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틴

by 에메

요즘 나는 하루에도 수십 차례 마음이 요동친다.

아침엔 평온하다가도,
오후엔 이유 없이 가라앉고,
저녁엔 다시 안정을 되찾는 듯하다가
밤이 되면 또다시 불안이 밀려온다.


감정의 기복은

호르몬의 영향인지

내 주변의 환경인지

혹은 왜곡된 기억의 잔상인지


이유는 모르지만 무엇인가에 기인하는 듯하다.


내가 둘째를 낳았을 때

바로 이랬다.


내일이 또 똑같은 하루라고?

내가 했던 것들을 또 해야 한다고?


육아의 경험은

항상 나의 예상과 어긋났고

나의 계획은 산산 조각이 났다.


그때


내가 계획할 수 없는

예상 할 수 없는 하루하루가


너무 행복하지만

크게 빛나지 않는 하루하루가 나에게 공허함을 주었다.


아아

아마도

호르몬 때문일 거야.


늘 낙관적이던 나조차
이 불규칙한 흐름 앞에서는
자주 중심을 잃는다.


그럴 때마다 나를 지탱해 주는 것은 ‘루틴’이다.
의식하지 않아도 흘러가는 하루의 구조.

정해진 시간에 기상하고,
정해진 호흡으로 수영을 하며,
정해진 리듬으로 업무에 몰입한다.

그 반복의 구조 속에서
나는 나를 보존한다.


최근 몇 주간,

몇 년째하고 있는 수영이 재미도 없고 낯설었다.


내 몸이 물속을 가르고 있다는 감각은 희미했고,
몸은 앞으로 나아가지만
의식은 정지된 듯했다.
물은 나를 감싸지만,
나는 그 존재를 인식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난 주말 내내 이어진 일과

새로운 만남이
내 감정의 결을 조금씩 회복시켰는지
오늘은 물이 손끝에 닿는 감각이 되살아났다.

팔이 물을 밀어내고,
몸이 앞으로 나아가는 그 순간,
나는 문득 깨달았다.

아, 내가 다시 나아가고 있구나.


아마 내가 지난 5년간 수영을 지속해 온 이유는
바로 이것이었을 것이다.

다른 모든 것이 흔들릴 때에도
흔들리지 않는 하나가 나를 붙잡아 준다.

오늘, 누군가 내게 물었다.


“어떤 스타일의 사람이 좋아?”


나는 잠시 침묵한 뒤,
조심스럽게 답했다.


나를 불안하게 하지 않는 사람


내가 어떤 말을 하든,
어떤 모습으로 있든
나의 본질을 기억해 주는 사람.


그 사람 자체를 신뢰하여

어떤 말이나 행동에 내가 흔들리지 않는

나의 루틴 같은 사람

그런 사람이 좋다.


내가 조용히 흔들릴 때
말없이 곁에 있어주는 사람.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다.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이 세상으로 올 때도 마음 하나 가지고 왔고
저 세상으로 갈 때도 마음 하나 가지고 간다.

아무리 많은 것을 움켜잡고 있어도
정작 그대의 것은 단 하나도 없고

우주 어디를 가든
오직 마음 하나만 그대 것일 뿐이다.


내일은 호숫가에 있는 도서관에 가서 이외수의 " 코끼리 날개 달아주기"를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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