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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nnotyoon Sep 17. 2022

#3 할아버지, 우리 집 날아가면 어떡해요?!?!

오래된 시골 주택, 태풍에서 살아남기

  우리 집은 다른 집들보다 약간 높은 곳에 있는 이층집이었다. 멀리서 보면 마을 꼭대기에 덩그러니 혼자 있는 벽돌 이층집. 아무튼, 내 나이랑 같았던 집은 15년이 넘어가면서 여기저기 부서지고 낡기 시작했다. 나무로 만든 문틀과 계단은 틀어져서 소리가 났다. 문을 살짝 들어 올려서 어깨로 눌러야 문을 잠글 수 있었다. 한지가 붙어있는 안쪽 나무 창문은 여름이 되면 습기를 먹어 잘 여닫히지도 않았다.


  오래된 집은 해마다 고비를 한 번씩 넘겼는데, 2012년에는 태풍 ‘볼라벤’이 큰 고비였다.

  당시 학생이던 나는 심상치 않은 태풍의 기세에 3교시만 마치고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평소대로라면 아빠가 퇴근하기를 기다렸다가 차를 타고 집으로 가지만, 학교가 일찍 끝나면서 나는 한 시간 반 거리에 있는 집까지 버스를 타고 가야 했다.


  애석하게도 내가 하교하는 시점부터 태풍이 더 강해지기 시작했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바람은 강해지고, 눈 뜨기 어려울 만큼 길가에 있는 모래와 먼지들이 날아다녔다. 책가방을 두 손으로 붙잡고 버스가 얼른 오기만을 빌었다. 

  집에 도착했을 때, 나는 무인도에서 막 살아돌아온 사람 같아 보였다. 태풍이 무서웠던 것과는 별개로 수업을 듣지 않는다는 사실에 조금 들떴던 나는, 안방에 들어갔다가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아아아아아아아악!!!!!!!”


  창틀의 3분의 1 정도가 벽에서 빠져 들썩거리고 있었던 거다. 가로 길이만 3미터 정도 되던 큰 창문이 안팎으로 흔들리는데 그 광경이 너무 충격적이었다. 그걸 본 순간, 나는 집안의 모든 창틀이 빠져서 방에 있는 물건들이 날아가는 장면을 상상했고, 어떻게든 그 끔찍한 일을 막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허둥지둥 옆에 있던 의자를 끌어다 놓고 그 위에 올라서서 온몸으로 창틀을 밀고 있었다.


  160cm가 채 안 됐던 내가 아무리 세게 밀어봐도 창틀은 사정없이 흔들렸다. 하지만 내가 몸을 떼면 문틀이 ‘쑥'하고 빠져버릴 것 같아 의자에서 내려오지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굴렀다. 그때 다른 가족들은 다 나가고 할아버지와 나만 집에 있었는데 할아버지는 귀가 어두우셨고, 안타깝게도 방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도저히 못 버티겠다는 생각이 들자 나는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할아버지이이이이!!!! 창틀 빠지려고 해요!!!!!!!
할아버지이…할아버지…!!!!! 저희 집 날아가면 어떡해요!!!!
할!!아!!버!!!지이이!!!


  사실 한두 걸음 가서 방문을 열었으면 됐을 텐데, 너무 큰 두려움에 사로잡힌 나머지 나는 이성적인 사고가 불가능한 상태였다.


  그렇게 목이 터져라 열 번정도 외쳤을 때쯤 다행히도 할아버지가 내 목소리를 듣고 올라오셨다. 들썩이는 문틀을 보신 할아버지는 급히 연장을 가져오셨다. 나는 있는 힘을 다해 창틀을 제자리로 밀고, 제자리로 돌아가는 그 순간! 할아버지가 재빠르게 창틀과 벽에 손가락만 한 못을 박았다. 그제야 창틀은 격렬한 움직임을 멈추고 잘게 흔들렸다. 우리의 오래된 집은 그렇게 태풍 속에서 겨우 살아남을 수 있었다. 긴장이 풀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집이 날아가 버릴 것 같던 공포감, 그리고 집을 지켰다는 안도감. 10년이 넘은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르는 걸 보면 그때 느꼈던 충격이 엄청났던 것 같다.




  한반도를 무섭게 덮친 태풍 때문에 마음 아픈 일들이 너무 많이 일어났다. 자연 앞에서는 모두가 무력해질 수밖에 없어서 더 두렵고 불안하다. 태풍으로 상처 입은 분들께 위로를 전한다. 특히, 소외된 지역에서 두려움에 떠는 분들에게 함께하는 마음을 보낸다. 자연으로부터 느낀 공포가 그분들을 오래 괴롭히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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