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구해준 나의 이야기

글과 나의 관계

by 이다이구

주위를 둘러보면 자신을 단단한 양장 제본에서 꺼내주길 바라는 글들이 있다.


그들은 단 1cm의 여유도 없는 곳에 갇혀 몇 년을 기다린다. 언젠가 누가 저 무거운 표지를 열고 수많은 페이지를 넘겨 자신을 꺼내주리라 꿈꾸며 늘 그 자리에, 가끔은 누군가에 의해 옮겨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기다린다.


오랜만에 한국 집에 돌아오니 집이 많이 바뀌어있었다. 짐을 풀고 강아지와 함께 집을 돌아다니며 무엇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무엇이 어느 위치에 있는지 눈에 담았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은 책장이었다. 전보다 훨씬 단출해진 책장, 그 전의 책장보다, 그 전의 책장보다, 점차 작아지고 있다. 마치 늑대의 크기부터 시작해서 이젠 일어서야 간신히 내 무릎과 허벅지에 손이 닿는 강아지가 된 것처럼 책장도 선조 때와 비교했을 때 터무니없이 작아졌다.


어머니는 더 이상 읽지 않는 책은 처분했다고 말했다. 책장에 오래된 책이 너무 많아 집이 너무 더러워 보였다고 했다.


나는 어머니의 심판으로부터 살아남은 책들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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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돌림을 당한 아이를 구해준 101권짜리 만화 삼국지는 사라져 있었다. 어느 정도 예상했다. 권 수가 너무 많았던 것의 심판의 이유였을 것이다. 20여 권 되는 만화 슬램덩크는 살아있는 것이 그에 대한 근거다.


마음의 밑바닥을 두드리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는 살아남아있다. 잘은 모르겠지만 표지가 예쁜 것이 심판을 피해 갈 수 있었던 이유가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햇볕 잘 드는 마루에 앉아 있는 고양이의 모습이 꽤나 귀엽고 노곤하게 따뜻하다.


불면증에서 나를 구해준 '명상록'도 제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어머니도 이 책이 나의 '인생책'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평상시 대화에서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말을 자주 인용하는 편이다.) 남겨둔 어머니의 책들을 향한 차가운 심판 속 남아있는 상냥한 배려가 느껴진다.


과거의 나와 (이제는 과거가 되어버린) 현재의 내가 대화를 나누던 일기장은 아마 남아있는 것 같다. 다만 일기장이 너무 많아 정확히 내가 여기서 언급한 그 일기장이 남아있는지는 확신할 수 없다. 그래도 아마 남아있는 듯하다. 일기장이 많은 이유는 일기장을 끝까지 다 쓰기 때문이 아니라, 한 일기장을 쓰다가도 마음에 드는 노트가 생기면 그 노트에 새로 이어가는 나의 소소하게 사치스러운 취향 때문이다.


자기혐오 속 야릇한 쾌락이 있음을 알게 해 준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은 책장에 있지 않다. 이유는 캐나다에서 전자책으로 읽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딱히 실제 종이책을 사고 싶은 마음도 없다. 이유는 책이 별로 예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소장하고픈 마음이 들 정도의 판본이 나오면 나중에 사게 되지 않을까? 그렇다면 또 야릇한 쾌락에 빠질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런 류의 이야기를 싫어하는 어머니의 심판을 피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쓰레기장에서 발견한 시집은 아직 그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집에 가져온 날부터 지금까지도 꽃을 바라보듯 따뜻하게 나를 바라보고 있다.


그 외에도 많은 책들이 있었다. 어렸을 때 읽었던 나니아 연대기 시리즈, 반지의 제왕, 여러 고전 문학 시리즈, 시집, 경제 관련 서적, 철학 서적 등 있었다. 그중 내가 읽은 지 너무 오래되어 내용조차 기억이 잘 안나는 책들도 몇 권 있었고, 설레는 마음으로 구매했지만 아직도 그 끝을 만나보지 못한 책들도 있었다. 또한 내가 태어나기 이 전부터 이 집을 지키고 있던 책들도 있다.


하지만 사라진 책들도 많았다. 대부분 이제는 제목조차 기억나지 않는 내 기억 속에서 잊힌, 오래된 독서록을 펼쳐봐야 그 내용이 기억날 책들이었다.


며칠 뒤 우연히 신발장을 열다가 책 무더기를 발견했다. 거기에는 어렸을 때 읽었던 동화책, 어린이 소설 등이 있었다. 나중에 손주가 생기면 읽어주기 위해 버리지 않고 모아놨다고 한다.


그중 한 권을 집어 펼쳤다. 거기에는 집에 페인트 칠을 하는 고양이 가족 이야기가 나왔다. 읽어보니 기억이 새록새록 나기 시작했다. 이 책들은 얼마나 긴 시간 이 어두운 곳에서 기다리고 있었을까? 마치 몇 대에 걸쳐 한 집안에 충성하는 집사처럼 이 책은 묵묵히 이 집에 남아 곧 태어날 조카에게 읽힐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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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은 묵묵히 기다린다. 때를 기다린다. 하지만 책 표지가 넘어가는 순간 그동안 참아왔던 수많은 말들을 뱉어낸다. 하지만 그전까진 먼저 재촉하는 일 없이 기다린다. 그 수많은 글을 다 구해줄 순 없다. 글쎄, 노력하면 가능할 수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글은 은혜를 갚는다. 자신을 구해준 이에게 반드시 은혜를 갚는다. 잡념으로부터, 불안으로부터, 상처로부터, 게으름으로부터, 좌절로부터, 고독으로부터, 모든 감정과 생각으로부터 숨겨주는 피난처의 역할을 수행한다. 페이지와 페이지 사이에 숨어있게 해 준다.


아직도 행간, 줄과 줄 사이, 그 작은 틈에 잠시 숨어 쉬고 있는 과거의 나를 발견할 수 있다. 하얀 바탕에 꼬부랑 검은 글씨에서 자유롭게 꿈을 꾼다. 그 작은 틈에서 나는 날고, 사랑하고, 죽고, 다시 살아난다.


그러다 다음 페이지로 넘어간다. 아쉽게도 우리는 나그네다. 시간이 흐르는 한, 우리는 한 곳에 머물지 않는다. 페이지 오른쪽 아래 꼭짓점에 살짝 구김이 있는 이유다. 힘찬 도약은 늘 구김을 만든다.


글과 나의 관계는 의롭다. 명예롭다. 서로를 구해주고, 서로를 위한다. 그렇기에 나는 오늘도 서재 주변을 어슬렁거린다. 눈을 감고 집중하면 작은 목소리가 들린다. 자신을 이 책에서 꺼내달라고 말이다.




나를 구해준 글 이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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