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과 우울

바람 앞에서 서 있는 마음

by 에메

아침에 컴퓨터를 켜자마자 뉴스 하나가 내 마음을 오래 붙잡았다.


지난해 처음으로 소아청소년 정신건강질환 환자가 30만 명을 넘어섰다는 소식.
숫자는 차갑지만, 그 안에는 수많은 아이들의 떨림과 눈물이 숨어 있다.

나는 그 숫자를 단순한 통계로만 받아들이지 못한다.


딸이 자사고에 다니던 시절,

딸이 불안 증세로 힘들어했다.

병원에 가고 싶다는 딸의 말에

너무 마음이 약한 건 아닌지

그런 쪽으로 의존을 하는 건 아닌지

생각했다.

하지만 반 친구들 절반 이상이 정신과에 다녀본 경험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제야 깨달았다.

이제 정신건강은 특별한 몇몇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삶 속에 스며 있는 그림자라는 것을.


나는 딸에게 무심코

“이겨낼 수 있으면 이겨내 보라”는 말을 했다.
그 말은 부모로서의 무지와 두려움이 섞인 방어였다.
하지만 그 말은 딸의 고통을 덜어주지 못했고, 오히려 더 무겁게 했을지도 모른다.


버티고 버티다가,
딸은 결국 학교에 들어가기 전날 병원에 가보기로 했다.
나는 속으로 ‘가서 별거 없다는 걸 느끼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예약을 하려 하니 동네 병원은 이미 꽉 차 있었다.
그 순간, 정신과의 인기에 또 한 번 놀랐다.
결국 조금 거리가 있는 병원으로 발걸음을 옮기게 되었다.

멀리 있는 병원이었지만, 그 길은 단순히 치료를 향한 길만은 아니었다.
나와 딸은 그 동네의 작은 맛집을 함께 찾으며
병원 가는 길을 조금은 가볍게 만들었다.
딸은 내가 데려다주지 못할 때도
그 먼 길을 스스로 오가며 선생님과 친구처럼 가까워졌다.

병원에서 받아온 약은 딸에게 방패 같은 존재였다.
꼭 먹지 않아도, 손에 쥐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마음이 조금은 단단해지는 장치였다.
“힘든 느낌이 들 것 같아”라며
아직 오지 않은 불안을 미리 짐작하고 병원을 찾는 모습은
처음엔 나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곱씹어보니 그 마음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사람은 때때로 실제의 고통보다
다가올 것 같은 고통의 그림자에 더 크게 흔들린다.
예상되는 불안은 현실보다 더 무겁게 다가와
몸과 마음을 움츠리게 한다.

그렇게
딸에게 병원은 그 그림자를 조금 덜어내는 공간이었다.
아직 오지 않은 불안을 대비하는,
마치 비가 올 것 같아 우산을 챙기는 마음과도 같았다.

나는 그 미묘한 마음을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불안은 단순히 ‘지금’의 상태가 아니라,
‘곧 다가올 것 같은’ 예감 속에서 자라난다.
그 예감을 혼자 감당하기 어려울 때,
누군가에게 기대고, 공간에 기대는 것은
결코 약함이 아니라 스스로를 지켜내는 방법이다.


얼마 전 딸은 대학 합격 소식을 전하러 병원에 갔다.
그곳은 단순한 치료의 공간이 아니라,
자신을 이해해 주는 안전한 쉼터였다.
그리고 나에게는,
불안을 예감하는 그 미묘한 마음을
조금 더 깊이 이해하게 해 준 배움의 자리였다.


나는 대학원에서 임상심리를 공부했지만,
불안과 우울은 여전히 정의 내리기 어렵다.

그래서

생각보다 간단한 상황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한 경향이 있기도 하다.

진단명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복잡한 감정들이 있다.
초긍정으로 살아온 나조차,
어쩌면 웃음이라는 가면을 쓰고 있는 우울증 환자일지도 모를 것이다.


정신건강은 ‘누가 환자이고 누가 건강한가’로 나눌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삶의 어느 순간 누구나 불안과 우울의 그림자를 만난다.
중요한 것은 그 그림자를 외면하지 않고,
누군가와 함께 이야기하고,
필요하다면 전문가의 손을 잡는 용기다.

딸이 병원에 가는 길은,
결국 자기 자신을 지켜내는 좋은 방법이었다.


우울과 불안은 마치 바람 같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문득 창문을 흔들고, 마음의 균형을 무너뜨린다.
누군가는 그 바람을 폭풍처럼 느끼고,
누군가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바람이라 여긴다.


이 글을 쓰면서도

너무

쉽게 이야기하는 건 아닌가 걱정은 된다.


그 경도를 직접 겪어 보지 못한 사람이

글자 나부랭이로 이야기한다는 것이

참으로

어렵고도

어렵다.


그러나

딸이 병원에 다니며 배운 것은,

자신의 불안을 숨기지 않는 법이었다.

딸이 병원에 가는 길은,

결국 나에게도 배움의 길이었다.
불안과 우울은 결코 약함의 증거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인간이라는 증거이며,
서로에게 기대어 살아야 한다는 신호다.


삶은 누구에게나 무겁고,

때로는 버거운 그림자를 드리운다.
하지만 그 그림자를 인정하고,
누군가와 함께 걸어갈 때,
우리는 조금 더 가벼워질 수 있다.


불안과 우울은 결코 약함의 증거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인간이라는 증거이며,
서로에게 기대어 살아야 한다는 신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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