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로성장 Oct 01. 2024

엄마가 사라지다 / 04 오해는 먼지처럼 쌓인다

“엄마,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할게! 제발 좀 내가 하는 일에 자꾸 뭐라고 하지 마! 엄마는 엄마거나 신경 써!”

하는 일마다 일일이 참견하고 감시하는 엄마가 버겁게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엄마와 나는 사십사 년 차이가 납니다. 십 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것을 네 번이나 하고 사 년을 더한, 그 시간의 차이는 생각보다 엄청납니다. 엄마와의 대화가 답답하게 느껴지는 것은, 아마도 그 때문일 것입니다. 

TV에서 프라이팬 코팅이 벗겨지면 나쁜 성분이 나와 건강에 크게 해가 된다는 것을 실험으로 보았습니다. 벗겨진 걸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사용했으나 막상 수치로 보니 당장에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가족이 먹는 음식에 발암물질이라니. 건강 하려고 먹는 음식이 주방 도구 때문에 몸에 악영향을 준다고 생각하니 아찔했습니다. 흠이 있는 것은 버리려고 재활용 봉투에 넣어두고 새 프라이팬을 사서 꺼내 놓았습니다.

“아니, 멀쩡한 프라이팬을 왜 버려! 버리고 사는 게 취미냐? 우리 집은 돈이 많아서 탈이야. 내가 다 쓸 거니 버리지 마!”

여러 개의 항아리, 흙만 담긴 화분, 엄마의 찢어진 러닝셔츠는 걸레로 사용됩니다. 오래된 것으로 가득한 우리 집. 엄마는 아무것도 버리지 못하게 합니다. 

음식을 만들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선하지 못한 재료가 아까워서 버리지 못하고 더 상하기 전에 요리합니다. 나라면 그냥 버리고 말았을. 손녀딸이 남긴 밥을 보며 ‘먹을 것 버리면 벌 받는다!’ 꼭 한소리씩 합니다. 전쟁통에 못 먹고 못 입어 한 맺혔던 기억을 버리지 못한 이유겠지요.

수납 전문가들은 일 년 안에 입지 않은 옷과 신발들은 앞으로도 사용하지 않을 가망성이 많다고 합니다. 실제로도 그렇습니다. 사용하지 않는 물건들이 집안에 이리저리 처박혀 자리만 차지하고 있습니다. 보는 눈이 복잡할 정도입니다. 큰맘 먹고 딸과 옷과 신발 정리를 했습니다. 50리터짜리 재활용 봉투가 다섯 봉지나 나왔지요. 나는 엄마가 보고 또 화를 낼까, 보지 않는 틈을 타서 몰래 버리려 완전범죄(?)를 계획했습니다. 엄마가 주무시면 밖에 내다 버리려고 봉투를 베란다에 잠시 숨겨두었지요.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발각되었습니다. 

“버리고 또 살려고 이렇게나 많이 쌓아놨어? 내가 모를 줄 알고? 네가 언제까지 돈을 펑펑 쓰고 살성싶냐! 한 푼이라도 아껴 살아야지! 정신을 못 차리고!”

“엄마! 나도 나이 먹을 만큼 먹었고, 결혼하고 자식 낳고 내 살림을 하는 건데. 뭐가 그렇게 못마땅한지, 못 살겠네!”     

말끝마다 나를 위해서 하는 말이라고 하지만, 좋은 말도 여러 번 들으면 지겹다고. 싫은 소리는 더 듣기 싫어 미칠 지경입니다. 참다 참다 한번 폭발하면 멈출 수가 없습니다. 있는 대로 한바탕 성질을 내고 나면 엄마는 마음이 다쳐 얼마 동안 방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한참 후,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진 엄마가 나와 울분을 토합니다.

