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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성장 Oct 01. 2024

엄마가 사라지다 / 03 죽어도 집에서 죽겠다는 말

지은 지 이십 년이 넘은 낡은 집에서 살고 있습니다. 담장에는 금이 가고, 화장실 천장에서 물이 새고, 문틈으로는 바람이 들어옵니다. 웃풍이 세어서 영하의 날씨에는 방에서도 잠바를 입고 잡니다. 몇 해 전, 엄마한테 이사 가자고 졸랐습니다.

“나는 이 집에서 죽어서 나갈 거다. 이사 안 간다!”

답답했습니다. 다 큰딸이 하자는 대로 따라도 되지 않을까 싶었지요. 엄마는 멀쩡한 집을 두고 왜 이사를 한다고 하냐, 내가 익숙지 않아서 길을 잃으면 어쩌냐, 이제 몸이 힘들어서 이사 못 간다 등등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걱정했습니다. 예민한 성격에 병나지 않을까 이사의 생각은 접었습니다. 같은 이유로, 엄마가 반대하는 일은 뭐가 됐든 굳이 하려 들지 않습니다. 삶의 끝에 당신이 좋아하는 ‘집’을 고집하는 엄마입니다. 계속 불화 일으키며 결국 이사 갈 수도 있는 문제겠지만, 그렇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담장에 페인트칠하고, 천장 공사도 하고, 문틈에 바람막이라도 붙여야겠습니다. 

작년 말, 이층집에 새로운 이웃이 이사를 왔습니다. 엄마와 다섯 살 정도 차이 나는 비슷한 연배의 할머니가 계셨지요. 두 분은 같은 건물에 산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급속도로 가까워졌습니다. 두 분이 나란히 보행기를 끌고 한의원도 가고 동네 놀이터에도 산책하러 갔습니다. 엄마가 입맛이 없어 밥을 못 먹겠다고 했을 때, 2층 할머니는 반찬을 가져다주기도 했습니다.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이 마음을 더 잘 안다고 할머니와 엄마는 마음이 통했습니다. 서로 적적한 마음이었는데 가까운 곳에 친구가 생기니 너무 좋다고 하십니다. 무엇보다 두 분 모두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 힘들었는데, 같이 이야기도 나누고 차도 마시고 하니 즐겁다고 하십니다. 다행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이사했었더라면, 엄마는 2층 할머니를 만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엄마는 신장이 좋지 않습니다. 피곤하거나 몸 상태가 좋지 않으면 다리에 쥐가 나고 발이 퉁퉁 붓습니다. 가끔 엄마의 다리를 보고 너무 무서워 병원에 입원하자고 얘기해도 절대 안 간다고 하십니다. 

“나는 죽어도 집에서 죽을 거다!”

보통 아파서는 절대 병원에 가지 않는 엄마입니다. 해가 바뀌어 아흔한 살이 되었습니다. 이 나이에는 몸뚱이가 여기저기 아픈 것이 당연한 일이라며 병원에 가지 않으려 합니다. 검사라도 받아보자면 모르고 죽는 게 낫다며 손사래를 칩니다. 

잠을 자다 다리에 쥐가 나서 띵똥이(엄마 방 머리맡에 초인종을 설치했습니다.)를 누르는 날에는 밤잠을 설칩니다. 발에서 시작한 뒤틀림은 허벅지까지 올라가 너무나 고통스러워합니다. 파스를 가져가 허벅지와 다리에 덕지덕지 붙이고 주물러 드립니다. 한 참 실랑이 끝에 쥐가 멈추면 엄마의 넋두리가 시작되지요. “왜 이리 사람 힘들게 하는지. 이렇게 아픈 바엔 빨리 죽는 게 낫겠다.”

“그렇게 아프면 병원을 가봐야지. 엄마는 왜 자꾸 병원에 안 가려고 해?”

엄마가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큰 병이 생기기 전에 빨리 손을 써서 나을 생각을 해야지, 속수무책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자꾸 집에서 죽는다고만 하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엄마의 말이 무섭고 화나기만 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엄마가 끝내 병원에 가지 않으려는 이유는 혹여나 큰 병이 생겨 다시는 집에 오지 못할 상황이 생길까 염려하는 마음에서 생긴 것이었습니다. 엄마에게는 집이 어떤 의미인지 나는 알 길이 없습니다.      

엄마가 늘 하던 말이 있었습니다. 

나는 죽어도 집에서 죽고 싶다.

내가 아파도 병원에서 누워있다가 죽고 싶지 않으니 입원시키지 마라.

연명치료는 하지 마라.

남은 시간을 병원에서 약에 의지한 채 식구들도 못 보고 낯선 병원에서 지낼 생각을 하면 아찔하다고 했습니다. 조금 더 살기 위해 약으로 연명해서 며칠이고 몇 달이고 살면 뭐 하냐고요. 조금이라도 내가 살던 집, 익숙한 환경에서 마지막을 보내고 싶다고 합니다. 그렇게 듣기 싫던 ‘집에서 죽겠다’라는 말이 어느 정도 공감되었습니다. 

오십을 바라보는 내 나이. 나 역시 엄마의 길을 따라가게 갈 것입니다. 어쩌면 엄마 나이가 되기도 전에 비슷한 생각을 할지 모를 일입니다. 사람들 말처럼 오는 데는 순서가 있어도 가는 데는 순서가 없으니 말이지요. 인간은 언젠가는 죽고 죽음은 우리 모두에게 공평하게 남아있는 숙제입니다. 죽음은 나와 상관없는 먼 이야기였다가 또 어느새 제일 가깝게 있는 동전의 앞뒷면 같습니다. 영원히 살 것처럼, 사소한 일에도 아등바등하고 살아가니 말입니다. 죽음 앞에 무엇이 중요한 일일까요? 엄마의 나이는 죽음의 최전방에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집에서 사람이 사망하게 되면 119와 경찰관의 입회하에 사인을 확인합니다. 경찰의 확인 절차를 거쳐 장례를 진행할 수 있게 됩니다. 일본에는 간병보험(개호보험)이 있습니다. 요양보호사, 간호사의 가정 방문 서비스를 포함하여 통원·입원 서비스를 포괄하여 제공합니다. 노인이 본인 집에서 마지막을 준비할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줍니다. 집에서 필요한 요양을 요양보호사가, 의료적 돌봄을 간호사와 의사가 방문합니다. 방문 서비스를 신청하면, 집에서 죽음을 맞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합니다. 주치의가 사망진단을 내리고, 이후 장례 절차가 진행됩니다. 우리도 노인장기요양보험이 있지만, 제공되는 서비스에는 제한적입니다. 우리나라는 시설에 입소하여 마지막을 여생을 보내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개인적 생각으로, 자식들의 요양원·요양병원의 입원 권유에 노인들이 버려졌다고 생각되는 이유가 그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리도 고령화의 시대에 맞춰 폭넓은 제도들이 마련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을 가져봅니다.     

집에서 죽겠다는 엄마의 말이 무척이나 듣기 싫었습니다. 죽음을 되도록 멀리 두고 싶은 마음에 깊게 생각하지 않고 왜 그런 소리를 하시나 핀잔을 주었습니다.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조금씩이나마 생각해보려 합니다. 두렵다고 계속 미루지 않으려 합니다. 엄마가 하는 마음의 준비를 이제는, 나도 천천히 따라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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