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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성장 Oct 01. 2024

우리 엄마는요 / 02 투박한 말투 사이에

“어디로 내빼고 아직도 안 들어와!”

퇴근 후, 한 시간 이내에 집에 도착하지 않으면 어김없이 전화가 옵니다. 가끔 일이 늦게 끝나거나 러시아워에 걸려 늦어질 때가 종종 있습니다. 속사정도 모른 체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엄마의 높은 억양이 나를 짜증 나게 합니다. 버스 안에서는 다른 사람들을 의식하느라 큰소리로 대답하지 못하고 조용히 통화해야 하기에 속에 불이 납니다. 나는 엄마의 급한 성격을 닮았습니다.

엄마는 전라도 사투리를 씁니다. 평소에도 높은 목소리로 빠르게 말해서 그냥 말을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욕처럼 들리는 말투입니다. 급한 마음과 큰 목소리 때문인지 사람들은 엄마와 나의 대화를 늘 싸우는 거로 압니다.

“시간이 몇 시인데 이제 와? 뭐 하느라 이렇게 늦어? 제 어미 밥줄 생각도 안 하고! ”

현관문을 열고 신발을 벗는 사이. 가방도 내려놓지 못하고 식탁에 서서 엄마에게 말대꾸부터 합니다.

“회사에서 늦게 끝났어! 그리고 지금 차가 얼마나 막히는 줄 알아? 엄마는 집에만 있으니까 뭘 모르지!”     

삼시 세끼 꼬박 먹는 밥. 그 중, 한 끼만이라도 빵이나 면으로 때우고 싶습니다. 주전부리를 잘하는 나와 딸을 엄마는 못마땅해하십니다. 간식과 음료를 자주 먹는 편이라 배가 자주 아프긴 합니다. 

“그런 거 먹으면, 건강에 해로 와. 그러니까 맨날 아프지! 나처럼 딱 세끼 밥만 먹어!”

사람이 밥만 먹고 삽니까? 건강에 좋지 않은 것을 알면서도 먹고 싶으면 먹어야지요. 나름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고 신나있는데 잔소리하는 엄마를 보면 기분이 상합니다.     

직장생활을 오래 한 나는 살림하는 법을 잘 모릅니다. 그나마 밥은 밥통에 쌀과 물을 넣으면 제법 간단하게 할 수 있지만, 반찬과 국은 다릅니다. 먹을 줄만 알지, 잘하지 못합니다. 간혹 시금치나물과 북엇국을 끓여본 것이, 전부입니다. 엄마는 요리도 자꾸 해봐야 실력이 늘어난다고 해 보라 합니다. 못하는 실력에 인터넷을 찾아보기도 하고 요리책을 뒤적이면서 나름대로 열심히 만들어 봅니다. 

늘 입맛이 없다고 말하는 아흔한 살의 엄마가 숟가락을 듭니다. 긴장됩니다. 한 숟갈 뜨더니 내가 만든 음식을 다시는 먹지 않습니다. 화가 납니다.

“엄마! 내가 음식을 만들었으면 맛있다던가 그래도 대충 잘 만들었다던가 뭐라고 말을 해줘야지. 먹지도 않을 거면서 뭐 하러 만들라고 해. 내가 그러니까 요리 안 하려고 하는 거야!”

대충 맛있다고 한마디 해주면 좋을 텐데, ‘절대로’ 마음에 없는 소리는 못 하는 사람입니다.

엄마는 전라도 출신이라 요리를 잘합니다. 자신의 엄마 음식은 모두 다 맛있다고 하지만, 우리 엄마가 만든 김치나 반찬을 맛이 없다고 했던 사람은 아직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김치나 깍두기, 밑반찬을 먹어보고 조금 싸달라거나 맛있다고 했던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지요. 엄마의 요리를 배워보고는 싶으나 그 과정에서 마음 상할 일이 생길까 포기했습니다. 가족끼리 무엇을 가르치고 배운다는 것은 참 힘든 일인 것 같습니다.     

이제 고등학교 1학년이 된 딸아이가 하교 후, 집에 바로 오지 않습니다. 전화해도 뭘 하는지 받지도 않고요. 날이 어둑해지는데 갑자기 불안감이 밀려옵니다. 메신저에 여러 개의 이런저런 걱정한다는 말들을 쏟아 놓습니다. 현관문 여는 소리가 들리면 나는 득달같이 달려나갑니다.

“야 너는 왜 전화를 안 받아! 늦으면 늦는다고 말을 해줘야 걱정을 안 할 거 아냐!”     

딸은 초등학교 입학 후, 몇 개월 되지 않아 탈장 수술을 했습니다. 아기 때부터 배앓이가 심했고 평소에도 자주 복통을 호소했습니다. 초콜릿이며 과자며 찬 음료를 좋아합니다. 먹어도 탈이 안 나면 좋으련만 잘 체하고 아픕니다. 자주 탈이 나면서도 늘 간식과 차디찬 음료를 먹습니다. 금방 배가 아프다고 했으면서 약 먹으니 나아졌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다시 밀가루가 들어간 간식에 손을 대지요.

“아프면 안 먹는 게 정상 아니야? 작작 좀 먹어!”     

내가 딸을 걱정하듯이 엄마도 나를 걱정합니다. 집에 늦게 오면 염려하고, 조금이라도 아프다고 하면 마음졸이고, 먹을 것 하나라도 더 챙겨주려는 엄마의 바람이 투박한 말투 사이에 스며 있었습니다. 아흔한 살의 노모는 여전히 ‘엄마의 마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요리하던 엄마가 갑자기 나를 부릅니다. 양념에 재어 놓은 황태구이를 보여줍니다. 재료 손질하는 법, 들어가는 양념, 요리하는 순서를 말해줍니다. 아무리 사 먹는다고 해도 먹고 싶은 반찬을 모두 사서 먹을 수만은 없지 않겠냐 하십니다.

“내가 없어도 먹고 싶을 때 이렇게 만들어 먹으라고.”     

회식으로 밤 10시가 넘어 집에 도착했습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거실 소파에 엄마가 누워있었습니다. 잠들 시간이 한참이나 지났는데, 늦게 오는 내가 걱정됐나 봅니다.

“일찌감치 오라니까. 애도 기다리고 있구먼.”

옷 갈아입고 간단히 씻고 나오는데 기침이 두 번 났습니다. 일교차가 커서 감기들려는지 목 상태가 좋지 않았습니다.

“감기 걸린 것 아니냐? 내 판피린 하나 줄 테니 먹고 따습게 하고 자. 아프면 고생이다.”

이 정도는 별거 아니라고 말하면서도 내심 고마웠습니다. 꿀물이라도 한잔 마시라며 엄마가 주전자에 물을 끓이고 있었지요.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엄마가 챙겨주니 기분이 좋았습니다.

엄마 말투는 여전히 투박하지만, 마음만은 늘 나를 향해 있다는 것을 다시금 새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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