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토록 큰 짐처럼 느껴졌을까? (미안해소중한딸)

딸아이가 태어난 지 만 10년/ 11살 생일을 기념하며

by 서나샘



1.8kg 저체중아로 태어나다

1,8kg 저체중아로 태어난 아이는 바로 나의 둘째 딸이다.

오늘이 태어난 지 만 10년이 된다.

10년 전... 난 둘째 딸아이를 임신했을 때 뛸 듯이 기뻤다.

첫째는 남자아이였기에 둘째는 꼭 딸을 낳고 싶었다.

그런데 임신 초 입덧이 심해 잘 먹지를 못했다.

하지만 8개월까지는 뱃속에서 잘 자라주던 아기가

갑자기 8개월부터 잘 자라지 못했다.

(보통 태아는 막달에 확 크는데... 첫째 아이도 물론 그랬다.)

이때부터 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의사 선생님께서 "막달이 되었는데도 아이가 크지 않으니

차라리 빨리 제왕절개로 꺼내서 키우는 게 낫다"라고 하시며 수술을 재촉했다.

이 말에 난 정신이 혼미해졌다.

뱃속에서의 초음파 몸무게는 그래도 2,3kg

"그래 2.3kg 면 괜찮아. 건강하게 키우면 되지"라며 스스로를 다독이며

수술을 결정했다.

그런데

제왕절개로 아이를 꺼내보니 1,8kg밖에 되지 않았다.

수술 후 정신을 차리고

딸아이를 보러 신생아실에 갔는데....

글쎄 나의 딸아이는 일반 다른 아가들과 같이 있지 않고

인큐베이터 속에 있었다.

너무나도 작은 몸집이어서 만지면 부서질 것 같았다.

그 순간 난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딸아이를 제대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그저 눈물만 흘렀다.

며칠 동안....."엄마가 미안해 아가야, 널 이렇게 작게 낳아줘서..... 엄마가 너무 미안해.

기도만 했다.

너무 작게 태어났지만 인큐베이터 안에서 잘 자라서 건강하게 만나자고....

난 모유를 짜서 젖병에 넣어

아가에게 갖다 주었다.

그런데 딸아이는 잘 먹지 못했다.

입이 너무 작다 보니 젖병 꼭지도 제대로 물지 못했다.

정말 정말 감사하게도 한 달 정도 인큐베이터에서

딸아이는 건강하게 있다가 만났다.



큰 짐처럼 느껴지다.


하지만

워낙 작게 태어난 딸아이는 보통 아이들과는

너무 비교가 되었다.

그리고 병원에서 퇴원할 때 의사 선생님께서 말했다.

"이 아이는 워낙 약해서

언제든 신생아 중환자실에 올 수 있어요!

항상 대기하는 마음으로 키우세요!"


무거운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온 나는

혹여 아이가 아플까 봐 병원에 가게 될까 봐

노심초사하며 아이를 돌봐야 했다.

'아가야, 엄마가 널 위해 정성을 다할게.

건강하게만 자라 다오!!'라는 맘으로 아이를 양육했다.

하지만 너무 작게 태어난 아이는 무척 예민하고 민감했다.

신생아임에도 불구하고 잠을 푹 자지 못했다.

너무 맘이 아팠다.

나도 물론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점점 피폐해져 갔다.

모유는 나오는데 입이 작아 빨지를 못했고

분유도 잘 먹지를 못했다.

내 맘은 새까맣게 타들어 갔다.

분유라도 잘 먹어야

키가 크고 몸무게가 늘어나는데 말이다;;

백일,5개월,7개월이 지나도 아이는 크게 자라지 않았다.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다


주위의 시선이 따갑게 느껴졌다.

."어머, 00개월인데 아기가 이렇게 작아요?"

혹시 달수를 다 못 채우고 태어났나 봐요?"

"임신중독이 있었나요? "

"애기 엄마~ 애좀 잘 먹여야겠다"는 둥 혀를 차기도 했다.

딸아이가 잘 자라지 못하는 것이 다 내 책임인 것 같았다.

아가한테 너무 미안해서

먼지처럼 홀연히 사라지고 싶었다.


이때부터 난 산후 우울증이 극대화되었다.

지친 심신에 죄책감에 헤어 나오기가 힘들었다.

아이가 내 아이로 보이지 않았다. 큰 짐처럼 느껴졌다.

진짜 아이를 두고 도망치고 싶었다.

극단적으로 죽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언니, 나 너무 힘들어


친한 언니에게 울며 전화를 했다."언니, 나 너무 힘들어!

나 어떡하지?

죽고 싶어ㅠ 그냥 사라지고 싶어!


언니가 "너 왜 그래? 언니가 갈게.

