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서 깨요 동물의 숲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던 2020년 봄, 닌텐도 스위치 대란이 일어났다. 당근 마켓에도 ‘닌텐도 스위치 구해요’라는 글이 몇십 개씩 올라오고, 그나마 올라온 매물도 몇 분 지나지 않아 비싸게 팔렸다. 어렸을 때부터 게임에 특별히 흥미가 없던 나는 친구B 때문에 닌텐도 스위치에 대해 알게 됐다. B도 어렵게 닌텐도 스위치를 구했는데 ‘동물의 숲’을 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B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농사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B의 열정은 동물의 숲을 하는 데에 아주 쓸만했고 친구네 섬은 아주 예쁘고 귀엽게 꾸며졌다. B네 집에 자주 놀러 가던 나도 동물의 숲을 시작하게 됐는데 얼마 못 가 내 섬은 잡초만 무성한 폐허가 되고 말았다. 과일을 따는 것도, 무를 뽑는 것도, 벌을 잡는 것도 나에게는 썩 재미있지 않았다. 그나마 좋아했던 낚시도 자꾸 미꾸라지만 잡혀 시시해졌다. 사실은 동물의 숲의 모든 지점이 너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버튼 몇 번만 누르면 사과 세 개를 얻는다고? 무가 쑤욱! 하고 뽑힌다고? 말도 안 돼.
게임인데 쓸데없이 진지하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 하지만 나는 진지한 농사밖에 본 적이 없는걸!
시골에서는 추석 무렵이 되면 대추와 감을 땄다. 밭을 빙 두른 대추나무와 감나무는 열 그루 정도 됐다. 열매가 많이 열린다고 마냥 좋은 것은 아니었다. 그 열매를 따는 것도 꽤 고생스러운 일이기 때문이었다. 나무에 대추가 포도송이처럼 열리면 할아버지는 차고에서 엄청나게 큰 파란색 마대를 가지고 와서 나무 아래에 깔았다. 다른 가족들이 대추에 머리를 맞지 않기 위해 멀찍이 떨어지면, 아빠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긴 막대로 나뭇가지를 세게 쳤다. 그러면 장대비 소리를 내면서 얼룩덜룩한 대추들이 땅으로 쏟아졌다.
아빠가 사다리에서 내려오면 온 가족이 나무 아래에 쭈그려 앉아 대추를 열심히 주워 담았다. 다리가 저려올 때쯤 발치 아래로 굴러온 대추를 주워 옷에 쓱 닦아 깨물어 먹기도 했다. 달콤한 맛에서 흙냄새가 났다. 한 번, 두 번, 세 번. 가운데 나무, 담장 옆 나무, 휘어진 나무.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밭에 있는 대추나무를 털고 나면 하루가 다 지나갔다.
그래도 과일 따는 일은 농사일 중에서 난이도 하에 속한다. 그나마 한 해 농사의 결실을 얻는 순간이기도 하고, 수확하며 틈틈이 과일을 맛보는 재미가 있으니까. 하지만 밭을 갈고, 씨를 심고, 뙤약볕 아래에서 풀을 뽑고, 약도 주는 농사의 모든 과정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농사를 업으로 삼는 분들은 그 어려움이 더 클 거다.
그래서 나는 홍수나 가뭄 소식이 들려오면 걱정이 된다. 비가 많이 와서 과일 맛이 많이 심심해지면 어쩌나, 가뭄이 들어 나무들이 바싹 말라가면 어쩌나. 쌀을 살 때도 한 번도 비싸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쌀이 이렇게 싸면 농부들은 어떻게 먹고살지? 땀 흘리던 땅을 팔고 다들 시골을 떠나면 어쩌지? 흔한 20대들이 하는 걱정은 아니지만 이미 내가 자라온 환경이 흔한 20대들이 자라온 환경과 다르니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에도 B가 말했다.
“시골에서 살고 싶어. 작은 텃밭에 이것저것 키우면서 살면 재밌을 것 같아. 허브 종류도 괜찮을 것 같고. 아, 대신 로켓배송이랑 샛별배송이 되어야 해!”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일단 작은 텃밭에 이것저것 키우는 게 재밌으려면 상추랑 대파만 심어야 해. 밭은 최대 한 평. 그리고 애초에 로켓배송이랑 샛별배송이 되는 시골이 없을 듯.”
내가 어릴 때 아파트에 가졌던 환상에 대해 말하면 친구도 나처럼 단호하게 대답할 것이다.
“아파트에 살면 엘리베이터도 있고, 근처에 공원으로 산책하러 나가고, 심부름도 마트로 갈 수 있잖아.”
“엘리베이터 늦게 오면 지각해. 학교 늦었는데 내려가는 층마다 서면 얼마나 짜증 난다고! 모든 아파트 근처에 공원이 있는 건 아니야. 마트로 심부름 가는 게 얼마나 귀찮은데, 그걸 가고 싶어?”
같은 동물의 숲을 하면서 누구는 시골 생활을 꿈꾸고, 누구는 대추 털이를 했던 경험을 떠올리며 고개를 젓는다. 엘리베이터를 타면서 누군가는 불편함을 느끼지만, 누군가는 안전함을 느낀다.
우리가 지나온 시간이 쌓여 지금의 우리를 만든다는 게, 그래서 이렇게 각양각색의 사람과 생각이 존재한다는 게 우리가 함께해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 친구와 나는 아마 언제까지라도 시골과 도시에 대해 각자 변함없이 단호하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