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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성장 Oct 01. 2024

엄마가 사라지다/ 02 의료기기 체험장

3년 전. 엄마는 내가 미처 출근도 하기 전에 치료하러 간다며 아침 일찍 서둘러 나갔습니다. 십여 분 후 엄마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또 무슨 잔소리를 하시려나 무심코 받은 전화에 낯선 남자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여기 약수사거리인데요. 할머니가 버스에 치였어요. 저는 경찰이고요. 지금 오실 수 있나요? 119가 출동해서 가까운 병원으로 모시고 가려는데 어디 병원으로 가면 되나요?” 

순간 눈앞이 하얘지고 심장이 떨려서 입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일단 가까운 S 대학병원에서 만나기로 하고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시간이 멈춘 듯이 귀가 멍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뇌가 정지한 것만 같았습니다.     

엄마의 의료기기 체험장(약장수) 사랑은 삼십 년 정도 되었습니다. 공짜로 휴지와 바가지 그리고 설탕 등 값싼 물건을 받아오고 고가의 물건을 사 오곤 했습니다. 온갖 애교를 부리고 ‘엄마’라고 부르며 친자식보다 더 비위를 맞춰주는 사람들을 저는 이길 수가 없었지요. 엄마는 수백만 원의 고가의 전동침대와 알칼리 이온정수기, 그리고 전극 치료기 2대를 샀습니다. 돈이 없는 엄마와 동네 할머니들은 48개월 할부, 어쩌면 그 이상으로 긴 시간을 돈을 갚아나갔습니다. 할부가 끝나면 또 다른 제품을 구매했고 할부금을 내는 와중에도 적외선 팬티, 무좀이 낫는 양말, 원적외선이 나온다는 프라이팬, 집안의 풍수를 좋게 해준다는 금박 거북이까지 그곳에서 파는 온갖 제품을 샀습니다. ‘내가 아픈데 자식들이 무슨 소용인가? 내가 건강한 것이 자식을 위한 길이다!’라고 주장하는 약장수들의 사탕발림을 넘어가 가진 쌈짓돈을 탈탈 털렸습니다. 나라에서 노인들에게 지급되는 노령연금을 목표로 그들은 어떻게든 싹싹 긁어갈 궁리만 하는듯했습니다. 그런 이유로 자식들은 경찰서에 신고하기도 했고 부모님과 싸우기도 했지만, 번번이 건강을 빙자한 그들의 유혹에 이미 빠져 있는 부모님을 이겨내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저 또한 그중 한 명이었습니다. 경찰서에서는 허가받은 곳이라 따로 단속이나 조치를 할 수 없다는 말만 들었을 뿐입니다. 두 손 두 발을 다 들어버린 저는, 어쩔 수 없다면 ‘플라세보 효과라도 있겠지……’하고 마음 편할 엄마를 생각하며 져드렸습니다.      

그날 역시 엄마는 의료기기 체험장에서 쿠폰을 준다고 부리나케 가던 길이었습니다. 건널목에서 우회전하던 버스가 엄마를 미처 발견하지 못해 그대로 받아버린 것이었습니다. 응급실에 도착했을 때 엄마는 많이 놀란 상태였습니다.

“엄마! 괜찮아? 많이 다쳤어?”

“몸을 움직일 수가 없다. 아이고, 썩을 놈의 버스가 가만히 있다가 내가 건너려니까 덮쳤어!”

목소리가 제법 카랑카랑한 엄마의 목소리를 들으니 안심되었습니다. 응급실까지 오면서 다시는 엄마를 보지 못할까 기절할 지경이었습니다. 

응급실에선 기본 엑스레이 검사와 CT 검사를 마친 후, 허리가 골절된 것 말고는 크게 이상은 없다고 했습니다. 의사는 너무 고령이시고 골다공증이 있어서 수술보다 시술하는 것이 낫겠다고 말했습니다. 가장 빠른 시술 날짜를 잡고 입원 절차를 밟았습니다. 입원하고 누워있는 엄마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너무 속상해서 나도 모르게 잔소리가 나왔습니다. 

“엄마! 버스처럼 큰 차가 오면 차를 먼저 보내고 건너야지. 약장수한테 가는 게 뭐가 급하다고 이 사달을 내!!!”      

그 버스 사고 이후, 엄마의 거동은 크게 달라졌습니다. 부러진 허리 골절 때문에 더 혼자의 힘으로 걷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집에는 요양보호사가 방문하고, 외출할 때는 늘 보조기구와 지팡이를 사용해야 하고 혼자는 자유로이 밖에 다니지 못합니다. 운동을 못 하니 근력이 빠져 몸이 많이 쇠약해졌습니다. 약해진 몸 때문에 입맛이 떨어져서 밥이 모래알 같다며 한동안 식사도 못 했습니다. 밥 대신 유동식을 드셨고 기저질환이 더욱 나빠져 불안하기도 했지요. 어떻게든 먹어야 산다며 억지로 식사를 도왔지만, 한동안 괜찮다가 또다시 반복하기를 여러 번이었습니다. 그래도 엄마는 하루하루 잘 이겨내고 있습니다.     

엄마는 이제 의료기기 체험장을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너무 원망스럽고 괘씸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더는 가지 않게 되어서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종종 엄마는 하루가 너무 길다고 말합니다. 친구가 없으니 말할 사람도 없고, 온종일 텔레비전 보는 것도, 잠을 자는 것도, 혼자 뭘 하는 것도 재미가 없다고 하십니다. 엄마는 가끔 의료기기 체험장에 가보고 싶어 합니다. 사귀었던 친구들은 잘 있는지, 그동안 재미있는 일들은 없었는지, 그 사이 하늘로 간 친구가 있는지 등등 궁금한 게 많습니다. 엄마에게 의료기기 체험장은 물건만을 파는 곳은 아니었나 봅니다. 무료함과 외로움을 달래고, 친구를 사귀고, 모여서 점심 도시락도 같이 먹고 재미나는 시간을 보낸 학교처럼 기억하고 있습니다. 학교에 다녀보지 못한 엄마라 더더욱이 그런 생활이 그리웠겠지요. 

한집에 같이 살면서도 먹고 살기에 치중한다며 엄마에게 너무 무심했던 것을, 반성합니다. 평일에는 회사로 달아나 버리고 주말에는 피곤하다며 엄마와의 시간에 소홀했습니다. 남편은 남편이라 챙기고, 아이는 아이라 챙기고, 엄마는 알아서 잘하시니까……. 그렇게 넘어갔습니다. 사랑은 내리사랑이라고 받은 만큼도 못 해주면서 큰소리만 치는 못난 딸이라 죄송스럽습니다.

이런 형편없는 자식보다 챙겨주고 재미있게 해주는 약장수를 좋아하는 것이, 엄마의 상황에서는 어쩌면 당연한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엄마의 사고가 약장수 때문에 생긴 일이라고 원망만 했던 것이 조금은 미안해지기도 합니다. 

엄마, 의료기기 체험장에 가셔도 잔소리 안 할 거니까 얼른 건강해져서 놀러 가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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