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 고민...
"드디어"
오랜만의 귀국 후 먼저 들뜬 마음으로 달려간 곳은, 정확히는 버스를 타고 간 곳은 서점이었다. 아주 큰 대형서점. 책의 냄새와, 옅은 커피 냄새, 한가한 평일 오전이 주는 적당한 소음이 조화를 이루어 공기를 꽉 채웠다.
생각해 보니 한국에 있을 때는 이곳에 자주 놀러 왔다. 놀러 와서 책을 읽고 책을 사고, 책을 구경했다. 특히 책을 구경하는 것은 정말 재미있는 일이다. 어떻게 이 많은 책들이 저마다 눈길을 끄는 흥미롭고 유일한 제목을 짓는지 감탄하며 이 책, 저 책, 책장에서 꺼냈다, 꽂았다를 반복하며 목적 없는 방황을 하며 사방을 돌아다녔다.
하지만 오늘은 다르다. 나는 목적이 뚜렷한 잰걸음으로 가르마를 휘날리며 걸어갔다. 발걸음이 멈춘 곳은 소설 코너였다. 재빨리 책들을 샅샅이 훑었다. 내가 찾고 있던 책을 발견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베스트셀러 순위에는 없었지만 그래도 눈이 잘 보이는 곳에 넉넉한 재고로 쌓여있었다.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책을 집어 들었다.
그 후 읽고 싶었던 에세이 한 권도 찾기 위해 열심히 넓은 서점을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검색하고 찾아다녔지만 재고가 없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분명 시스템에는 한 권 남아있다고 했는데... 살짝 실망했지만 그래도 오늘은 오늘의 분명한 수확이 있었으므로 털어내고 계산대로 가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을 구매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이 나왔다는 소식을 캐나다에서 듣고 정말 아쉬웠다. 내가 캐나다로 출국한 지 2주일 만에 출판되었기 때문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e북으로 찾아봤지만 신작이라 그런지 아직 e북으로는 찾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가끔 생각이 날 때마다 e북에 들어가 혹시 올라왔는지 확인을 했다.
조금의 스포일러도 허용하지 않기 위해 줄거리, 소개, 관련내용 그 어느 것도 의도적으로 피했다. 무라카미 하루키라며 그냥 믿고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드디어 그 책을 손에 넣었다. 마치 보물을 손에 넣은 해적처럼 마음속으로, 아니 입안에서 '음하하하' 하고 웃었다. 입만 열었다면 그 소리가 밖으로 나왔을 것이다.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같은 건물 위층에 있는 카페로 올라가 커피를 시킨 뒤 책을 펼쳤다. 과연. 나는 단숨에 소설 속으로 빠져들었다. 어린 남녀의 사랑과 신비한 도시의 이야기에 매료되었다. 나는 뇌에 지속적으로 카페인을 넣어주어 나의 머리가 책 읽는 속도에 맞춰 그 도시의 모습과 인물들의 행동, 풍경을 상상해 낼 수 있도록 도왔다.
그렇게 책에 빠져있을 때 행복하게 미소를 짓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이 기분. 어떻게든 기록하고 싶어 수첩과 볼펜을 꺼냈다.
하지만 볼펜촉이 종이 위 1cm 정도 간격을 두고 공중에 떠있을 뿐, 닿지 못했다. 뭐라 적을지 전혀 감이 안 잡혔다. 이 기분을 어떻게 묘사를 해야 할까. 그 상태로 몇 분간 가만히 멈춰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도저히 알맞은 문장을 떠올리지 못했다. 머릿속으로 형편없는 문장들이 둥실둥실 떠다녔지만 그 어느 것도 종이에 옮겨 적을만한 것은 아니었다. 그 뒤로는 제대로 된 단어조차 떠올리지 못했다. 어느 단어도 이 순간을 완벽히 묘사하지 못했다. 적어도 그 순간 내 머리에 떠오른 단어들은 그랬다.
결국 포기했다. 그리고 책을 마저 읽고 저녁시간에 맞춰 집에 돌아갔다. 돌아가면서도 곰곰이 생각했다. 의미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할 문장 몇 개가 떠올랐지만 평소 여유롭기로 소문난 나의 심사 기준도 통과하지 못했다.
저녁 11시. 일기를 쓰고 잠시 거만하게 의자를 뒤로 젖히고 다리를 책상 위에 올렸다. 그리고 또 생각했다. 하지만 결코 떠오르지 않았다. 그 뭐랄까 몽글몽글, 행복하고, 하지만 은은하게, 기쁨의 감정은 아니었지만 긍정적인 감정은 확실한데, 가슴이 뛰었지만 그렇다고 동적인 상태는 아니었다. 설렘 이후 만족이 느껴져야 할 순간에 여전히 설렘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설렘은 아니었다. 그보다... 모르겠다. 내 필력의 한계인가 보다.
그렇게 포기하고 책을 다시 펼쳐 읽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소설 속 인물의 한 대사가 눈에 들어왔다.
그건 필설로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었어
그는 마치 내 고뇌에 대답하듯 그렇게 말했다. 생각할수록 점점 길을 잃고 헤매던 나에게 아리아드네의 실타래 같이 나타나 나를 구해주었다. 그래 그건 어쩌면 필설로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었나 보다. 웃음이 조금 나왔다. 살짝 허무하고, 살짝 시원했고, 살짝 아쉬웠다.
그리곤 다시 소설 안으로 들어갔다. 필설 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 다시 내 가슴을 스쳐 지나갔다. 조금씩 더워져 창문을 살짝 열어야 했던 밤, 나는 소설 속에서 걸어 다녔다. 한 문장에 감탄하고, 한 문단에 마음을 빼앗기고, 한 페이지에 몰입하고, 한 챕터에 감정이 요동쳤다. 결국 한 권이 끝났을 때에도 나는 여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잠에 들기 전까지 나는 침대에서 눈동자를 돌리며 이것저것을 상상하고 상기하고 상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