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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dealist Jan 17. 2021

<자두>

이주혜, 창비, 2020

156페이지의 작은 양장본 소설, <자두>

잠깐이었지만 주인공의 감정에 이입되어 함께 담배를 피워 물었고, 함께 울면서 걸었다.


"어르신, 죽으려거든 날 좋을 때 죽어요. 이런 염천에는 죽지 말아요. 이런 날 죽으면 자식들 고생합니다. 부디 볕도 좋고 바람도 좋은 날 죽어요. 그래야 자식들이 덜 서럽습니다. 알았지요? 꼭 좋은 날에 죽어요. 우리 어머니처럼 염천에 죽어 자식 가슴에 한을 심지 말아요."


영옥씨는 이렇게 말했다.

영옥씨의 엄마가 두꺼운 솜이불을 덮은 채로 염천에 간밤에 조용히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그날은 방 안 가득 햇살이 쏟아져 들어온 것도 모르고 늦잠을 잤어요. 그만 일어나라고 깨워주는 사람 하나 없어도 늦잠을 자본 적이 없었는데, 간밤은 웬일인지 한번도 깨지 않고 푹 잤어요. 오랜만에 머리도 맑고 몸도 가뿐했어요. 한숨 잘 잤다, 생각했는데  시계를 보고 깜짝 놀랐어요. 벌써 지각이었어요. 화가 났어요. 왜 나는 그만 나고 일어나라고, 이러다 지각하겠다고, 깨워주는 사람이 없는 걸까요? 눈물이 났어요. 어머니를 노려봤어요. 한참 화풀이로 어머니를 노려보다 서서히 깨달았어요. 어머니 쪽에서 풍겨오는 고약한 냄새가 한번도 맡지 못한 종류로 바뀌어 있다는 것을. 더럭 겁이 났지만 그게 어떤 냄새인지 알 것 같았어요. 냄새가 또 다른 기억을 흔들어 깨웠어요. 간밤 어머니가 내 이름을 부르는 걸 들었다고. 혼곤한 꿈속에서 들었다고 생각했지만, 꿈이 아니었다고. 나는 어머니의 대꾸에 부름도 하지 못하고 영영 어머니를 떠나 보냈다고. 마지막 인사도 건네지 못했다고. 나는 그날 학교에 가지 않고 먹지도 않고 울지도 않고 점점 참혹해지는 어머니 냄새를 맡으며 날이 저물 때까지 방 안에 앉아 있었어요. 그러니 어르신, 염천에는 죽지 말아요. 한밤 중에는 죽지 말아요. 좋은 날에 죽어요. 밝은 날에 죽어요. 자식이 보는 앞에서 죽어요. 아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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