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말, 시가쪽 행사가 있어 서울에 갔어야 했다.
남편과 나는 혹시 몰라서 아이의 비행기표까지 예매를 해두었지만 역시, 아이는 그 시간을 우리에게 허락해 주지 않았다.
떠나기 며칠 전 취소를 하고 작은 아이와 우리 부부만 짧게 다녀왔다.
다행히 집에는 열심히 집을 지키는 우리 감자가 있어 다소 마음이 무겁긴 해도 조금은 걱정을 던 채로 다녀올 수 있었다.
큰 아이와는 별개로, 우리의 짧은 여정은 그리 녹록치만은 않았다.
작은 아이의 사춘기가 다가오려는지 아이는 부쩍 짜증이 늘었고 동성인 남편은 그것이 쉽지 않았던지 아이와 자꾸 부딪혔다.
어쩌다가 중간 포지션이 된 나는 가운데서 중재도 하고 화도 내고 하다 결국엔 셋 다 말을 안하는 상황도 종종 생겼다.
결국 다녀와서는 남편과 크게 부딪혔다.
큰 아이가 자기 동굴 속으로 들어갔을 때도 그렇게 부딪히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작은 아이의 그것에 결국 터졌다.
순하다고 생각했던 남편은 혼자 큰 아이의 저것에 지쳐있었고, 짜증이 난 상태에서 작은 아이까지 저러니 임계점에 도달하여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져 있었다.
평소 순하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저러고 있으니 무척 당황스러웠다.
동시에 작은 아이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예민한 남편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무엇보다, 작은 아이마저 우리로 인해 큰 아이처럼 되는 것이 이미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게 되어버린 나는 저러는 남편이 정말 견딜 수 없어 큰 소리를 내게 되었다.
대부분의 것을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그와, 큰 아이에게 조차 이성적이지 못하고 내 배아파 낳은 내새끼에게 유독 휘둘리는 나는 이럴때 서로에게 벽이 된다.
다행히 하루 지나지 않아 남편은 사과했고, 노력하겠다고 함으로 마무리 되었지만 아마 아이들 커가면서 비슷한 주제로 수없이 싸우게 될 것 같긴 하다.
퇴근하고 남편과 둘이서만 바다를 갔다.
가서 멍때리고, 누워있으면서 문득 어떤 깨달음이 왔다. 살갗이 익는 깨달음이었다.
내 배아파 낳은 내 새깨들이지만 하나의 인격체로 자라는 이 아이들은 각자의 세상을 가지고 있구나.
기본적인 예의와 올바름 정도만 지닌다면 내가 범접할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되는 이 아이들의 세상을 받아들이고 내 세상으로 억지로 끌어들이지 말아야겠구나.
우린 물리적으로는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각자 느끼는 시간과 세상과 우주는 다르니 나는 나는 그것을 받아들이고 옆에서 지켜봐야겠구나.
그래, 너무 큰 엄마 아빠의 영향력은 온몸으로 거부하고 있는 너희들에게 우리는 조용히 바라보고 지켜주고 힘들 때 기댈 수 있게 엄마 아빠도 계속해서 즐겁고 잘 살고 있겠다.
이제라도 깨닫게 해줘서 정말 고맙다.
큰 아이가 지금 보내는 시간들은 나중에 오롯이 자기것으로 만들 자양분이 되면서 내가 알고있는 인간상과는 다른 전혀 다른 새로운 사람이 될 것이며, 작은 아이도 마찬가지라 생각하니 그 순간 평온하게 빛나는 윤슬처럼 마음에 빛이 일렁이는 것 같았다.
이 생각들이 잠시 머무르다 끝날 수도 있겠지만
끊임없이 되새기고 생각해서 찰나가 아닌, 남은 내 삶에서 진득하게 같이 하기위해 노력하고, 아파하고 기뻐해야겠지.
부모는 이렇게 또 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