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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나샘 Aug 09. 2021

제주의 자연을  선물하고 싶어졌다.

제주로의 이주를 꿈꾸다

" 아빠, 이곳은 제가 사는 이에요"

"무너지지 않게 댐을 만들어주세요!"

"아~~~~바닷물 들어온다, 도망가자 "

"힝~~너지기 전에  다른 곳에 쌓자!"

3개월 만에 상봉한  아빠와 딸, 아들은 신나게 월정리 바다를 놀이터 삼아 모래성을 쌓고 있다.

연신 딸아이와 아들의 얼굴에 함박웃음이 떠나질 않는다.


이 모습을 지켜보는 나는 아이들에게 죄책감을 조금 벗어난 느낌이 들었다. 코로나19에 모든것이  일시 정지되어  어디에 자유롭게 체험도 할 수 없었고, 맘껏 뛰어놀 수도 없었다. 워킹맘이라  주말밖에 시간이 허락지 않은데... 그 시간마저  아이들에게 온전히 집중도, 할애할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얼마 만에 딸과, 아들이 환하게 웃는 모습인지 그 기억이 아득하기까지 하다.파아란 바다와 청명한 하늘, 시시각각 다양한 모양을 만들어내는 깨끗한 구름을 배경 삼아 모래 놀이터에서 신나게 놀이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아이들이 더 자라기 전에 자연과 벗 삼아 놀 수 있는 나날을 선물하고픈 마음이 크게 일렁였다.


사춘기에 접어든 아들은 나와 매일매일 살얼음을 걷는 듯 하루하루를 지냈다. 엄마의 모든 말은 잔소리로 치부해 버리고 의견을 조율해보고자 하면 귀찮은듯한  표정으로일관해 버리기 일쑤였다. 내 양육태도에 문제가 있나 책도 읽어보고  유튜브에 도움도 구하면서 순간순간의 위기를 모면하곤 했다.


그런데 제주에서 일주일 동안 휴가를 보내면서  아들의 표정이 정말 많이 부드러워졌음을 직감했다.내가 여유를 찾은 탓도 있겠지만 아침저녁으로 숙소 산책길을 걷고  대화를 풍성하게 나누다 보니서로를 이해하는 폭이 넓어졌다고 할까?  말끝마다 가시가 돋쳐있던 아들의 말투에 부드러움이 녹아 있었다.



 제주 최대의 편백숲을 찾았다. 이곳은 아이들이 가고 싶은 곳 보다 내가 원한 장소였다.

길쭉길쭉 빼곡하게 날씬한 편백나무들이 우리를 에워쌌다. 이곳에서는 거리두기도, 인원 제한도 필요 없었다. 아이들과 나는 마스크를 과감히 벗어던져 버렸다. 깊고 천천히 심호흡해 보았다. 폐 속에  탁한 공기가 빠져나간 자리에  맑고 깨끗한 피톤치드의 향기가  채워졌다. 온몸의 피가 저절로 정화되는 느낌을 받았다.


편백숲에서 생각지도 못한 반가운 친구를 만났다.

바로 노루이다.  천천히  피톤치드 향기를 느끼며 걸음을 옮기고 있었는데  초록숲 덤불 뭇잎이 갑자기 사~사~삭 움직였다.


순간 두려운 마음이 엄습했다. 깊은 산속이라 무서운 동물일까 봐 겁을 먹고 있었는데

노란빛털의 노루가 쓱 하고 지나가는 것이 아닌가?

숲은 순간 지나가서 사진으로  캡처하지 못했지만  무척이나 반가웠다.


"엄마, 노루요! 너무 신기해요"

"세상에, 노루를 숲 속에 만나다니 놀라워요.!"

딸아이가 연신 반갑고 신기했는지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편백숲에 서 있는 순간 아름다운 자연을 통째로 선물 받은 기분이었다. 돈도 지불하지 않았는데도 거대한자연의 선물이 내게 와락 쏟아진 기분이  감돌았다.  순간 뭉클함과 동시에 감사했다.



어릴 적  전라도 두메산골에서 자란 나는 시골 풍경 너무도 싫었다. 시골생활이 지겨웠다. 매일 보는 나무도, 풀도 사랑스럽지 않았다. 소중함을 미처 깨닫지 못했다. 도시에서 살고 싶었다. 꽃 고무신 말고  도시 아이처럼 예쁜 원피스 입고 구두 신고 학교에 가고 싶었다. 도시 아이들이 시골에 놀러 오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까무잡잡한 내 피부와는 달리 곱고 하얀 피부가 그때는 왜 그렇게 부러웠던지...  웃음이  지어진다.


하지만 어릴 적 시골 추억상자는 억만금을 주어도 내어주기 싫은 가슴 시린 자산이 되었다. 동네 앞 졸졸졸 흐르던 맑은 냇가에서의 추억, 숲 덤불을 헤치며 따먹었던 빨간 산딸기,  몰래 수박 서리하다 된 통 혼났던 ,집 뒷뜰에서 오디먹고 온통 입주위가 보라색으로 물들었던일...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추억상자이다.


이제는  아이들에게 그 추억상자를 만들어주고픈 강한 열망이 생겼다.



주말 아침, 남편과  함께 남원읍 펜션 앞 산책길을 걸었다. 아이들도 함께 거닐었다.

집에서는 한참 꿈나라에 있을 시간인데, 펜션 앞 나무와 숲 사이에서 들려오는 산새 소리에 절로 잠이 깨졌다.

귀에 거슬리는 핸드폰 알람 소리가 아닌 새소리에 잠이 깨다니...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여유와 평온함으로 충만해졌다. 아이들과 손을 잡고 자연풍경을 이야기하며 천천히 걸었다. 저 멀리 서서히 빛을 밝히는 여명의 순간을 맞이했다. 눈부시게 찬란했다.

이 찰나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하게 느껴지던지....


"자기야, 나 제주도에 살고 싶어!!"

"아이들이 더 크기 전에 자연을 선물해 주고 싶어."


남편은 잠시 고민한다.

"그래, 우리 조금 시간을 갖고 생각해보자"

"옆동네로 이사하는것도 아니고, 해결할 문제들이 많이 있으니까."


내게 요동치는 마음들이 일시적인것은 아닌지, 여러가지를 고려해야 한다는것을 안다.

번아웃된 도시생활에 지쳐서 순간의 감정의 치우친것은 아닌지.. 곰곰히 생각해 봐야함을 안다.

옆집동네로 이사하는것도 아니고 육지를 떠나 섬으로 이주한다는것이....쉽게 결정할 일은 아니기에

집 문제, 대출 문제, 직장문제, 아이들 학교 문제... 많은 제약과 걸림돌이 있음을 인지한다.


하지만 마음을 먹은 이상 천천히 계획을 세워서 실행에 옮겨 보려 한다. 많은 시간이 소요되겠지만 아이들과 매일 자연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설레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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