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댁은 두 곳이다. 한 곳은 시아버지 계신 곳, 한 곳은 시어머니 계신 곳 이렇게 두 곳이다. 그렇다. 시아버지와 시어머니를 각각 따로 모신다. 모신다는 표현은 맞지 않은 것 같다. 각자 삶을 살아내고 계시니 말이다.
결혼해서 처음은 적응도 안되었을뿐더러 무척이나 힘들었다. 명절 때도 두 곳에 따로 인사를 드리러 가야 했다. 나의 친정까지 가려면 3곳을 방문해야 한다. 어떤 경우에는 연휴기간 동안 다 방문드리지도 못한 적도 있다. 모두를 원망했었다. 이런 삶의 방식을 사시는 시댁 어른들이 너무나도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결혼해서 살아내다 보니 시어머니 삶이 조금씩 이해가 갔다. 같은 여자의 삶으로서 이해가 되었다. 오죽하면 자식들을 남겨둔 채 저 지방으로 도망치시듯 삶의 터전을 마련하셨을까 하는 안타까움과 측은지심이 들었다.
시어머니와 찰칵~^^
"며늘아가, 늘 미안하데이. 니 고생만 시켜서..."
늘 전화하실 때마다 미안하시다고 하신다.
어머니 저 괜찮아요. 이제 안 힘들어요.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라고 말씀드려도 한없이 미안하다고만 하신다.
실은 그랬다. 어머니는 우리 결혼식 때 참석하지 못하셨다. 우리의 결혼 소식을 접하시고
참석하고 싶으셨지만 차마 참석할 수가 없으셨다. 처지와 상황이 허락지 않으셨다.
첫째 아들 아주버님은 결혼식에 함께 하셨지만 둘째 아들 결혼식은 참석을 하지 못하셨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때 한이 되어 많이 우셨다고 하셨다.
어머니는 연세가 있으심에도 불구하고 직장에서 열심히 일을 하신다. 월급을 차곡차곡 모으셔서 우리가 내려갈 때마다 거금의 용돈을 내놓으신다. 이젠 어머니 노후자금으로 비축해놓으라고 하셔도 자식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보태주시려 애를 쓰신다. 한사코 받지 않으려 하지만 어머니는 손자를 통해서라도 받게 하신다.
그리고 해마다 이 맘 때면 며느리 고생한다고 김치, 된장, 고추장을 직접 담그셔서 보내주신다. 참기름, 직접 채취한 고사리, 참깨 등을 보내주시기도 한다.
"야야, 사 먹는 거랑 담근 거랑 같노. 내가 직접 담근 거니까 하나도 버리지 말고 꼭 다 묵으래이"
그리고 얼마 안 되어 감자와 도라지 정과를 보내주셨다. 그 감자로 인해 밥상의 반찬과 간식이 풍부해진다. 어제는 차돌박이 된장찌개를 끓여 먹었다. 모두 어머니표 재료들이었다. 큰 박스에 담긴 감자는 우리 가족이 다 먹어도 남은 분량이라 이웃들과 소소하게 나눠먹는다. 어머니 덕분에 이웃들과도 정을 나누며 지내고 있다.
도라지정과를 고소한 콩가루에 찍어 본 맛은 경험해 보지 못한 신선한 맛이었다. 쫀득 쪽 득한 정과에 고소함이 더해져 새로운 맛을 자아냈다.
감자와도라지정과
그리고 코로나 때문에 아이들을 못 본 지가 꽤 되셨다. 그런지 아이들 먹으라고 간식을 큰 박스채로 보내셨다. "와 ~~~ 할머니 최고!!" 박스의 과자를 접한 우리 아이들은 할머니 최고 라며 연신 감탄사를 자아낸다. 바로 아이들이 할머니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니 그리 행복해하실 수가 없다.
5월에 이어 6월에도 간식을 보내주셨다
신혼초 난 결혼을 실패한 줄 알았다. 경제적으로 아무것도 없이 시작한 힘든 살림에 , 시아버지와 시어머니까지 따로 챙겨야 한다는 사실에..... 모든 것이 꼬인듯한 삶, 결혼 전으로 모든 것을 되돌리고만 싶었다. 하지만 내 마음을 조금씩 수정해 나가기로 했다. 환경과 처한 현실, 상황은 바뀌지 않으니 내가 마음을 수정해가는 방식을 택했다. 서서히 원망이 이해로 바뀌고 미움의 감정에서 용서의 감정으로 바뀌어 갔다.
지금은 누구보다 마음이 편안하고 행복하다. 시어머니, 시아버지 각자 자식, 며느리에게 피해 안 가게 하시려고 노력하시는 모습이 여실히 드러나신다. 크게 바라지도 않으시고, 자식이 행복하게 사시는 모습, 손주 커가는 모습에 그저 흐뭇해하신다.
"너희만 잘 살면 된다. 나는 신경 쓰지 마라"
"너 고생하는 거 충분히 안데이. 고맙데이"
뵐 때마다 구수한 사투리로 이런 말씀을 해주시니 오히려 더 잘해드려야겠다는 마음이 절로 생성된다.
조만간 경남함안에 사시는 시어머니께 냉큼 달려가야겠다. 시어머니의 따뜻한 손맛이 너무 그립다. 갈 때마다 우거지가 듬뿍 넣어 뼈다귀 감자탕을 끓여주셨더랬다. 그 우거지 가득한 뼈다귀 감자탕 먹고 나면 속이 든든하다. 어머니표 우거지 감자탕이 한없이 먹고픈 그런 날이다. 그리고 이맘때 어머니 집 앞마당에서 키우는 농작물들 오이, 호박, 부추, 고추 등도 싱싱하게 영글었을 생각을 하니 가슴 한편이 충만해진다.
'그 옆 무화과나무 열매도 잘 익어가고 있겠지?'
'무화과나무야~ 올 가을에도 부드럽고 달콤한 무화과 잼으로의 변신 기대하고 있을게~~'
며느리 힘들까 봐 배려해주시고 ,
갈 때마다 따뜻한 품으로 안아주시는 시어머니와 시골집이 나의 안식처이자 쉼터이자, 작은 보물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