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가 보여 기쁜 것들
그래도 괜찮은 날도 가끔씩은 있다.
아이의 사춘기 이후 아이의 행동에는 여러 고정적인 패턴이 생겼다.
마치 하루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처럼.
1. 방문 걸어 잠그기
이 모든 일의 발단이 된 그날 아침, 아이는 등교를 거부하고 방문을 걸어잠궜다.
화장실을 다녀와서도, 어쩌다 외출을 하고 난 후에도, 차려놓은 밥을 가지고 들어간 이후에도 항상 걸어잠궜는데
어느날 부터였을까 잠그지 않고 문만 닫아 둔다.
물론 아직 밥도 가족들과 먹지 않고 여전히 밤고양이처럼 혼자 지내지만 문을 잠그지 않는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우리 가족은 기다릴 수 있는 이유가 하나 더 생겼음을 암묵적으로 알 수 있다..
(사실 가끔은 덜 닫아서 빛이 나오기도 한다. 한줄기 빛 같다.)
2. 밥에 관한 것
아이들 어렸을때부터 나는 아이들 밥에 좀 집착하는 경향이 있어왔는데, 이러고 난 뒤에 초창기에는 아이가 밥을 어떻게 먹는지에 대한 걱정이 매우 컸다.
가족과의 식사를 무언으로 거부한 뒤에 아이는 수중에 모아둔 용돈으로 그간 사먹지 못했던 온갖 배달음식들을 시켜먹었고, 쓰레기는 온전히 아이 방으로 모이고 있었다.
어느날부터는 돈이 다 떨어졌는지 어찌되었든 차려놓은 밥을 반찬이 맘에 들면 가지고 가고, 그렇지 않으면 안먹고, 아니면 명사형으로 먹고 싶은 음식을 카톡으로 보내기도 했다.
그러더니 냉장고 속 재료들을 뒤져 뭔가를 해먹기도 했다.
방 안에 고립되어 있는 아이가 있는 재료들로 음식을 해먹는 다는 것은 긍정적인 신호로 보인다는 여러 어른들과 전문가들의 말에 따라 아이가 좋아하는 음식 위주의 밀키트를 사놓으면, 그걸 또 해먹기도 한다.
쨌든, 이런식으로 어떻게든 집밥을 거부하더니 어제는 차려놓은 밥이 마음에 들었는지 가지고 들어가서 먹었다.
블랙홀처럼 한번 방에 들어간 그릇이 나오기 힘든것은 유감이지만, 집밥을 먹었다는 것만으로도 남편과 나는 어제는 평화로운 저녁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기다리고 있다.
3. 쓰레기에 관한,
몇가지 견디기 힘든 것 중에 쓰레기에 관한 것이 상위권을 차지한다.
가족과 마주치지 않으려는 의지과 귀찮음으로 먹은 쓰레기나 그릇을 방에 그대로 방치하고 있다.
작년에는 학교갔을 때 어떻게든 짬을 내어 방을 치워줬지만 방학하고, 2학년이 되어 등교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치울 방법은 없었다.
그저 카톡으로 부탁과 권유를 하는 것밖에 방법은 없었다.
그러던 4월 어느 날, 내란수괴가 파면되던 날, 기쁜 마음으로 퇴근했을 때 늘 방 앞에 놓여있는 박스에 그 간 쓰레기의 절반 정도가 들어있었다. 정말이지 너무 행복해서 고맙다고 했다.
아직 다 나오지 않은 쓰레기는 전혀 신경쓰이지 않고 치울 마음이 생겼다는 것이, 그리고 청소기까지 돌렸다는 것이 정말정말 좋았다.
한달이 조금 넘은 지금까지 간혹가다 내놓고 아니면 여전히 방 안에 모아두기도 하지만, 한번 빛을 보아서 그런지 우리는 얼마든지 기다려 볼 수 있다.
기다림을 주는 존재가 본인을 기다릴 수 있는 원동력을 주는 것이 아이러니 하지만, 이렇게 작은 희망으로 하루를 위로받기도 하며 살고 있다.
덕분에,
그래도 괜찮은 날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