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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jin Kim Feb 02. 2022

끝없는 이방인의 삶

서울의 어느 병원. 할머니 한 분이 휠체어에 앉아 계셨다.

적당한 컬의 우아한 회색 머리가 아름다운 분이셨다.

할머니는 병원 복도에서 한 곳을 응시하며 머리를 박자에 맞춰 흔들며 숫자를 또박또박 셌다.

One, Two, Three Four... 잠시 쉬었다 또 April, May, June, July...

지나가던 아주머니가 할머니의 간병인에게 말을 건넸다.

"배우신 분인가 보네요."

할머니의 사연이 궁금했다. 영어 단어를 되뇌는 것을 보니 외국에서 살다 몸이 아파서 고향으로 돌아오신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도 없이 간병인과 병원 복도에 허망하게 앉아있는 할머니가 안쓰러웠다.

나도 늙어 아프면 저렇게 한국으로 돌아와 독일어를 되뇌고 있을까?


2005년 말, 결혼하고 독일로 갔던 때가 생각난다. 가구 하나 없이 최소한의 물건만 배편으로 보내고, 큰 여행용 가방 2개만 챙겨 독일로 떠났다. 6년간 일하던 회사를 다니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마냥 기뻤다. 금감원에 제출하는 보고서 작성과 주가가 내려가면 전화해 짜증을 퍼붓는 소액주주에게 지쳐 있던 때였다. 독일로의 이주는 어쩌면 나에게 지겨운 회사 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이자 해외에서의 새로운 시작이었다. 너무나 좋았다. 독일어를 전혀 못해도 두렵지 않았다.


독일에서 8년을 살다 남편의 일 때문에 미국 캘리포니아로 이주했다. 또 하나의 새로운 나라. 캘리포니아산 오렌지가 나를 불렀다. 집을 구할 때까지 가구와 간단한 식기가 갖춰진 콘도에서 생활했다. 독일에서 배편으로 보낸 짐은 보통 빨라야 6주 후에 도착하기 때문이었다. 새로운 집, 새로운 학교, 새로운 이웃. 모든 것이 새로웠다. 나는 아직 젊었고, 아이들도 어렸기에 가능했다. 거의 4년을 미국에서 보냈다. 모두 생활에 적응하고 친한 친구들도 생겼을 즈음, 남편이 한국에 좋은 자리가 있다고 이번엔 한국에 가자고 했다. 가족이 있는 고향으로 가는 것은 좋았지만, 이미 갖춰진 환경에서 편안히 즐기고도 싶었다. 해외 이사를 준비하고, 가족 같은 친구들을 떠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첫째 아이가 처음으로 이별의 아픔을 알게 됐다.


한국에서 4년 동안 아이들이 많이 자랐다. 작은 일 하나하나 엄마 도움이 필요했던 초등 저학년에서 학교가 끝나면 스스로 걸어올 수 있는, 숙제도 알아서 하는 고학년이 됐다. 아이들의 성장은 나에게 많은 자유시간을 허락했다. 한국인에게 독일어를 가르치고,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쳤다. 취미로 바느질을 하고 글쓰기 수업도 들었다. '한국어 교사 양성' 자격증 과정도 거의 마무리에 있다. 모든 것이 제 자리를 잡은 듯 편안하다.


지칠 줄 모르는 남편이 이번에는 싱가포르란다. 한국 생활을 접고 우리는 올해 싱가포르에 갈 것 같다. 아이들이 커서 생긴 자유 시간에 본격적으로 일을 하며 지내고 싶었는데, 싱가포르 정부는 나에게 워킹비자를 주지 않는다고 한다. 자격증을 따려고 열심히 준비했는데 써먹을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남편은 직장에 가면 그만이지만, 아이들과 나는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학교 시스템에 적응해야 하고 친구들을 새로 사귀어야 한다. 다시 일을 시작하려 했던 나는, 날개를 펴 보지도 못하고 또다시 가정주부로 머물러야 한다. 원해서 안 하는 것과 하고 싶어도 못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슬슬 지친다. 언제까지 나라를 옮겨 다니며 살아야 할까? 가지고 있는 모든 물건의 목록을 작성하고, 구입 가격도 기록해야 하는 해외 이사. 이사 중 생길 파손에 대비해 보험사에 제출할 서류와 학교 입학서류도 다시 준비해야 한다. 하고 싶은 일보다는 해야 할 일이 산더미다. 사춘기가 시작된 아이들이 새로운 나라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한 아이에게는 기회가 될 수도, 한 아이에게는 시련이 될 수도 있는 미지의 상황. 새로이 정착한 곳에서 내 집 같은 느낌이 들기까지 또 반년이 걸리겠지. 한 3년 살면 다음은 또 어떤 나라일까? 나는 언제 장기 계획을 세우고, 또 그 계획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을까? 누군가는 그런다. 배부른 소리 한다고. 여행하듯 살 수 있는데 무슨 문제냐고. 여행과 이주는 다르다는 것을, 잠시 머무르는 것과 살아내는 것은 다르다는 것을 설명하면 이해할까. 내 나라에 다시 살아보니 잘 알겠다. 노력하지 않아도 언어를 다 알아들을 수 있는 곳에서, 외국인으로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는 곳에서 내 가족들과 친구들에 둘러싸여 사는 것이 얼마나 편한 것인지. 여행은 돌아올 곳이 있어 설렘을 그대로 즐길 수 있지만, 종착지가 없는 나는 그저 아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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