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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성장 Aug 21. 2021

버스회사

여상 시절, 성적은 괜찮았지만, 외모 때문에 줄줄이 면접을 낙방했던 나는, 자존감이 바닥이었다. 거의 모든 대기업은 1차로 내신과 일반상식, 그리고  영어로 필기시험을 봤고, 2차가 면접이었다. 1차는 늘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했지만, 2차 면접에선 그렇지 못했다. 못생긴 얼굴 때문일까? 아님, 작은 키 때문일까? 아니면 뚱뚱해서일까? 시간을 지나며 마음이 쫄아들었던 나는, 급기야 대기업 시험을 포기했다. 그리고 무조건 빨리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동네 버스에 붙어있던 입금원 모집 광고를 보고 무작정 찾아갔다.


고2 때였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우산마저 소용이 없었던 날이 있었다. 친구들은 먼저 가며 나에게 미안하다 연신 인사를 하고 갔다.  친구들이 버스를 타고 간지 꽤 시간이 흘렀다. 온몸은 비로 젖었고, 신발 안으로 들어온 빗물 때문에 발가락이 감각이 없을 정도로 시렸다. 강풍은 점점 세져 나를 패대 기치는 것 같았다. 목도리를 아무리 감싸도, 바람은 목 안으로 파고들어 왔다. 우산은 쓰고 있었지만, 무용지물이었다. 기다린 시간이 한 시간을 넘어가고 있었고,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주먹을 불끈 쥐고 있었다.  눈에서는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억울했다.


내가 돈이 없는 것도 서러웠고, 비에 홀딱 젖어 버스를 기다리는 것도, 다리가 아픈 것도 모두가 다 짜증이 났다. 회수권 한 장에 180원. '나는 180원이 없어서 한 시간도 넘게 이런 날씨에 이러고 있구나'생각을 하니, 말할 수 없는 분노가 주체하지 못할 만큼 올라왔다. 미친년처럼 화가 났다. 울어도 울어도 눈물이 계속 났다. 주먹을 불끈 쥐고, 오늘의 일을 절대 잊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또 결심했다. '내가 어른이 되면 꼭  나 하나는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되자' 마음속으로 소리치고 소리쳤다.


버스회사에서 사람이 급했는지, 면접 간 날. 바로 다음날부터 출근하라 했다. 입금원이 뭔지도 몰랐는데 가서 보니, 기사분들이 승객에게 받아온 토큰, 회수권, 동전과 지폐를 분리해서 얼마인지 확인하고 정리해서 경리과에 보내주는 일이었다. 회수권에 깊은 한? 이 있는 나에게 버스회사라니.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게 사람 인생이라더니. 아이러니했다. 평생 만져볼 토큰과 회수권. 그리고 수많은 동전과 지폐가 내 손을 통해서 세어지고 정리됐다. 은행에도 없는 동전 분리기. 동전 자루 등 신기한 기계들도 그곳에서 처음 봤다. 


격일제 24시간 근무로 하루는 회사에서 자고, 하루는 집에서 잤다. 업무를 2인 1조로 하는데, 그때 같이 일했던 한 살 터울 언니와 아직까지 만남을 유지하고 있다. 처음 만났을 때의 어색함은 사라지고, 같이 자고 먹고 일하면서 정이 많이 들었다. 지금도 다른 형제가 없는 나에게 친언니 같은 존재로 내 곁에 남아있다.


첫 월급은 오십만 원 남짓한 금액이었다. 내가 사회생활로 처음 번 돈을, 월급봉투 그대로  엄마께 전달한 감격이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드디어 내가 돈을 벌어서 엄마에게 드리는구나. 이제야 내가 사람 구실을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손으로 돈을 번다는 것. 참 중요한 경험이었다. 


어릴 적부터 들었던, 내가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것에 대한 첫 실현을 이뤘던 회사. 동네에 가깝게 있던 회사는 없어졌지만, 건물은 남아있다. 그곳을 지날 때마다, 열아홉 살의 내가 힘든 일을 해냈다는 것이 너무 자랑스럽다. 나의 직장 생활 25년 중  첫 1년 반. 그곳은 나에게 첫 도전이었고 추억이자 현실로도 보이는 감개무량한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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