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수식어
"너 진짜 재미없게 산다"
나라는 사람을 꾸며주는 수식어입니다. 하지만 오해해서는 안됩니다. 제가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 재미가 없을 뿐 저라는 사람만을 놓고 보면 꽤 유쾌한 사람으로 주변에서 평가받고 있습니다.
흔히들 말하는 "이 X끼 진짜 또X이야."의 그 친구입니다. 친구와 만나면 나누는 이야기 중 절반 이상은 의미 없는 농담이고 나머지 절반은 의미가 어느 정도 있는 농담입니다. 남을 웃겨주는 포지션. 광대 역할. 그 역할이 제가 맡은 역할입니다. 게다가 아주 잘 수행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건 친구들과 만났을 때에 한정된 이야기입니다. 대부분의 시간은 홀로 집에서 보냅니다. 그것도 꽤 조용히 말입니다. 약속이 잡히면 거절하지는 않지만 애초에 먼저 나서서 약속을 잡는 스타일이 아니기에 많아도 일주일에 한 번, 적으면 한 달에 한 번도 약속이 잡히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광대' 역할은 저에게 있어 어디까지나 제가 수행해야 할 '역할'에 불과합니다. MBTI도 I (내향형)입니다. 이 사실을 들으면 주변에서 많이들 놀라고 합니다.
"넌 쉬는 날에 뭐 해?"라는 대답에 저의 대답은 거의 정해져 있습니다.
"산책 갔다가, 책 읽다가, 운동 갔다가, 집에서 좀 놀지."
쉬는 날에 누군가와 만나는 일은 아주 드뭅니다. 가장 큰 이유는 제가 술을 안 마시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만남은 결로 술로 귀결되기 때문에 (저의 경험상) 피합니다. 두 번째 가장 큰 이유는 친구가 많이 없습니다. 첫 번째 이유와 조금 겹치는데, 20살 이후 술자리에 잘 참석을 안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친구들과 멀어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가 한국과 캐나다를 오가는 유학생인 이유도 이에 큰 몫을 차지합니다. 쉽게 말해 요즘 말로 '아싸'(아웃사이더의 준말)입니다.
술을 안 마시는 이유는 철학적이거나, 종교적이거나, 건강 상의 문제가 아닌 그냥 맛이 없기 때문에 안 마십니다. 그리고 간이 안 좋기도 하고요. 담배도 피우지 않습니다. 담배 냄새가 아주 싫기 때문입니다. 게임도 거의 안 합니다. 그냥 제가 잘 못해서 흥미가 별로 안 생깁니다. 연애는 제가 인기가 없는 탓에 못한 지 꽤 오래됐습니다. 이런 저의 모습을 보면 사람들은 마치 어미를 잃고 도로를 방황하는 아기 고양이를 바라보듯 한껏 동정심에 찬 눈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그럼 도대체 뭔 재미로 사냐?" "너 진짜 재미없게 산다." "좀 즐기면서 사는 거 어때? 연애도 하고, 사람도 만나고, 거나하게 취해보고!"
그런데 저는 제 인생이 좋습니다. 물론 스스로도 제 인생, 꽤나 재미없다고 생각합니다. 평소에도 "아~무료해"라고 생각하며 신세한탄을 한 적도 있습니다. 그래도 저는 제 인생이 재미있습니다. 잘 즐기고 있습니다.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재미없게 살기 베테랑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재미없게 사는 거 꽤나 재미있습니다. 생각보다 다이내믹하고 할 것도 많고 하루하루 성취감을 느끼며 기대감을 품고 잠자리에 듭니다.
저 같은 천부적인 아싸 체질인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인생이 재미없습니다. 그럼 어차피 재미없는 인생, 제대로 재미없게 살아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글은 제가 어떻게 '제대로' 재미없게 사는지에 관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