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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나샘 Nov 26. 2021

오늘도 화내고 말았다.

화는 걱정의 다른 이름이다.

왜 그리도 화를 냈을까?

늦은 밤 잠이든 아이들 옆에서 화를 낸 엄마는 미안함에 또 후회와 자책을 한다.

뭐 그리 화낼 일이라고 그렇게 욱하며 화를 냈을까?  문제는 이런 후회와  자책을 반복하는 메마른 하루하루의 삶이  힘들다.    


나는 일이 끝난 후 집으로 다시 출근하는 워킹맘이다. 일이 끝날 때쯤 고민이 시작된다.

‘오늘 아이들 저녁은 뭐해 먹이지?

버스를 기다리면서 메뉴를 정하고 집 앞 슈퍼에 들러 장을 본다.

저녁거리를 무겁게 사들고 집으로 향한다. 집 문을 열면 현관 출입구부터 어질러진 신발이 맞이한다.

중문을 지나 거실에는 각종 옷가지들과 정리되지 않은 책들로 마음이 답답해져 온다.

그리고 싱크대에 아침부터 낮에 아이들이 먹은 설거지 거리로 한가득이다.


순간 짜증이 솟구치면서 화가 치밀어 오른다. 엄마를 애타게 기다렸다는 듯 ’ 엄마‘하며 반기는 딸아이와  눈 맞추고 안아주기는커녕 소리부터 지른다.     

“이게 뭐야? 너희들 정리하고 안하고 놀 거야? 정말?”

“엄마 오기 전에 정리하라고 했지?”

“공부는 다 했어? 책은 읽었어?”

“하루 종일 TV만 본 거 아냐?”

“게임은 얼마만큼 했어?”

이런 엄마의 폭풍 잔소리에 아이들은 기가 죽는다.    

“엄마가 바깥에서 힘들게 일하면 너희들은 집에서 이 정도는 해줘야 하는 거 아냐?”하며 불같이 화를 냈다.    


옷을 대충 갈아입고 저녁을 준비한다. "엄마, 배고파요." 배고프다는 아이들 말에 나의 손은 빨라진다.

아이들 저녁을 차려준 후에야 한숨을 돌렸다. 잠깐의 쉼을 갖으려고 의자에 앉아 주방을 바라보는데한숨이 절로 나왔다. 냉장고에 정리해야 할 식재료들과 정리되지 않은 양념 그릇들, 재활용과 쓰레기들이 뒤섞여 있는 모습을 바라보며 '아, 정리하기 싫다. 귀찮다. 나는 언제 쉬지? '라는 푸념이 절로 흘러나왔다.


직장에서 에너지 소진을 다하고 집에 돌아오면 그야말로 파김치가 된다. 조금은 쉼을 갖고 집안일을 정리하고픈데 내 얼굴을 보자마자  배고프다는 아이들의 말을 외면할 수가 없다. 집에  남편이라도 있으면 많은 도움을 받았을 텐데  그런 상황이 허락지 않으니 다 내 몫이다.


우울하고 답답하고 억울한 기분으로 제주도에 있는 남편에게 톡을 보냈다. "뭐해요?"

바로 톡 답이 왔다. "쉬고 있어요. 무슨 일 있어요?"라고 톡 답이 왔다.

순간 "아니요. 됐어요! 쉬세요"라며 톡답을 보냈다.



그러자 바로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괜스레 화가 난 감정이 들킬까 봐 안 받으려다가 고민 끝에 전화를 받았다.

남편에게 짜증 섞인 말투로 막 쏟아내듯 이야기를 했다.

"힘들다고..."

"일하고, 아이들 밥 챙기고, 정리하고... 왜 나만 힘 ?"마음속 불만과 억울한 감정, 요즘 직장에서의 고민거리를 조목조목 풀어냈다.


남편은 가만히 나의 속에 있는 말을 다 들어주었다.

"미안해. 자기 힘든 거 다 알지..."

" 고생하는 거 충분히 알아. 그 힘든 만큼 만나면 두배, 세배 내가 더  잘할게"라고 답한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마음속의 쓰디쓴 감정들이 가라앉고 내 말투도 부드러워진 것을 감지했다.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락  풀리고 있었다.


나는 종종 무너졌다.  가장 사랑하는 아이들과 남편 앞에서  원하는 모습으로 서 있지 못했다. 나는 때로 내 아이보다 어린아이처럼 행동했고, 어느 날은 무서운 괴물처럼 행동했다. 모든 것이 만족스럽지 않았던 어떤 순간에는 아이를 외면한 채 상념에만 빠져 있었고 돌아서서 후회하며 나 자신을 미워했다.  나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몰랐고 내 감정을 어떤 방식으로 돌보아야 하는지 몰랐다. 감정을 보지 못하고 다루지 못한 채 감정대로 행동하는 삶이 이어졌다.


눈물을 머금고 바라본 파란 하늘이 가르쳐 주었다고 할까? 날 바라보며 웃던 아이의 미소가 가르쳐 주었다고 할까 내 품에 안겨 사랑스럽게 자고 있는 아이의 숨소리가 가르쳐 준 걸까? 나는 내 모든 감정이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때로는 슬펐고, 때로는 불안했고, 때로는 화가 났던 모든 날이 내가 살아있는 인간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올라오는 감정이라는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엄마의 말하기 연습> 박재연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화는 화가 아니라 걱정의 다른 이름입니다. 화라는 감정은 억누르거나 상대에게 터트리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감정을 잘 보살피며  세밀하게 바라보고, 무엇 때문에 자신의 바람이 좌절됐는지 이해해 줄 필요가 있습니다.


화라는 보따리 안에 있는 다른 감정을 깨달으라고 한다. 화라는 보따리를 펼쳐보면 그 안에는 정확하고 세밀한 감정들이 있다고 한다. 서운했고, 억울했고, 슬펐고, 걱정되었고, 불안했고, 좌절했고, 맥이 빠졌고, 지쳤고, 겁이 났다는 저자의 표현에서 나는 그만 내 감정을 고스란히 들킨 것처럼 눈물이 핑 돌았다.     


워킹맘으로 살면서 나는 밖에서도 집에서도 일을 해야 한다는 억울함과 불만, 짜증이 늘 내재돼있었다. 그리고 아이들을 제대로 케어하지 못한다는 불안감, 미안함이 가득했다. 일에 대한 회의감으로 순간순간 맥이 빠지기도 했다.    


책을 읽으면서  언급한 내용들이 꼭 내면을 거울로 들여보는 듯했다. 책을 마주하고 있는 순간만큼은 온화하고 따뜻한 미소로 내 등을  토닥토닥 안아주는 상담자이자 친구가 되어 주는 듯했다. 나를 진심으로 공감해주고 격려와 위안, 위로를 해주었다. 저자 앞에서 심리상담을 받고 외면했던 내 마음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는 듯했다. 치유 그 자체였다.   

  

 우리가 겪는 이 모든 것들은 인생의 여정 속 소소한 이벤트일 뿐이며 우리가 현재를 충실히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 고비만 넘기고 나면 그다음 순간에는 아이를 보며 환하게 웃을 날이 올 거라 희망을 걸어 본다. 잘 버티고 애썼노라고 회상할 시간이 오니 그때까지 조금 더 힘을 내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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