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ujin Kim Jan 02. 2022

바느질, 너에겐 스트레스, 나에겐 메디테이션



 엄마의 갱년기는 혹독했다. 밤에 잠을 쉽게 이루지 못하고, 우울증으로 고통받았다. 국립도서관 사서였던 엄마는 도서관 전산화를 감당해 내지 못했다. 뼛속까지 아날로그인 사람이 바로 우리 엄마였다. 기계와 거리가 멀었고, 알고 싶어하지도 않았다. 그런 사람이 컴퓨터로 도서관에서 일한다는 것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만큼 힘든 일이었다. 게다가 당시에 내가 태어나면서부터 함께 살던 외할머니까지 편찮으셨다. 직장에서 스트레스와 집에서 병수발. 이 모든 것이 엄마의 갱년기를 더욱 힘들게 했다.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열심히 일만 했던 엄마는 취미가 전혀 없었다. 친구들을 만나 수다 떠는 사치에도 관심이 없었다. 테니스며 골프며 운동을 즐겼던 아빠와 다르게 엄마는 운동도 좋아하지 않았다. 집과 직장밖에 몰랐던 엄마는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방법을 몰랐다. 아픔과 결핍을 치유할 수 있는 자기만의 방법이나 공간은 누구에게나 필요한데 말이다. 엄마의 갱년기 우울증은 온 가족이 힘들게 겪어내야 했던 무거운 과제였다. 엄마를 지척에서 바라보면서 나이가 들면 갱년기를 이겨낼 취미를 하나쯤 꼭 가져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취미는 하루 아침에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직장을 다니면서 내가 좋아하는 것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어렸을 때부터 바느질을 좋아했다. 초등학교 때 라라 인형 옷을 만들어 입힌 기억이 있다. 그다지 잘 만들지는 못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내 인형에 내가 직접 옷을 만들어 입힌다는 것 자체가 기쁨이었다. 인사동을 거닐다 어느 가게에 걸린 모시 조각보를 본 적이 있다. 은은한 색감의 단아한 가리개가 바람에 날리니 봄에 나비가 산들산들 날아다니는 느낌이었다. 은은한 아름다움은 여운이 깊었다. 2004년 북촌 한옥마을에서 진행되는 조각보 수업에서 바느질을 제대로 배워보기로 했다. 주중에 열심히 회사를 다니고, 토요일에는 북촌 한옥마을로 갔다. 선생님 한 분을 모시고 대여섯 명의 여자들이 모여 앉아 한 땀 한 땀 조각 천들을 이어가며 서로의 이야기도 이어갔다. 지루한 줄 몰랐다. 처음 본 사람들이 모여있는 데도 불편하지 않았다. 조각보라는 관심사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함께 바느질을 배우며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는 것이 재미있었다. 1년간 배우고 2005년 말 한국을 떠나게 되었다. 조각보를 계속 배울 수는 없었지만 선생님과의 인연은 바느질의 성긴 땀처럼 이어갔다. 아이들에게 줄 인형을 만들거나 소품을 만들면서 손바느질은 취미로 계속했다.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면서 2019년부터 바느질 선생님과 다시 바느질을 시작했다. 선생님은 나에게 스승이자 이모 같은 분이시다.


 바느질은 누구에게나 필요하지만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이는 바늘귀에 실을 꿰다 지쳐 배 아래 깊은 곳에서부터 화가 치밀어 포기한다고 한다. 작은 땀을 반복적으로 뜨는 작업이 지루해 바느질에 전혀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이도 있다. 일상에 깊이 파묻혀 있지만 가치를 잘 인정받지 못하는, 어쩌면 약간은 억울한 작업이 바느질이다. 그런 작업이 아름다운 천과 콜라보를 하면 예술로 승격된다. 서로 다른 색이 만나 어울릴 듯, 안 어울릴 듯 조화를 이룬다. 우리들이 사는 모습과 같다. 바느질을 하면 오히려 마음이 차분해졌다. 아름다운 것이 좋고, 아름다운 것을 만들기 위해 공을 들이는 과정이 좋았다. 한 땀 한 땀 이어가다 보면 어느 순간 소리도 들리지 않는, 초집중의 순간이 온다. 바늘땀을 이은 선이 어느덧 곧은 직선처럼 보이는 순간. 그 반듯함이 주는 희열이란. 나에게 바느질은 메디테이션이다.


 바느질을 다시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핑크와 옅은 고동색의 옥사 천으로 테이블 러너를 만들었다. 지인이 나의 작품을 독일 제약회사인 바이엘 코리아 사장 환송 파티 선물로 제안했다. 들인 시간과 노력에 비해 제값을 요구하지 않고 팔았다. 내 작품으로 이룬 최초의 매출이었다. 내가 만든 작품이 사장님을 따라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에게 선보일 것이라는 사실이 나를 들뜨게 했다. 외국인에게 우리의 조각보의 아름다움을 알릴 수 있으니 내 손끝의 예술에 더 깊은 의미가 생겼다. 나는 이제 앞으로 올 갱년기가 두렵지 않다. 나에겐 적어도 바느질이라는 오랜 취미가 있으니, 준비된 자에게 무서울 건 없다.

이전 06화 지켜주고 싶은 나의 언덕, 언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