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봄맘 Dec 28. 2020

9살 눈물 국밥

- 어린아이의 감성이 어른을 울릴 때가 있다. -

 

위로가 필요한 나날들.  

이맘때가 되면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다. 특히 국밥 집에서 따뜻한 훈김이 올라오는 국밥을 나란히 놓고 먹는 장면을 보게 되면 더 그렇다.


 40 중반의 나이로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엄마 혼자 가장이 되셨다. 혼자의 몸으로 4명을 건사하면서 갖은 고생 다하셨으나, 엄마의 바람과는 달리 큰 오빠는 늦은 나이에 큰 결정을 하고 자신의 길을 가겠다며 우리 곁을 떠났다. 아마 살아오신 날에 흘린 눈물보다 더 많은 눈물을 흘리셨다.


여러 가지 일로 상심이 컸는지, 저희 집으로 병원 진료차 오시게 되었다. 심장 부근에 문제가 생겨 병원 검진을 몇 차례 더 받아야 하기에, 여러 날을 저희 집에 머물게 되었다. 오래간만에 시간이 맞아 둘째 아들 녀석과 집 근처 합정역 부근에 있는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으로 산책 겸 구경할 겸 해서 가게 되었다. 그 날 구민 행사가 있어서 다양한 놀이 체험을 하게 되었다. 주변에는 주민들이 만든 ‘핸드메이드’ 제품을 파는 부스도 있었다. 2호는 할머니 손을 잡고 여기저기 둘러보고 방방이도 타고, 비눗방울도 만들어보기도 하는 등 신나게 놀았다. 시간이 한 참 지난 후,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주변 식당을 물색하던 중 따뜻한 국물 있는 음식이 드시고 싶다고 하여, ‘콩나물국밥’ 집으로 향하게 되었다.     


식당에 앉아 세 사람이 나란히 국밥을 시켜놓고 기다렸다. 먼저 선불로 국밥 값을 내야 한다는 말에, 9살 난 2 호녀석이 자신의 가방에서 돈을 꺼내면서 ‘할머니, 오늘 국밥은 제가 사드릴게요’라고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아니, 네가 무슨 돈이 있다고, 산다고 하니? 오늘 할미가 살 줄게. 오랜만에 왔는데, 할머니도 뭔가 해야지.”

그렇게 말해도 한사코 고개를 내저으며, “아니에요. 오늘은 제가 사드릴게요. 저 용돈 모아서 이렇게 돈이 있어요.”라며 지갑에서 돈을 꺼내 보이며 자신의 의지를 단호하게 드러내길래, 중간에 제가 “아니, 오늘은 엄마가 살 거야. 할머니도 안 되고, 너도 안 되고” 


제가 일어서려고 하는 순간 아들 녀석이 먼저 돈을 꺼내서 카운터로 가더니 만 원짜리 1장과 오천 원짜리 1장을 꺼내서 지불하고, 엄마를 오지 못하게 손사래를 쳤다. 제가 얼른 가서 그 돈을 집어넣고 카드를 내밀려고 하는 순간 “오늘 제가 산다고 약속했으니, 그냥 두세요”라는 말에 전 카드를 다시 지갑에 넣을 수밖에 없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엄마는 신기하면서도 대견해서인지, “아니, 어떻게 조그마한 녀석이 기특한 생각을 하니?”라며 연신 웃었다. 국밥이 나오고 몇 숟가락 드시더니 갑자기 “2호야, 오늘 국밥 할미는 절대 잊지 못할 것 같다. 사실 네 엄마랑 삼촌 그리고 이모는 할머니가 너무 힘들어서 한 번도 용돈을 준 적이 없어. 그래서 선물을 할 줄도 몰라. 용돈을 받으면 모아서 뭐라도 할 텐데. 그럴 여유가 없이 컸어. 그게 할미는....” 


그러고는 말을 잊지 못하고 울컥하셨다. 눈가에 눈물을 닦으면서, “할미는 지금도 그게 그렇게 미안하더라. 없어도 아주 적은 돈이라도 주고 스스로 뭔가 할 수 있도록 해주었어야 하는데, 그렇게 못한 것이 살아오면서 두고두고 마음에 걸렸어. 그런 게 왜 이리 걸리는지......,”라며 더 이상 말씀을 잊지 못하셨다.     


 엄마의 울컥하는 목소리에 먹던 숟가락을 놓고 나도 모르게 나오는 눈물을 애써 감추려고 먼 곳을 뚫어지게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그 사정을 누구보다도 알기에. 엄마로서는 최선을 다했지만, 부족한 구멍이 자꾸 생각나 가슴을 후비는 눈물을 흘리시는 게 안타까웠다. 

“오늘 국밥은 할머니가 다 먹을게. 우리 손주가 사주는 국밥인데, 오늘따라 참 따뜻하고 맛있네.”라며 손주 한 번 쳐다보고 국밥 드시고, 또 손주 한 번 쳐다보시고 국밥을 드셨다.     


그리고 그날 저녁도 드시지 않으셨다. 배가 고프지도 않고 든든하시다며, 흡족한 미소를 보였다. 그리고 건강검진을 다 하시고, 시골로 내려가셨다. 동네 아는 지인들에게 “여보게! 자네는 손주가 사준 국밥을 먹어본 적이 있는가? 나는 먹어봤네.”라며 자랑을 하셨다고 한다. 지금도 전화를 하시면 그때 9살 난 손주 녀석이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는지 신기하다며, 말씀하시곤 한다. 그리고 다시 그 국밥집에 가서 할머니가 이 맘 때 와서 사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몇일만에 가본  그 국밥 집은 문을 닫고 없다. 하지만 그때 그 기억은 아마 엄마도 저에게도 평생 남은 추억의 한 장면으로 가슴에 살아 있을 것 같다.    

      


여기에 글을 올리려고 쓴 것을 보더니, 엄마 글 속에서 할머니가 울먹하시는 대목을 읽고 자기도 눈물이 났다며,

엄마도 쓰면서 울었냐고 묻는다. 글을 읽고 공감하며 나에게 되묻는 아이의 표정을 보고 정말 뭐라고 할 수 없는

만감이 교차했다. 이 아이를 잘 키우고 싶은 욕심이 생겨나는 순간이었다. 


2호가 덧붙인 말: 안녕하세요 저는 할머니께 국밥을 산 아이입니다.

제가 엄마가 쓰신 이야기를 보다가 제가 울었어요. 저는 할머니께 사드리고 싶었어요. 

할머니가 안 된다고 해도, 저는 하고 싶었어요. 국밥집이 문을 닫는 것이 아쉬웠어요. 

마지막 말까지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한 숨을 김장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