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감아도 선명하게 떠올릴수 있는 사진 한 장이 있다

by 시도

눈을 감아도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는 사진 한 장이 있다.

작은 이불뭉치를 끌어안고 빙긋 웃는 남자의 사진이다.

이불뭉치 안에는 생후 몇일이 채 되지 않은 아기가 쌓여있다.

아마 나나 나의 동생일것이다.

남자 뒤에 있는 건물에 커다란 현수막이 하나 걸려있다. “11월은 독감 예방접종의 달입니다.”

11월은 내가 태어난 다음 달이다. 이불뭉치에 담겨있는 게 나라는 증거다.

그가 나를 사랑했던 흔적을 무척 모으고 싶던 때였기 때문에 그가 미소짓고있는 이유가 나라는 사실이 소소하게 행복했다.

작은 나를 안고있는 그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19년 겨울, 눈을 감아도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을 사진이 또 하나 생겼다.

작은 이불뭉치를 끌어안고 빙긋 웃는 남자의 사진이다.

이불뭉치 안에는 생후 7일 된 아기가 쌓여있다. 우리의 딸이다.


작은 나를 안고있는 그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설레었을 것이다. 어서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것들을 보여주고싶고, 같이 경험하고싶고, 살면서 배운 것들을 알려주고싶어서 설레었을 것이다. 그리고 두려웠을 것이다. 자신의 부족함이 나에게도 베어들까봐, 자신의 무지가 나의 성장을 방해할까봐,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순간이 올까봐.

하지만 무엇보다 행복했을 것이다. 나를 옆에 두고 하염없이 들여다보는 순간이, 잠든 나를 품에 안고 있는 순간 순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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