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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맘 Dec 25. 2020

한 숨을 김장하다.

- 남편이 하는 김장은 다르다 -

남편이 드디어 주부가 되는가 보다. 

두레 생협에 주문한 배추, 갓, 쪽파, 마늘, 생강, 대파, 무를 보여주며 "내가 다 할 테니 당신은 쉬어" 자신 있게 이야기한다. "정말, 당신 혼자 다 할 수 있어?" 재차 물으면서도 속으로는 왜 하필이면 평일날 일을 벌이려고 하는지 도대체 이해가 가지 않아서 답답했다.


분명 나에게 새벽 5시 30분에 깨워달라고 했다. 그런데 방문 틈 사이로 찬바람이 코 밑으로 강하게 느껴졌다. 방문을 열고 가보니, 남편이 배추를 다듬고 있었다. 부산하다. 가재도구들이 늘려 있었다. 목장갑이며, 김장비닐 등 갖출 건 다 갖추어 놓고 시작하고 있었다. 배추 잎을 하나씩 떼어 내면서 "만지지 마, 어서 가서 자, 당신은 잠이 부족하잖아." 한사코 나를 방으로 다시 밀어 넣는다. 하지만 다시 방으로 들어가 이불을 덮다 말고 다시 나왔다. 분명히 배추가 수영복 차림이 될 게 뻔하다. 이파리를 너무 많이 떼어낸다. "이거 어떻게 할래요?" 하니 "응 버려야지", "아니, 왜 버려, 삶아서 냉동실에 넣었다가 국이나 조림에 넣으면 되는데.....", "아 그래?"


나도 모르게 한 숨이 나온다. 배추 4 망사서 실험 삼아해 본다고 하는데, 도무지 믿음이 안 생긴다. 하는 수없이 칼을 든다. 긴 칼 옆에 차고 시름하는 이순신 장군이 따로 없을 것 같다. 남편이 칼질해서 소금물에 넣으면 내가 다시 배추 사이사이 속대에 소금을 뿌린 후 김장비닐 안에 차곡차곡 넣기로 했다.


"소금물 제대로 맞추었어? 계란 좀 줘봐." 나의 말에 부리나케 계란을 가져다 소금물에 띄운다. 놀랍게도 삼분의 일만 뜬다. 비중을 제대로 맞추었다. 밤새 공부했나 보다. 배추속대 사이에 소금을 조금씩 뿌리고 있는데, "너무 넣는데, 좀 줄여"라며 상관이 부하에게 명령하듯 지시한다. "아니, 왜 이래야지 제대로 숨이 죽어"라고 선임이 이야기해도 한사코 자기 말을 따라야 한다며, 고집을 피운다. 하는 수 없이 소금을 진 손을 펴서 덜어낸 후 작게 쥐고 뿌린다. 소금물이 여기저기 튀어 바닥에 흥건하다. 남편이 걸레를 갖고 와서 닦는다. "4망이라도 해보니 작네, 다음에 좀 더 할까?"라는 남편에 말에 무 자르듯  "아니, 됐어. 우리는 4 망이면 충분해, 더 할 생각 하지 마. 절대로" 따끔하게 거절했다.


뒤돌아 서서 출근 준비를 하려다, 남편의 동작에 믿음이 안 가서 "쪽파 다듬고 출근할까?"라고 위로하듯 건넸다.

"아니, 집에 혼자 있으면 뭐해. 시간 많은데 내가 다 다듬어 놓을 께. 당신 다 퇴근하며 바로 양념장에 바르기만 하라고." 남편의 말을 듣는데 또 한숨이 나온다. 조금 전까지는 자기가 다하겠다면서, 배추 절이면서 벌써 슬그머니 나를 동참시키는 건 무슨 경우이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하는 수 없다. 오늘도 마무리는 내가 해야지. 출근부터 오늘 퇴근길에 김장하다 싸울 것 같다.


한편으로는 남편이 주부가 다 되어 가는 것 같다. 다음번에는 고추장, 된장도 만들어 먹자고 할 것 같다. 그러기 전에 빨리 직장에 다시 나가서 잔소리부터의 해방을 찾고 싶다. 직장에서 명퇴한 남편의 뒷모습에서 여자의 향기 나는 게 불편하기 시작했다. 대기업에서 명퇴한 후 남편은 1년을 집에서 살림하다, 도저히 살림은 자기 적성이 아니라며, 고군분투하더니 다음 해에 중소기업으로 옮겼다. 


남편은 쇼핑하다 1+1로 득템 했다고, 나에게 톡으로 실물사진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어떤 때는 옆 동네 마트에서 200원 더 사게 주고 사 왔다고 자신의 정보력과 발품 실력을 자랑하듯 늘어놓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잘했네"라고 짧게 이야기하면 "성의 없이 듣는다며, 자기는 하루 종일 누구랑 이야기할 상대가 없었는데, 당신이라도 들어주어야 하지 않느냐"며 푸념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뭔가 역할이 바뀐 것 같아서 나도 속으로 답답했다. 그런데 다시 출근하자마자, 남편은 그동안 보여주던 살림살이에 대한 애정을 일시에 거두고, 직장인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사람은 환경의 동물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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