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 생존-
몇 달 전 슬기로운 낭독 생활이라는 시민참여형 프로그램에 참여할 때, 옆에서 지켜보던 2호가 나에게 던진 말이 자극이 되었다. "엄마가 적어 놓은 닭 울음소리 지문이 너무 엉망이라 읽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제가 어디를 봐야 할지 몰라 놓쳐잖아요. 글씨 연습 좀 하셔야겠어요."
그렇다. 내가 봐도 컴퓨터 자판에 익숙하다 보니, 손으로 쓰는 감각을 잃어버린 것 같다. 볼펜을 잡으려면 손가락 근육 움직임에 힘이 들어간다. 몇 줄 쓰다 보면 위장에서 거북함이 올라온다. 그리고 머리에서 "컴퓨터로 치면 금방 끝날 일을 왜 어렵게 하니?"라는 물음이 되돌아온다. 하지만 이 습관을 고치지 않으면 평생 글씨를 못 쓰는 사람으로 남겠구나 하는 두려움이 생겼다.
글씨를 잘 쓰는 것은 "남을 위한 배려"라고 한 어느 분의 말씀이 생각난다. 사실 남편하고 데이트하면서 놀란 부분이 글씨였다. 생긴 것은 기골이 장대해서 지나가는 조폭도 무서워하지 않을 정도라 글씨도 큼직하고 날렵할 줄 알았다. 차 앞 서랍에서 발견한 메모지의 글씨를 보고 "어머, 글씨가 너무 이쁘네요. 여자분이 쓴 글씨체인데....."라고 했을 때, 대답을 머뭇거렸다. 남편 글씨였다. 공포영화를 보다가 놀라 치킨 조각을 떨어뜨릴 만큼 이쁜 글씨였다. 남편에게 후한 점수를 주지 않을 수 없었다. 남편에게 묻지 않아도 여성성이 드러나는 대목이었다. 역시나 살림을 잘했다. 꼼꼼하게 하는 통에 숨이 막힐 정도이니깐 말이다.
최근에 '아티스트 웨이'라는 책을 통해 모닝 페이지 글쓰기를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펜 하나를 들고 3페이지를 무조건 써내려 가는 것이다. 손목과 손이 잘 움직이지 않아 '그만 쓰자'라는 생각을 반복했다. 그 고비를 넘기니 손목 움직임이 자연스러워지기 시작하면서 내가 써놓고도 모르는 지경은 면하게 되었다.
2021년 올해부터 시작할 새로운 습관 하나가 필사입니다. 손으로 직접 글을 써내려 가는 것이다. 우리 대뇌피질에서 손 근육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다. 손을 사용해서 필사하는 것은 두뇌 계발에도 좋다는 의미이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서예를 하든, 캘리그래피를 하든, 손으로 직접 글을 쓰는 시간을 함께 가져볼 것을 권하고 싶다.
그리고 이성의 상대를 볼 때, 외모만 보지 말고 목소리와 글씨까지 고려한 다면 당신에게 맞는 상대를 고를 확률이 높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한 때 불명을 받기 위해 "반야심경" 높고 절을 하면서 한 글자씩 써 내려 간 적이 있다. 그때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어야 그 글자를 채울 수 있었다. 절을 하면서 하다 보니 어느 순간 쓰는 동작과 호흡이 일치되는 기쁨도 맛보았다. 이제 그 기쁨을 가득 채워 남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가지고 싶다.
"신은 우리를 죽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안의 새로운 삶을 일깨우기 위해 절망을 보낸 것이다"라고 하고, "괴로워할 수 있다는 것은 삶을 완전하게 산다는 것"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