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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이구 Jun 22. 2024

쇼펜하우어 아저씨 말이 맞았어

인생은 욕망과 권태를 오가는 시계추

요즘 서점을 돌아다니면 왠지 모르게 쇼펜하우어의 책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탈모가 심하게 온 중년이 마치 철권의 헤이하치 같은 머리스타일을 하고 심술궂은 표정으로 서점을 둘러보는 사람을 째려보고 있습니다.


아, 쇼펜하우어에 대한 제 묘사가 "좀 심하네..."라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하실 쇼펜하우어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언젠가 쇼펜하우어의 책을 읽어 보았습니다. 그런데 저와는 별로 맞지 않더군요. 말하자면, 알베르 카뮈와 같은 이유로 쇼펜하이우어의 철학에 완전한 동의를 할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제 철학 중심에는 스토아 철학이 누름돌처럼 자리를 지키고 있기에 더욱 그랬습니다.


그렇게 쇼펜하우어의 철학을 부정하는 삶을 살고 있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아... 심심해..."


깨달았습니다. 쇼펜하우어 아저씨의 말이 맞았습니다. 인생은 정말로 욕망과 권태를 오가는 시계추였습니다. 다만 저의 경우는 권태에 오래 머무는 시계추였습니다.


인간관계를 (의도적으로든, 의도하지 않았든) 멀리하고 집에만 머무는 소위, 아싸의 삶은 대게 권태롭습니다. 그리고 권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찾는 욕망은 대게 게임, SNS, 드라마 시청 등입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아싸의 선택지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재미없게 사는 사람(아싸라는 말이 조금 공격적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이 들어 이제부턴 '재미없게 사는 사람'이라 칭하겠습니다)들이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이 바로 위와 같은 행동입니다. 정확히는 위와 같은 행동으로 얻어지는 도파민입니다.


이유는 여러 지인데, 먼저 위와 같이 도파민이 뿜어져 나오는 행동은 시간이 너무 빨리 가버립니다. 어라? 하면 한 시간, 또 어라? 하면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반나절이고 계속 이어집니다. 그런데 인생은 시계추입니다. 욕망 쪽으로 지나치게 올라간 시계추는 엄청난 반동력으로 권태를 향해 웅— 하고 날아갑니다. 이른바 현타(현자타임)입니다.


또 다른 이유로, 도파민 뿜뿜 행동은 ('도파민이 뿜어져 나오는 행동'이라는 단어가 너무 길어 이렇게 줄여보았습니다.) 우리의 인생을 단조롭게 만듭니다. 인스타그램을 보는 거? 하루 종일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하루종일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러면 다가오는 권태의 시간에 우리는 큰 고통을 느낄 겁니다. 인생을 다채롭게 만들기 위해선 콘텐츠의 종류가 많아야 합니다. 욕망과 권태 사이에서 살짝살짝 줄타기를 하는 겁니다. 욕망으로 적당히 갔다가, 권태에 적당히 머물다가, 그리고 이를 반복하는 겁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제가 인생을 재미없이 사시는 분들께 감히 말하겠습니다. 저희는 남들보다 더 재미없게 살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게임? SNS? 드라마? 이건 너무 재미있습니다. 저희와 어울리지 않습니다. 더 재미없게 살아봅시다. 게임 대신 책을 펼치고, SNS 대신 운동을 하고, 드라마 대신 산책을 나가야 합니다.


"그런 따분하고 뻔한 이야기는 집어치워"라고 말씀하시기 전에, 제 말을 잠시 들어주세요. 이 '정말 재미없는 인생'이 여러분의 '재미없는 인생'보다 더 재미있을 겁니다. 모순이죠. 그리고 솔직히 말해 어차피 재미없는 인생 아닙니까?


확실한 건 도파민 뿜뿜 인생은 '개성'없는 인생입니다. 잠시만 시점을 옮겨 봅시다. 아파트 밖으로 점점 카메라 앵글이 빠진다고 상상해 봅시다. 수많은 창문이 보입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침대 혹은 소파에 누워 핸드폰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게 사람 사는 아파트인지 사육당하는 닭장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혹은 둘 다 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핸드폰을 아예 쓰지 말라는 건 아닙니다. 이렇게 편리하고 재미있는데 왜 쓰면 안 됩니까? 즐겁게 게임도 즐기고, 아름다운 음악도 듣고, 흥미로운 드라마도 보고, 다양하고 즐거운 콘텐츠를 즐겨야 할 필요가 분명히 있습니다. 다만, 무엇이든 적당한 선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하지만 더미의 역설, 어디가 정확히 선인지 우리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도파민 뿜뿜 행동은 그 선을 어이없을 정도로 너무 간단하고 쉽게 넘어버리게 만듭니다.


단순한 예로, 6시간 책 읽는 건 어려워도 6시간 누워서 인스타 릴스 혹은 유튜브 영상을 보는 건 쉽습니다.


"아... 도파민 디톡스 말하는 거지? 그게 말이 쉽지 그거 어떻게 하냐"


아닙니다. 도파민 디톡스하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당장 저도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말도 쉽고 행동도 생각보다 쉽습니다. SNS 만큼 중독성 있고, 게임처럼 스릴 넘치고, 드라마처럼 기대되는, 재미없는 일들이 있습니다.


심지어 여러 개 있습니다. 그러니 딱 하나만이라도 맘에 드는 걸로 고르시면 됩니다. 그리고 그것은 자연스레 자신의 개성이 됩니다. 랜덤으로 혹은 알고리즘이 추천해 주는 대로 살다가,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일이 뭔지, 자신의 취향이 뭔지, 내가 되고 싶은 나의 모습이 뭔지 스스로 정하는 겁니다. 아무리 대 AI 시대라도 해도, 자신이 누구인지까지 AI가 알려주는 건 좀 그렇지 않나요?


재미없는 삶은 자신에게 집중하는 삶입니다. 자신에게 집중해 봅시다. 자신에 대해 알아봅시다. 어디 한번 재미없게 살아봅시다.


재미없게 사는 첫번째 TIP


도파민 뿜뿜 행위를 조심하자!

대신 할 수 있는 재미있고 유익한 일들이 많다!

재미없는 삶은 자신에게 집중하는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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