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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nnotyoon Sep 03. 2022

#2 데덴찌와 소라 메치기

같은 말을 쓴다는 건

  우당탕탕 수도권 생활의 시작은 내가 고등학교 3학년이었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방은 서울에 비해 공교육에 의존하는 비율이 높은 편이다. 그중에서도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는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자율학습 일정이 짜여있었다. 평일에는 저녁 7시부터  11 반까지, 주말에는 아침부터 오후 4시까지. 자율학습의 출석비율은 자리배정과 외출증 허용 횟수에  영향을 끼쳤다. 나도 고등학교 2학년  까지는  열심히 자율학습에 참여했다. (물론, 오래 앉아 있는다고  시간만큼 공부를 했던  아니다!)

  그러던 ,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논술 입시를 위해 매주 주말마다 서울을 다니기 시작했다. 친구들은 주말 자율학습을 합당한 명분(무려 그 명분은 ‘서울’에 가는 일이었으니!)으로 빠지는 나를 굉장히 부러워했다.


  처음 논술 학원에 갔던 날이 생각난다. 대치동에 있는 학원은 낡고 오래되고 복잡한 상가 건물 안에 있었다. 한참을 헤매다가 결국 학원 선생님이 상가 입구로 나를 데리러 왔다. ‘촌에서 살던’ 내가, 말로만 듣던 대치동에 왔다는 사실 만으로 나는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긴장은 얼마 가지 않아 사라졌다. 테스트를 받기 위해 상담실에 들어섰을 때, 선생님이 나에게 건넨 첫마디 때문이었다.


  "안녕, 오는 길은 힘들지 않았니?"

  "…?"


  교과서에서 쓰던 말투를 실제로 쓰는 사람을 처음 만난 순간이었다. ‘않았니…? 라구요…?’ 나는 너무 놀라 눈만 깜빡였다. 나와 내 친구들은 살면서 한 번도 ‘~니?’라는 말투를 써본 적이 없었다. 아니, ‘~니'라는 종결어미를 사용한다는 선택지조차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야, 밥 먹었냐?”

  “야, 저녁에 외출하게”

  “숙제했냐? 나 좀 보여주라!”

  이게 나와 친구들의 굉장히 평범하고도 친밀한 대화다. 당연히 싸우거나 시비 거는 게 아니다. 하지만 충격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교실에 들어가자 네 명의 친구들이 앉아있었다. 선생님이 논술 문제를 나눠서 풀이하기 위해 두 팀으로 나누라고 하자 친구들은 자기들끼리 팀을 어떻게 나눌까 고민하다가 나에게 와서 제안했다.

 

 “우리 그냥 데덴찌로 정하자!”

  “…?”


  데덴찌. 정말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19년 동안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말이었다. 친구들이 나누는 다른 말로도 유추가 불가능했다. 이 친구들에게는 너무 당연한 것 같은데, 데덴찌가 뭐냐고 물어보자니 차마 입은 떨어지지 않고. 물어볼까 말까. 물어볼까 말까.


  그때, 정말 구세주처럼 한 친구가 손바닥을 엎었다 뒤집으며 “근데 이렇게 해도 어차피 3:2 아니야?”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그제야 알았다. 데덴찌가 ‘소라 메치기'라는 걸! 우리 지역에서는 서울의 ‘데덴찌', 즉 손바닥을 엎거나 뒤집어서 편을 나누는 것을 ‘소라 메치기'라고 불렀다. (이걸 읽고 내 고향이 어디인지 맞추는 분들도 있겠다.) 대충 상황을 파악한 나는 서둘러 손을 내밀었지만 박자를 놓치고 말았다.


소라~ 소라~ 소오라~ 메치기!

  장조인지 단조인지 알 수 없는 짧은 노래를 부르는 게 소라 메치기의 기본인데, 서울 친구들은 데데~엔 찌! 하고 아주 간결하게 편 나누기를 끝냈다. 그 짧은 순간에 나는 학교에 있는 친구들이 무척 보고 싶어 졌다.


  처음 서울에 왔을 때 겪었던 일이어서 그런지, 나에게 ‘소라 메치기'는 고향을 떠올리게 하는 유쾌한 말이다. 지금도 우연히 ‘소라 메치기'를 아는 사람을 만나면 옛날 친구를 만난 것처럼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물론 지금의 나는 데데~엔 찌! 에도 당황하지 않고 박자에 맞춰 손바닥을 내놓을 수 있지만!

같은 말을 쓴다는 건 꽤 따뜻하고 즐거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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