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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나샘 May 24. 2021

20살, 5월 그때 나를 찾아와 주지 않았더라면...

싱그러웠던 그때 그 시절의 우리

 

다채로운 색깔의 장미꽃과 모든 생물의 싱그러움이 절정을 달하는 5월 끝자락...

우린 그때 다시 만났다.


고등학교 1학년 17살, 꿈꾸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던 시절, 취향과 성향이 비슷해 많은 부분을 공유하며 공감했던 시절, 짝사랑했던 선생님마저 동일했던 친구와 나였다.

철없던 소녀적부터 어느새 불혹을 지나고 있는 이 시점까지 인연을 함께 해오고 있다. 벌써 친구와 함께 동고동락한 시간이 20년이 훌쩍 넘어가고 있다.


친구는 충청남도 섬  안면도에서 서울로, 성동구 금호동에서 서울끝 강서구 등촌동으로 전학 온 나, 이렇게 우리는 비슷한 시기에 전학을 했다. 사춘기 시절, 서로 성격도 비슷하고 온유하고 배려심 가득했던  너와 나,  그래서  더 마음을 나누며  의지하며 친해졌다.  야자(야간자율학습)시간에 선생님 몰래 나와 떡볶이를 먹으며 추억을 쌓고, 고민거리 있으면 같이 들어주고 울어주던 친구였다.  여름방학이면 친구의 고향인 안면도에 놀러 가 잊지 못할 추억을 쌓았더랬다. 친구 아버지는 인자하신 웃음을 장착하시고서는 트럭에 우리를 태우고 그 넓은 태안반도를 도시면서 관광 가이들를 해주셨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시간은 흘러 어느새 19살, 고등학교 졸업식날이다.  수능시험 결과가 발표 나고 점수에 맞춰 대학을 물색했다.

형편없는 점수로 원하는 대학을 고르기란 쉽지 않았다. 점수에 맞춰 대학을 선택했지만 나는 결국 재수를 결정하기에 이르렀다.


친구는 원하는 대학에 붙고 나는 원하는 대학에 아쉽게 떨어졌다. 너무 속상한 마음에  졸업식만 마치고  도망치듯 나와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버렸다.(물론 엄마, 가족 그 누구도 오지 말라고 했다:)

그래서 난 고등학교 졸업사진이 한 장도 없다;;;


그런데...

그 친구는 나를 무척이나 애타게 찾았나 보다. 그럴 만도 한 것이 고등학교 3년 동안 자석처럼 붙여다녔기에요즘 말로 베프(절친)이었기에  졸업사진을 찍고 같이 싶었다고 한다. 하지만 난 졸업식날  대학에 떨어졌다는 수치심에 , 친구도, 가족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어찌 되었든 그 시간과 공간에서 빨리 벗어나고픈 마음뿐이었다.


졸업 후  친구는 새내기 어여쁜 대학생,  나는 재수학원에서 공부를 하는 운동복차림의 재수생이 신분이 되었다. 그렇게 각자의 상황과 환경에 적응해 가고 있을 무렵...


20살,  5월의 끝자락 싱그러움으로 가득했던 날



재수학원에서 공부를 하고 집으로 터덜터덜 돌아오는 저녁...  친구가 집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순간 깜짝 놀랐다. 전혀 예상치 못했기에...

나도 물론 친구를  무척이나  보고 싶었지만 공부하느라, 한없이 낮아진 자존감에 친구에게 연락할 용기가 안났다. 그런데  친구가  나를 잊지 않고 이렇게 찾아와 주었다. 


정성 가득 손 편지와 함께 나를 찾아와 준 것이었다. 그때  건네준 편지가 너무 소중해서 사진첩에 고이고이  넣어다.

20살, 친구의  손편지


나를 잊지 않고 찾아와 준 친구 정성에 , 고마움에 난 그만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친구는 화내며  얘기했다.           

"야,  졸업식날  널  얼마나 찾았는데... 넌 말도 없이 가버려!! 이 계집애야 ~~~

같이 사진도 못 찍고 얼마나 속상했는데....."


그 고마움에 미안함에 앞으로는 어떤 경우라도 연락의 끈을 놓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때 이후로 우리는 계속 연락하며 결혼할 때 서로 부케를  받아주고, 아이 낳을 때 누구보다 축하해주며, 수많은 경조사에  아픔을 나누고 기쁨을 함께 했다.


결혼해서 그 친구는 부천  난 인천에 살아서  종종 둘이, 아이들과도  함께 만남을 가졌다.


그런데 갑자기 이사를 간다는 것이다.  그것도 저 아래 지방  울산으로.... 청천벽력 같았다.

너무 멀리 이사를 가기에.  이젠 자주 만날 수도 없는데...  아쉬워 어찌할 바를 몰랐다.울며 겨자 먹기로 어쩔 수 없이 남편 사업으로 인해 친구는 10년 넘게 다니던 직장도 정리하고 울산으로 내려가 버렸다.


이사 후 벌써 5년이 넘었다. 이사 간 후 1년은 친구도 나도 서로의  빈자리가 어찌나 크게 느껴지던지..

연락은 했지만 마음 한구석은 늘 허전했다. 그런데 어느날 이사 후 친구가 선물을 보내왔다.


"워킹맘으로 일하랴 , 애들 챙기랴 고생한다", "먹고 힘내" 라며 선물을 보내왔다.

'아구구 이젠 전업주부라 살림하기도 빠듯할 텐데...'먼저 챙기지 못한 내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다.


친구에게 절로 편지가 써진다.


둘도 없는 내 소중한 친구야!

20살 그해 5월 , 네가 나를 찾아와 주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너보다 더 좋은 친구를 만날 수 있었을까?

고맙단 말로도 , 아니 그때 철없이 굴었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진다.  마음밭이 너무 작았구나.

올초 2월 아들 쇠골 뼈 다쳤을 때 , 친형제들마저  관심 가져주지 않을 때 네가 위로해주고 다독여 주었을 때, 솔직히 눈물나더라

 옆에서 힘이 되는 친구! 네가 있어서 얼마나 든든한지 몰라. 우리 우정 변치 말고 파파할머니 될때까지 영원하자♡




친구는 많지 않지만 몇몇 친구중 먼저 연락해주고 안부를 물어주는 이 한 친구가 더없이 소중하다.

남편과 싸웠을때도, 직장에서 인간관계로 힘들었을때도 , 아들과의 관계로 힘들었을때도, 시아버지 병원에 입원하셨을때도.... 제일  먼저 전화를 해서 답답한 마음을 토로했었다. 그때마다 친구는 누구보다도 염려와 위로를 해주었다.


조금은 버거웠던  하루의 끝을 누군가의 위로 덕분에  또 힘내서 잘 마무리해보련다.


퇴근길  오랜만에 친구한테  안부 전화한번 해야겠다.  밀린 얘기를 맘껏 하며 위로 한스푼을 얻어야 겠다.

싱그러운 초록으로 가득 물든 5월, 20살때의 과거여행을 하며  잠시 추억에 젖으니 감성이 촉촉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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