 찡그렸던 일이 가끔은 생각난다.
내일은 민물새우탕을 먹으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