“내가 너 잘되라고 하는 소리지. 잘못되라고 하는 소리냐?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너 나한테 이렇게 하면 벌 받아. 너는 머리카락으로 짚신을 만들어줘도 내 공을 다 못 갚아. 너 아기 때, 병신처럼 다리 휘었다고 아무도 안 키운대서 내가 너를 데려다 키운 건데. 너는 나 아니었으면 벌써 죽었어! 혼자 잘나서 큰 줄 알고.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라더니.”

잦아지는 감정싸움으로 서운한 엄마는 내 가장 아픈 곳을 찌릅니다. 처음에 그 말을 들었을 때는 너무 아파서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딸이라고 하면서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지 세상 참 모질다고 느껴졌습니다. 한 식구로 산 세월이 몇 년인데 저렇게 말하다니!     

세 살 때 엄마를 만났습니다. 너무 가난해서 엄마는 시장에서 떨어진 배춧잎을 얻어다 먹고, 동네 이웃에게 옷이며 신발이며 속옷까지 나에게 물려 입혔습니다. 초등학교 때 알록달록 예쁜 필통을 갖지 못했고, 돈이 없어 친구들이 간식 먹을 땐 옆에서 구경만 해야 했지요. 친구 따라갔던 피아노학원과 태권도 학원에 한 달만 보내 달라 빌었던 소원은 끝끝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가족들과 성씨가 다르다는 이유로, 동네 아이들의 놀림거리로 시작된 고아라는 딱지는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따라다녔습니다. 엄마가 식모살이로 사는 할아버지와 같이 산 24년 동안은 인간으로 인정받지 못해 내내 죽고 싶었습니다. 고백하건대, 차마 입 밖으론 꺼내지 못한 말들로 나를 수백 번, 수천 번 찔렀습니다. 이렇게 가난하게 키울 바엔 나를 왜 데려왔냐고. 개처럼 밥 주고 잠만 재워주면 자식 키우는 거냐며 미워하고 원망한 날이 많았습니다. 사춘기가 왔을 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버려진 나와 불공평한 세상을 비관하며 우울감에 깊게 빠져 살았습니다. 스트레스로 안면 마비가 왔고, 감정적으로 주체하지 못해 매일 밤 눈물 쏟으며 한참을 지냈습니다. 

시간이 흘러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보니, 철없던 내가 보였습니다. 지금 내 나이의 엄마가 세 살 된 아이를 자식으로 맞이한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라는 것을. 혼자서도 힘든 가난 속에 입을 하나 더 들이는 일은 단연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압니다. 그런 가난 속에서 엄마가 최선을 다했다는 것은 나 역시 부정할 수는 없는 사실입니다. 식모살이하며 시간제 파출부도 하고 지우개 포장, 귀걸이 포장, 붕어빵 봉투 붙이기 등등 부업 해서 번 돈은 모두 나를 위해 쓰였던 게 맞습니다.

‘나이가 들면 아이가 된다.’ 했던가요? 예전 같으면 하지 않았을 서운한 말들도 하십니다. 당신을 인정하지 않는 듯한 나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입니다. 하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속상한 것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인간극장>에서 백 세 할머니가 일흔 아들을 걱정하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나이가 몇 살이든 자식은 자식이고 여전히 걱정되는 존재”라는 할머니의 말이 기억납니다. 엄마도 같은 마음이겠지요. 아흔이 넘어서도 내 걱정뿐입니다. 돈 없고 가난해서 모질었던 세월의 경험을 나만은 겪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겠지요. 당신 없이도 잘 살 수 있을까 늘 염려하는 마음을 어렴풋이나마 생각해봅니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엄마의 잔소리가 전과는 다르게 들립니다.

차 조심해라, 길 조심해라, 일찍 들어오라, 밥 챙겨 먹어라, 건강 신경 써라, 돈 아껴 써라….

‘나는 아직도, 네 나이가 몇이든, 너를 사랑한다!’      

이전 03화 엄마가 사라지다 / 03 죽어도 집에서 죽겠다는 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