언니가 기도할게, 힘내!! 너 그런 생각 하지 마!! 하며

나를 잡아주었다.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

목 쇠골 뼈 쪽 힘줄이 끊어지는듯한 통증이 왔다.

방치하다간 큰 병이 생길 것 같았다.


그래서

이 용기를 내어 동네 정신과 의사를 찾아가

힘든 맘을 털어놨다.

깊은 위로와 함께 신경정신과 약을 처방해 주셨다.

약을 먹으며 하루하루 버텨냈다.

첫아이가 3살. 한 아이도 아닌 두 아이 엄마니까.

책임감과 의무감에 그리고 친정엄마를 생각하며

'엄마도 나를 이렇게 키우셨겠구나, 난 둘도 이렇게 힘든데

우리 엄마는 다섯 남매를 어떻게 키우셨을까?


친정 엄마께 존경심과 감사함이 절로 들었다.

다시 용기를 내어 아기를 돌보았다.

힘들 때마다 , 병원에 입원할 때마다 기도하며 이겨냈다.



엄마, 난 왜 돌사진이 없어요?


시간이 흘러 딸아이가 자라 드디어 첫 돌이 되었다.

딸아이 돌잔치를 하지 못했다.

작은 딸아이를 사람들한테 보여주기 싫었다.

지금 너무 후회가 된다.

가족끼리라도 돌잔치를 할걸 그랬다.

그냥 경단과 백설기만 해서 이웃들한테만 돌리고 말았다.

생각이 짧았던 내가 너무 미워진다.


어느 날 딸아이가 내게 묻는다.

"엄마, 난 왜 오빠처럼 돌잔치 사진이 없어?

돌잔치할 때 뭐 잡았어?

또 한 번 가슴이 미어지고 철렁한다.

"으응, 00가 너무 작아서 좀 키 크면 해주려고 했는데.

그 시기를 놓쳤어! 너무너무 미안해.


딸아이는 대답한다.

"응 그렇구나~ 엄마 괜찮아! 엄마가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 뭘~~~~

"내가 좀 많이 먹었어야 하는데".. 하며 날 안심시킨다.

이 말 들으니 더더 미안해진다.

내 딸이지만 생각이 참 깊다.

어느새 건강하게 자라 해맑게 웃으며 더없이 큰 기쁨과 행복을 주는 존재가 된 사랑스런 딸아이, 오늘도 엄마는 너의모습을 보며 살아갈 힘을 얻는다.


나의 비타민


지금도 현재 딸아인 또래 아이보다는 키가 많이 작다.

하지만 조금씩 조금씩 잘 자라주고 있다.

성장호르몬을 맞혀야 하나?? 고민되서

대학 병원에 가봤다.

검사후 다행히 안 맞혀도 된다고 했을 땐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 들었다.


딸은 요즘 내가 일 끝나고 돌아오기 전

설거지와 거실,식탁 물건을 매일 깨끗이 정리해놓는다.

"00야 엄마가 와서 설거지할게. 안 해도 돼~~~"하면

딸아이는"엄마, 엄마는 일하고 와서 우리 밥 주고 설거지하면 더 힘들잖아~~~~"

"엄마는 밖에서도 집에서도 할 일이 너무 많잖아 "


내가 그동안 딸에게 힘들다는 티를 많이 냈나 보다.

어린 딸아이가 이렇게 말을 할 정도로 철이 들었다니...

'넘 일찍 철들게 해서 엄마가 정말 미안하구나...'


이렇게 사랑스러운 딸을 그땐 왜 그렇게 짐처럼 느꼈을까?

후회하고 또 후회가 된다.

내가 힘이 빠져 있으면 안마해준다며, 춤추며, 애교 부리는

딸 덕분에 매일의 피로가 싹 가시는 것 같다.


이 글을 쓰다가 지난 10년 동안 자라온 딸 사진을 보았다.

사진을 보니 그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정말 감사하게도 크게 아픈데 없이 잘 자라

이젠 나와 친구처럼 대화를 한다.

누구보다도 내가 큰 위로와 행복을 주는

'비타민'같은 아이이다.

앞으로의 과정도 하나씩 담아보고 싶다.

혹 나처럼 아이가 저체중아로 태어나

어려움을 갖고 계신 엄마가 있다면

희망을 잃지 않았으면 한다.

그리고 너무 걱정 안 했으면 한다.


엄마의 걱정과는 달리

아이는 스스로 잘 버티며 잘 자라난다.

그리고 좀 마음을 내려놓고 아이를 사랑으로 바라봐주고 인내하면 된다.

지금도 육아로 충분히 힘든 세상 모든맘들께 힘내라고 , 기운 내라고 말하고 싶다.

아이가 자라 그만큼 충분히 보상해줄 것이다.


" 딸아, 엄마만 힘든줄 알았는데

너도 자라내느라 얼마나 고생했니?"

"수고했어!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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